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영화의 예고를 봤을 때,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가슴이 다 두근거릴 지경이었습니다.
안개를 뚫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예고의 전부였고, 그 비주얼과 의미심장함만으로도 영화 한 편을 모두 본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역시 이창동 감독의 영화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면 책을 한편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상처받은 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그들의 행동 동선과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치시켜서 관객 자신도 상처받은 사람임을 각인시키면서 끊임없는 메시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꾼이심을 다시 한번 감탄스럽게 느낍니다.
영화 <버닝> 스틸컷
◇사람은 비닐하우스와 같다.
버려지면 비닐하우스라는 이름만 있을 뿐 아무도 관심 없는 쓰레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슬픈 간극
세상이라는 것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은 태울 것이 없습니다.
그저 분노로서 마음을 태울뿐입니다. 하지만 가진 자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없는 자들을 태우곤 합니다. 그저 재미로.... 영화의 제목처럼 말이죠.
영화 속에서 말하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비닐하우스라는 것은 가상의 집입니다. 다시 말해 원작의 제목처럼 헛간인 셈이죠. 그리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금방 폐허가 되는 시설이며, 세상 무엇보다 잘 타는 재질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 발화성이 얼마나 큰지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람은 비닐하우스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고 태어나서 좋은 교육과 돈과 지위로 보장되어서 엄청난 시설이 되어있는 하우스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겉모양만 비닐하우스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쓰레기와 같은 것이 세상입니다. 버린다고 생각되면 만든 사람(부모) 조차도 버렸는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이자 장소.
심지어 무너지기도 잘하고 잘 타버리는 것도 사람과 정확히 같습니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괴리감을 철저하게 느끼게 합니다.
주인공 종수와 혜미는 일반인이라 할 수 있는 없는 자의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수는 누구에게 말 한마디 잘 못하는 내성적인 인물입니다. 늘 소심하고 억지로 양보해야 하며 바보처럼 착하기만 하죠. 반면에 혜미는 자유분방하며 가진 자의 관심을 동경합니다. 가진 자들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앞에서는 부를 기반으로 친절과 관심을 표명하지만 뒤에서는 비웃고 하품하는 벤의 모습은 가진 자의 전형이라는 것을 정작 모르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즐길 거리를 포장하는 과정일 뿐이죠. 마치 자신에게 받쳐질 재물을 셀프 단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해도 우리는 서로조차 믿어주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고 후회하고 분노하죠. 분노라는 것은 결국 버닝입니다.
가진 자를 태워야 사그러드는 분노의 버닝.
영화 <버닝> 포스터
◇잔잔함 흐름 속에, 묵직한 한서림.
잔잔한 흐름을 유지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감독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중간중간 묵직한 한방이나 자극을 주곤 합니다만, 이창동 감독의 경우는 그런 것이 없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만 보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 한방을 맞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버닝의 경우도 유아인의 극도의 내성적인 연기(매우 훌륭합니다)와 맞물려서 고구마 같은 잰걸음을 걷는 듯하지만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묵직합니다.
스티브 연은 그냥 생긴 것부터 귀티 나는 도련님이라 한국어가 어색한 것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더군요. 그리고 전종서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연기자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영화 <버닝> 스틸컷
가진 자의 오만과 없는 자가 가지는 분노라는 것의 교집합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고 서로가 태우는 것과 태우는 목적 또한 영원히 다를 것입니다.
혜미가 영화 속에서 석양을 배경 삼아 춤을 추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타오르는 태양은 식어가는데 털어낼 것은 결국 옷 가죽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에 서글픕니다. 원작을 읽어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밀려옵니다. 이창동 감독님의 오랜만의 신작이었으니 다음 작품은 좀 더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버닝 (Burning, 2018)
감독 : 이창동
출연 : 유아인, 스티브 연, 전종서
원작 :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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