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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23)] 미래에 대한 확실한 계획은 없었다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3.30 09:00 의견 0

시카고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한인 비즈니스는 위에 소개한 뷰티서플라이와 그로서리 정도다. 고학력 전문직이 아닌 한인들로서는 고용 기회가 많지 않다. LA처럼 인구가 50만 이상이 되면 웬만한 중소도시 정도는 되니까 자체 선순환이 가능한데 시카고는 끽해야 5만 정도라 현지 주류 사회와 연결이 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언어나 전공이 적응하고 살기엔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한인들이 자기 스몰비즈니스를 한다. 주로 세탁소나 리커스토어, 식당, 건설업(이라 쓰고 노가다라 읽는다), 식품, 뷰티, 핸펀 등 소매업, 공업사, 헤어 및 네일 등 미용업, 태권도장 등이다.

한국은 자영업자들의 지옥이 된 지 오래지만 미국은 그래도 자기 장사하면 먹고는 산다. 케바케지만 많이 벌진 못해도 웬만한 가게 부부가 둘이 같이 매달리면 연 10만 달러는 가져온다고들 한다. 시간당 인건비를 생각하면 많이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학군 좋은 비싼 동네에 살며 애들 대학 보내고 노년에 큰 쪼달림 없이 잘들 산다.

다만 나 같은 월급쟁이에겐 종종 짜증나는 것이, 장사하며 세금 보고를 안 해 저소득 지원을 받으면서 좋은 집에 럭서리카를 타고 다니는 경우를 자주 본다는 것이다.

시카고-일리노이는 한국엔 엘에이나 뉴욕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난 수십년간 미국의 3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요새 중서부 러스트벨트의 경기 침체로 성장이 동반 하락했으나 여전히 4, 5위권 대도시다. 상품과 자본, 물류의 허브이자 첨단 기업들 특히 제조업과 제약회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기도 하다.

그 유명한 벨연구소와 페르미연구소, 아르곤연구소 등이 모두 시카고 지역에 있다. 따라서 한국의 물리학이나 공돌이박사들이 많이 정착해왔고 요즘엔 좀 뜸하나 예전 베트남전 이후 한동안 의사 간호사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눌러앉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의사들은 가만 보면 여기서 돈 많이 버는 것 같다. 페이닥터야 뭐 전공에 따라 최저 15만 달러에서 50만 달러 사이겠으나 한인을 주상대로 하는 내과의원만 열어도 꽤 쏠쏠한 모양이다. 박정희 때 학생운동 하며 돌 좀 던졌다는 모 닥터께선 자녀들도 모두 의대에 보냈는데 레지던시를 미국에서도 최고인 서부 어느 병원(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자세하겐 안 쓴다)에서 잘하고 있던 애들을 급히 시카고로 불러 본인 의원 물려주셨다. 그깟 월급 받아 뭐하냐고 남주기 아깝다나.

미국이라고 탱자탱자 놀면서 돈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시카고 지역은 높은 세금에 경기는 갈수록 침체되고 있어 사는 게 팍팍하지만 한국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 같긴 하다. 실직했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없고 나이 들어 은퇴한 뒤 폐지 줍고 다니는 노인도 없다. 여유가 많진 않아도 최소한의 dignity는 있다고나 할까. 나만 해도 문레기 쓸데없는 전공에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닌데 그래도 취직 되고 어떻게든 살고 있지 않은가.

기자 노릇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확실한 계획은 없었다. 박봉에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일을 계속 하긴 싫었지만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고민이 많았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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