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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 정주인가? 노마드 인가?

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시대(39)

조연호 작가 승인 2018.11.28 11:24 의견 0

정주(定住)와 유목(디지털 노마드)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정주(定住)사회이다. 아마 아시아권, 특히 농경사회를 기초로 한 국가는 대부분 ‘정착’이라는 단어에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매년 명절만 되면, 길고 긴 고속도로가 수많은 자동차로 인해 저속도로가 되도록 고향을 찾는 이유도 ‘정착’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제 ‘정착’이 아닌 ‘유목’을 말하고 있다.

‘노마드’라는 말이 있다. ‘노마드’는 그리스어에서 nomos, 또는 nemos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 먹다’, ‘목초지에 데려가서 그곳에 풀어 놓다’라는 뜻이다. 디지털 노마드, 잡 노마드 현대의 다양한 직업의 형태와 근무환경을 토대로 만들어진 언어이다. 그러나 노마드는 한국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아직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사회의 어른으로 버티고 계시고, 이분들에게 유목민은 오랑캐, 혹은 역마살을 떠올릴 뿐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나, 아래 세대들도 ‘노마드’라는 용어는 ‘간지’스러운 말일 수는 있어도 대부분의 설정은 ‘정착’에 맞춰져 있다.

최근 한 언론에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중고생들이 희망하는 직업 1위가 11년째 교사라고 한다. 솔직히 우리 사회는 노마드라는 용어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노마드는 공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그리고 감정적 이동을 포함하고, 새로운 경험과 사고의 지평선을 열고자 하는 욕구도 포함되는 말이다.

‘정착’은 어느덧 언어적인 느낌만으로는 구시대적 유물로 느껴지지만, 실상은 암암리에 한국인들에게 목적 지향적인 언어로 각인돼 있다. 즉, 모순(矛盾)이다. 현실은 아르바이트로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노마드 인생인데, 그래서 ‘정착’하고 싶은 현실과 괴리. 노마드가 정착의 대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착할 수 없어서 노마드 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어서 언어가 가지고 있는 느낌과 현실의 간격이 더 크게 느껴진다.

에피소드

필자가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때의 일이다. 한 여자 동료가 서울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사무실이 제주도에 있다 보니, 고정된 사무공간이 없었다.

필자 : 카페 같은 데서 일하면 좋겠다. 시간도 자유롭고, 상사의 눈치도 안 봐도 되고.

동료 : 아니요, 불편해요. 어디 고정된 사무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어요.

필자 : 정말 나 같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우리 둘이 역할을 바꾸면 좋겠다. ^^

동료 :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ㅎㅎ 그래도 위원장님께서 내년에는 서울에도 사무실을 하나 마련해 주신다고 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원하지 않는 노마드를 어디서든 겪고 있다. 집에서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학교에서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일진 역할을 하는 그룹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순간의 연합일뿐이다. 그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사회 역시 그렇다. 개인주의를 넘어서서 이제는 고립이다. 카페에 앉아서 경량화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노마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정착’일 것이다. 그 사람이 노마드 생활을 하는 이유가 정착을 위함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국민은 앞으로도 한동안 정착이라는 안락함을 더 추구할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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