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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_이야기(34)] 조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이동진 선생님에게 듣는 경복궁 이야기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2.24 10:54 의견 0

☞이동진:고종이 권력을 장악한 뒤 조선은 본격적으로 개화정책을 펼쳐나갑니다. 이때 개화를 추진하는 세력은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로 나뉩니다.

급진개화파는 일본이 개항한 방식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합니다. 문호를 개방해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모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세력이죠. 온건 개화파는 청나라의 개항 방식을 차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동양의 사상, 기존의 체제 위에 서양의 기술을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수파이던 급진개화파는 1884년 조선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 김옥균. 조선말기 급진개화파 사상가이다.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개화파에 반대하며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그러나 청나라 병력이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마무리된다. ⓒ위키백과

갑신정변이란 1884년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등의 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일으킨 정변이다. 이들은 세계 정세의 흐름을 눈여겨봤으며 자본주의 지식을 습득해 개화 사상을 정치에서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씨 정권은 그러나 청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점차 개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급진 개화파는 청나라에 의지하는 민씨 정권에 반대하며 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의 정권은 3일천하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동진:흥선대원군은 기본적으로 개화파 세력과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위정척사파, 소위 양반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죠. 따라서 갑신정변 세력은 흥선대원군과 정치적으로 결을 같이하기 힘든 세력입니다. 그런데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나서 온건 개화파, 친청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대원군을 조선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는 가정이 없지만, 만약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가장 과격한 개화를 주장한 김옥균과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고 있는 대원군이 서로 손을 잡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지금과는 다른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마무리 됩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갑신정변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청나라를 부릅니다. 내정은 안정되지 못하고 외세가 계속 주둔하면서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집니다.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자 왕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청나라를 부릅니다. 이때 두 나라 간 체결된 톈진조약으로 일본도 같이 조선으로 들어옵니다. 이후 고종은 러시아와 미국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죠.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행보로 외세를 계속해서 개입시키며 조선의 멸망을 촉진시킵니다.

고종은 자신의 사람들이라 여겨지는 세력들만 아꼈습니다. 초기에는 민씨들과 손을 잡았고 이후 자신에게 충성심을 보여주는 일부 사람들만 바라보고 정계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몇 개월 마다 사람이 변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관직에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광무개혁을 추진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힘이 없었습니다.

물론 광무개혁의 최종 좌절은 러일전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왕실 내부의 갈등과 자신의 권력유지라는 과정 속에서 조선왕조를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방치한 고종의 잘못이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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