모란(牡丹)꽃은 굵은 뿌리 위에서돋아나는 새싹을수컷의 형상이라 하여 모(牡)자를 붙이고, 꽃 색이 붉기 때문에 단(丹)이라 하여모단이라고도 합니다.
모란은 꽃이 크고 꽃잎이 많아 화려하고 풍성하여 위엄과 품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귀화(富貴花)라고도 하고, 또 꽃의 왕이라는 화중왕(花中王)이라고도 합니다.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에서도 모란은 꽃들의 왕으로 등장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모란꽃은 민화에서도 제일 많이 그려지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꽃인데요.
아마 민화에서 모란꽃이 부귀영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남녀노소 연령과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출세해서 영화를 누리는 행복한 삶을 꿈꿀 텐데요. 모란도를 보며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가져다 줄 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란도에는 다른 꽃그림과 달리 새나 나비 없이 모란꽃만 등장하는 그림이 많습니다. 꽃도 풍성하고 크게 그려졌으며 한 나뭇가지에 붉은색, 흰색, 노란색, 분홍색 등으로 다채롭게 표현됐습니다.
궁중모란도는 모란꽃과 함께 괴석을 그릴 때가 많은데 괴석은 장수를 의미합니다. 한 폭에 9송이의 활짝 핀 모란송이가 있는데 숫자 9가 가장 높은 수를 나타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궁중모란도는 괴석 위에 모란꽃송이들이 활짝 피어 있는 반복적인 패턴을 나타냅니다. 도식적인 모란도의 패턴은 언뜻 보면 너무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10폭에 달하는 모란병풍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드넓은 모란꽃 밭이 펼쳐지는데 그 화려함과 장식성이 극에 달하면서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느껴집니다. 오히려 구도를 너무 자유롭게 배치했다면 혼란이 가중되고 모란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천박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왕실에서는 모란 그림을 통해 만사가 상서로우며 왕가가 변함없이 번영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모란 그림은 조선의 궁궐에서는 세자와 왕의 결혼식, 왕비의 생일잔치 등 궁중의 특별한 의식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한 세화나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편안함을 염원하는 의식화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모란 그림은 왕실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부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모란 병풍은 생일, 결혼, 환갑 등 흥겨운 잔치 분위기에 잘 어울려 사대부와 일반 백성의 잔치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민간 혼례 때도 궁중에서처럼 마당에 모란병풍을 두르고 왕처럼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란병풍은 고가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꿈도 못 꾸지만, 혼례 때는 관청에서 모란병풍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혼례뿐만 아니라 망자를위한그림으로도 사용했는데요.상여 곳곳을 모란으로 장식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사찰에서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명부전에도 모란병풍을 놓았습니다. 이처럼 모란꽃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모두 축복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정병모 / 민화는 민화다 , 다할미디어 p166 참조)
모란도는 꽃의 왕으로 부귀와 행복 등으로 상징되면서 그 어떤 꽃 그림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궁궐에서부터 양반대갓집의 안방 그리고 서민들의 결혼식까지 폭넓게 사용되었지요. 과거와 현재가 힘들어도 미래는 축복과 행복으로 꽃길을 걷을 수 있을 것이란 소망과 희망을 안겨주는 그림인 것입니다.
우림 박태숙은 동대문구에서 우림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민화작가 입니다.
민화로 시작해 동양화, 서양화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워나가며 민화에 새로운 색감, 기법 등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민화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민화를 다양한 공예에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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