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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엄마와 고물상, 영화 <마더>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7.29 09:00 의견 0

1.엄마가 나 죽이려고 그랬었잖아.


깐느 영화제 최초 상영 직후,당시 〈씨네21〉소속이었던 김도훈 기자에 의해 영화에 ‘ 놀랄만한 반전 ’ 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더'의 아들 도준의 살인 누명이 '누명'이 아닐거란 사실을 일찌감치 예상해 낸 관객들,적지 않았다.혜자가 이중인격이고 도준은 실존하지 않 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루머들도 나왔지만,그거야 이 영화의 감독이 M.나이 트 샤말란일 때 가능한 추론이고.

그러나 김도훈 기자가 쓴 그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반전'이라 일컬은 영화의 '중요한 국면전환'은 거의 끄트머리에 가서 밝혀지는 '진범의 실체'가 아닌, 영화의 중간에, 그것도 도준의 대사를 통해 아주 느닷없이 등장하는 도준과 혜자의 과거사임을 알 수 있다.글쓴이 역시,문제의 장면을 목격한 순간 그야말로 불시에 따귀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2.충격이 유효한 까닭


이 장면의 충격이 유효한 까닭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영화 내내 아들에게 헌신적인 희생을 보여온 그녀가 아들을 살해하려 한 전적이 있다는 그 자체가 주는 놀라움이다.혜자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여자고,실제로 문제의 장면에 도달하기까지 그녀는 친구나 연인,심지어 부모와 자녀 관계의 다른 조합들(부자,부녀,모녀)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모성 행위'들을 이어간다. 하지만 도준이 (자신의 손으로 가린 멍든 제 얼굴의 반쪽처럼) 숨겨온 그녀의 과거가 관객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모성 신화'는 완전히 유린된다.

여기에 놀라움의 두 번째 까닭이 있다.애초에 봉준호 감독이 모성의 극단을 다룬 작품을 구상중임을 발표했을 때, 비평가들은 '아들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어머니'를 신성 불가침의 기본 설정으로 두되, 그 '무엇이든'의 강도만 좀 조절할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러니까 <로즈마리 베이비>로 시작된 모성이 광기로 바뀌는 이야기의 오랜 전통을 묵묵히 따르는 영화일 것으로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극의 중반부에 삽입된 이 문제의 장면에서 감독은 아예 모성의 절대성 그 자체를 훼손해버린다.〈마더〉의 진정한 파격이다.엄마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보다 더.

세 번째 이유는 봉준호 각본의 '성실함'이다. 아들은 엄마의 배려를 그다지 감사히 여기지 않는다.삶은 닭을 찢어주면 던져 버리고,손수 달인 약도 먹다 말아버린다.관객들은 그저 아들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한다.서른이 코 앞인 아들이긴 하지만,지적 수준이나 행동 양식 은 딱 다섯살배기니까.엄마의 헌신 역시 마찬가지다.관객들은 ‘ 엄마니까 ’,저렇게 행동한다고 아주 간단히 생각해버린다.그러나 혜자가 아들을 죽이려 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은,엄마에게 무정한 아들의 태도나 그런 아들에게 헌신하는 엄마의 행 동에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의미를 부여한다.모자 관계인 탓에 ‘ 희생하고 ’,또 그 희생을 ‘ 무심히 여기는 것'은 맞지만, 모자라는 설정 자체에 그 이유의 전부를 맡기지는 않은 것이다.이를테면,혜자는 아들에게 농약 섞인 피로회복제를 먹인 후론 몸에 좋다는 것만 골라 먹였다 고 말한다.아들한테 몸에 좋다는 것만 먹이고픈 마음이야 '엄마 마음'이지만, 농약 얘기가 전제되면 ‘ 죄책감 ’ 이 따라붙는다.〈마더〉의 각본은 그저 ‘ 아들이니까 ’,또는 ‘ 엄마니까 ’에 안주하지 않고 주어진 설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끌어냈다.

3.아니야,아니야!이 쓰레기야.


