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는 ‘부(富)’도 분배하는 것이다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131)
조연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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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16:05 | 최종 수정 2020.02.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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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적인 경제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공유경제는 영어로 ‘Sharing Economy’로 표기되기도 하고(대체로 ‘Sharing Economy’로 표기한다), 혹은 ‘Peer Economy’를 사용하기도 한다(물론 더 다양한 표기법이 있다).
둘 다 한글 번역은 ‘공유경제’로 하고 있는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전자는 ‘나눔’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면, 후자는 상호 간의 연결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P2P(peer to peer; person-to-person ((개인 대 개인 파일 공유 기술 및 행위))의 활성화가 오래됐기 때문에 그 해석이 기술적일 수 있다. 반면에 전자는 후자보다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공유경제는 기술적으로 개인과 개인을 연결한다. 즉, 매칭을 통해 발생하는 수수료가 현재 대표적인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들의 수입이 된다. 페이스북은 친구를 맺어주는 방식으로 매칭하고, 카카오톡 등도 메시지를 송수신하는 방법으로 개인을 연결해주는 매칭 플랫폼이다. 에어비앤비는 개인과 개인의 숙소를 매칭하고 있으며, 우버는 교통수단을 매칭한다. 이러한 매칭 방식은 ‘Peer Economy’에 가깝다.
다음으로 공유경제는 소유물을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원래 ‘나눔’의 의미는 무료(Free)의 의미가 강하다. ‘음식을 나눈다.’, ‘물품을 나눈다.’ 등의 의미를 살펴보면, 대가성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유경제 자체가 성경적 의미로 해석하면 필요한 만큼 나누어 쓴다는 것이다. 이때 나누는 것에 대한 대가는 없다. 그러나 현재 공유경제는 자본주의와 결합으로 수익을 위한 경제행위라는 의미가 강하다. 공유경제와 관련한 대부분 책이 ‘수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억지로 의미를 추가하기 위해서 환경을 언급하기도 하고, 공유경제의 이득 등을 언급하지만, ‘승자독식’을 폐해로 보고 있지 않다. 그저 더 성장하고, 더 큰 부의 축적 방법들을 제시할 뿐이다.
교회의 공유경제 방법은 사회와 달라야 한다. 막스 베버가 말한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결합도 기독교 정신으로 미국식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그만의 독자적인 도구였을 뿐 정통적인 기독교 메시지와는 다르다. 베버의 노력과 학자로서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기독교와 자본의 역사 중 빙산의 일각만을 참고해서 저술했을 뿐이다.
교회의 공유경제는 구약에 나오는 ‘희년’과 신약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나눔’과 일치해야 한다. 물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눔이 보장되는 수익 활동은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 적어도 자본주의 시스템을 인정하고, 그 시스템이 왜곡되지 않는 한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교회는 온전한 자본주의 방식으로, 그리고 온전한 분배 방식으로 공유경제를 실행해야 한다.
교회는 앞서서 제시한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미 존재한 자원을 십분 활용해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선도하고 투명한 재정 운영으로 경제적 신뢰를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로비, 착취, 지대 등을 통한 비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공유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수익에 대한 분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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