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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한국인과 미국인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다" - 연극 ‘용비어천가’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6.09 23:55 의견 0
국립극단이 진행하고 있는 한민족디아스포라전의 첫 작품, 한국계 미국인이자 실험적인 극작가로 언급되는 영진 리의 <용비어천가>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이 작품은 미국에 거주하는 백인들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비판한 작품으로 이미 10여년 전 미국에서 공연된 바 있다.

 

극의 내용은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때에 따라서는 극의 맥락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무대 한복판에 설치된 미닫이형 스크린에 등장한 영진 리는 느닷없이 뺨을 맞는다. 이 뺨맞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약 10여분 가량 보여주면서 극이 시작된다.

 

그러다 갑자기 무대 위에 노랑, 빨강, 파랑의 한복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등장해 대사를 주고받고, 갑자기 춤을 춘다.배우들은 한국어, 영어, 아시아 국가의 언어까지 모두 섞인 대사를 던진다. 이 중에는 음성변조를 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등장한 한 커플은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신들의 미래와 이별을 이야기한다.전혀 다른 두 시선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이다.

 

인종차별로 인한 내면의 고통. 연극  중. <p class=(국립극단 제공)" width="550" height="367" /> 인종차별로 인한 내면의 고통. 연극 <용비어천가> 중. (국립극단 제공)

 

극의 이런 내용들과 기존의 극의 전개방식과는 전혀 다른 연출이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그러나 극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차별받은 한국인의 삶,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속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다.혐오하는 외부의 시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혼란, 차별에 대한 분노가 무대에 한데 어우러져 표현되는 양상은 그들의 대사와 장면, 춤에 모두 녹아있다.

 

"동양에서 자란 사람들은 원조 원숭이"라고 말한다든가, 한국인들이 팔에 한삼을 끼고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우스꽝스럽다는 듯 웃는 장면은 동양인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비하하는 시선을 여과없이 그려냈다.한편 그런 와중에도 백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는 모습은 백인을 추종하는 한국인의 자태를 떠올리게 한다.

 

연극  중 <p class=(국립극단 제공)" width="550" height="368" /> 연극 <용비어천가> 중 (국립극단 제공)

 

극의 후반부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5명의 배우들이 ‘Let It Go’에 맞추어 자신의 머리를 찍어내고 심장을 도려내는 장면은 정체성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한국계 미국인 내부 심리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건 인종차별에 대한 아주 세련된 비판이에요.”

 

도발적이면서도 신선한 연극 <용비어천가>는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갖게되어버린 백인우월주의 시각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극이었다.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색다른 여러 시선을 선보이는 국립극단의 실험적 프로젝트인 한민족디아스포라전은 6월 1일 연극 <용비어천가>를 시작으로 백성희장만호 소극장과 소극장 판에서 7월 23일까지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가지>, <널 위한 날 위한 너>, <김씨네 편의점> 등 총 5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혜령 기자 / windschuh@s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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