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청년들이 줄고 있다. 청년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부터 결혼 전까지의 성도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부’를 별도로 운영하는 교회도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의 세부적인 프로그램은 거의 실패했다. 그 증거가 청년 세대의 감소와 이탈이다.
청년부를 별도로 구성하고 세분화한 결정은 교회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긍정적이지 못했다. 과거에는 청년이 많아서 연령으로 구분해서 청년 1부, 청년 2부 등으로 나눴는데, 최근에는 다 통합되는 분위기다. 그리고 대학부라는 부서 명칭은 문제없어 보이지만,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 대학생이 아닌 청년들은 다른 부서에서 활동해야 한다. 당연히 연령으로 나눠진 부서와 다르다.
물론, 대학부는 초대형 교회는 돼야 운영된다. 그리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서 일부 교회에 청년들이 모인다. 서울 강남의 ‘사랑의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등과 같은 초대형 교회에는 수천, 수만에 이르는 대학생들이 모이고, 그들을 위한 부서를 별도로 운영한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교회를 옮기는 청년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은 교회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진다. 시설 좋고, 시스템이 좋은 교회가 지역에 하나 건축되면 중소규모의 교회는 대부분 소멸한다. 꼭 지역 상권에 스타벅스가 들어서면, 개인 브랜드 카페가 사라지는 것과 유사하다.
교회에 청년 연령대 성도가 많다고 해도 그들의 활동이 청년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예배를 한 번 드리고 돌아가는 ‘한 시간 크리스천’일 수도 있다. 청년부 활성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하는 모습도 거의 없다. 임원들이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부서가 운영된다. 그저 답습하는 수준에 머문다. 학교생활이 있고, 생업이 있기에 청년부 활동에는 항상 제약이 따른다.
청년부는 교회에서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인 부서여야 한다는 인식은 변함이 없다. 즉, 청년들이 도전 정신을 잃어버려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상에 나아가지 않는 한 교회는 계속 늙어 갈 것이다. 사회에서는 적극적인 사회구성원으로 활약하는 청년이라도 교회에서는 주변인으로 배회하기도 한다. 역으로 교회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하는 청년이 사회 부적응자인 경우일 수도 있다. 교회 차원에서는 후자의 청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적어도 당장은 그렇다.
그러나 교회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전자의 청년들이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엘리트주의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 교회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 되고, 그 반대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두 집단을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서 제시한 것처럼 공유경제를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과 창업 지원이 요청된다.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경험 많은 청년과 교회의 시스템을 잘 아는 청년이 만나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교회가 지원해야 한다. 물론, 이미 생업이 있는 청년들이 본업을 그만두고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그룹을 연결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도전할 기회를 준다면, 청년 공동체를 새롭게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기선교, 수련회 등과 같은 틀에 박힌 프로그램의 변화기 시급하다. 때가 한참 지났다. 크리스천 청년으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일감을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게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회가 선교하는 방법이다.
물론, ‘비전트립’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용을 고려할 때 분명히 손익분기점이 맞지 않는 실천이다. 1인당 수십만 원의 돈이 들고, 교회에서도 후원해서 미그리스도인을 전도하는 선교지를 방문하는 건데, 장점도 있겠으나 단점도 있다.
특히,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준비해야 할 방학에 모든 시간과 재정을 소모해서 다녀와서 내놓은 결과물이 무엇인가? 그저 한동안 느껴지는 마음의 훈훈함 이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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