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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31)] 결혼준비(下)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4.27 09:16 의견 0

미국은 아이가 없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 아파트 렌트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식으로는 사글세 단칸방이다. 월세는 지역마다 차이가 많지만 우리의 신혼집으로 삼았던 방 하나 화장실 하나 20평 정도 되는 비인기학군 낡은 아파트는 10년 전 당시 월 800달러였고 새집에 방 두 칸, 세탁기가 있는 인기 학군 아파트는 월 1500달러가 넘었다.

이런 아파트들은 방음이 안 되는 게 대부분이라 아이가 생기거나 하면 조그만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로 옮긴다. 월세를 내려면 너무 비싸니 본인들 명의로 구입하는 게 이득인데 conventional loan을 받으려면 보통 집값의 20%를 down payment로 지불해야 은행에서 모기지가 나온다.

이제 막 시작한 부부에게 그만한 종자돈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라에서 보증하는 FHA론이라는 게 있다. 집값의 3%만 다운하면 나머지를 모두 모기지로 받을 수 있는데 대신 보험격인 PMI를 따로 들어야 해서 매달 100~200달러 정도를 더 내야 하고 론을 받을 수 있는 최대 한도도 30~40만 달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서브프라임 직전 10%에 육박하던 30년 고정 모기지 이자율은 우리가 첫 집을 장만하던 2009년에 5%까지 떨어졌고 몇년 후 사상 최저인 3.5%로 낮아져 재융자를 하니 매달 내는 원금+이자는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한국은 층간소음 문제로 서로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은 아파트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라는 관념이 있어서 소리가 좀 나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한 번 예외가 있었는데 옆방에 사는 러시아년이 내 방에서 술 먹고 떠드는 게 시끄럽다며 지랄을 한 적이 있다.

보통은 직접 얼굴 붉히지 않고 매니지먼트에 컴플레인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미국인들처럼 깍쟁이 같은 구석이 없어 직접 대면해 말을 하는 경우가 좀 있다. 놀 때 조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끄러웠다니까 할 말이 없어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나중에 걔도 지 친구들 데려와 뿡작뿡작 하길래 다음 날 니도 드럽게 시끄러웠다고 하니 지도 뭐 할 말이 있겠는가, 알았다며 미안하단다. 그 뒤로는 내 방에서 뭘 해도 찾아오지 않았다.

암튼 우리는 예물이랄 것도 별 게 없어서 동네 금은방서 300~400달러 정도 하는 14k 반지를 맞춰 서로 선물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조선엔 그런 법이 없다며 우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패물과 다이아반지를 주시긴 했는데 아내는 지금도 내게서 받은 게 아니라며 engage ring을 내놓으라고 떼를 쓴다.

이런 얘기를 한국의 친구들에게 하면 어디 남는 교포 언니들 없냐면서 한국 여자들을 막 욕한다. 나는 한국에서 결혼시장에 진출한 적이 없기에 정확한 사정은 모르고 다만 남자들이 좀 더 부담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두 푼도 아닌 몇 억짜리 집을 남자가 해오면 여자는 1천~2천만 원 들여 안에 가구 같은 걸 채우고 땡이라니 많이 불공평한 게 아닌가 싶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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