엄마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른바, mother 가 murder 가 되는 장면은 어떤가. 혜자는 '진실'을 목격한 고물상 노인을 둔기로 수차례 폭행해 살해한다. 이 때 혜자의 대사를 자세히 들어보라. '아니야, 아니야! 이 쓰레기야.'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고물상 살인 장면에서 혜자가 취한 '자세'를 성적인 기호로 읽어도 좋음을 밝힌 바 있다. 이 분석을 수용한다면, 혜자가 노인을 쓰러뜨리기 위해 취한 첫 번째 도발과,바닥에 쓰러진 노인 위에 성행위를 연 상케하는 체위로 올라타 온갖 욕설과 현실 부정을 쏟아내며 폭력을 '이어가는' 행위는 서로 다른 맥락으로 읽어내야 한다. 즉,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혜자의 행동은 ,둔기로 노인을 기절시키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딱 그 지점까지다.그 이후의 행동,그러니까 필요이상의 폭력을 동원해 기어 이 고물상 노인을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그 나머지는,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성적 판단이 아닌 지극히 동물적인 동기의 살 인이란 얘기다.그것은 아들의 결백에 대한 맹신으로 억울한 따귀를 맞아가며 홀로 싸워 온 그녀가,자신이 목표한 여정의 끝에 서 전혀 기대하지 못한 진 실을 마주한 데서 찾아온 ‘ 개인적인 분노 ’ 이다. ‘ 아니야,아니야! ’란 대사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쓰레기야 ’.는 무슨 소리일까.혜자는 왜 그 노인을 ‘ 쓰레기 ’ 라 부른 것일까. ‘ 목격자 노인 ’ 은 고물상이다.고물상이 뭔가.버려진 물건들을 주워다 고쳐 의미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쓰레기 ’ 와 ‘ 고물 ’ 은 그렇게 구분된다.혜자에게 있어 아들을 살해하려던 과거의 기억,혹은 아들의 살인을 목격한 고물상 노인의 기억은 소각해버리고 싶은 쓰레기다.그러나 고물상은 괘씸하게도 버려졌던 기억의 조각을 모아,끔찍하고도 유의미한 ‘진실 ’ 을 조합해낸다.노인을 쓰레기라 이르며 살해하고,증거 인멸의 차원에서 그가 쌓아온 고물들을 태워버리는 혜자의 행동은 곧 '망각의 몸부림'인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마더〉는 죄와 죄책감,그리고 망각의 영화로 볼 수도 있다.

4.나가며


도준이 연행되는 영화의 첫 장면을 기억하는가.경찰차도 아닌 차에 잡혀가는 도준을 본 혜자는,무작정 달린다.그리고 도준을 연행하던 형사는, ‘어머님이 상당히 잘 뛰신다 ’ 며 너스레를 떨다 차 사고를 낸다.도준을 연행하던 차는,그렇게 멈췄다.


혜자는 아들을 잡아가는 차를 세우기 위해 달렸다. '달린다고 저 차를 잡을 수 있을까 ’ 하는 ‘ 계산 ’ ,말하자면 이성은 모성 앞에 뒷전이다.하지만 차는 멈췄고,그렇게 그녀는 결국 차를 따라잡는다.그녀가 의도했던 모양새는 아니지만 말이다.

도준 역시 풀려났다.그러나 혜자가 의도했던 모양새는 아니다.혜자는 원치 않는 사실을 알게 됐고,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저질렀으며, '엄마 없는', 즉 혜자처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달려줄 사람이 없는 아이가 대 신 죄를 뒤집어 쓰도록 만든 후에야 도준을 석방시킬 수 있었다 .혜자는 과연 잊어낼 수 있을까.아득해진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수미상관을 이루는 김혜자의 무 표정 연기는 그야말로 호흡을 멎게 만든다.개봉 후 작품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한 이들도,살인을 마친 혜자가 들판에서 홀로 춤을 추는 영화의 첫 장면과,군무群 舞 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만큼은 갈채를 보냈다.여전히 꽉 찬 이야기를 추구하면서도,시각 매체만이 줄 수 있는 쾌감에 조금 더 집중한, 봉준호의 진일보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내일 모레 칠순의 김혜자는 또 성장했다.우아하면서도 신경질적인 김혜자는 〈마더〉의 출발이자 종착점이다.숱한 ‘ 국민 어머니들 ’ 사이에서도 늘 비주류였던 그녀를 향한 봉 감독의 존경과 관객의 찬사는,세월에 바치는 존경심 그 이상이다.부디 그녀를 오래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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