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페터 한트케 (출처: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읽어본 적 있는가? 노벨문학상은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상이다. 수천만 부가 팔린 소설이나 시집의 작가라 하더라도 수상할 수 없으며, 아무리 유명한 작가였다 하더라도 살아있지 않으면 수상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생존 작가에게 수여하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최고의 상이기도 하다.
대중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읽지 않는다. 특별한 사람들만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지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 대중 소설과 달리 철학, 사회, 국가, 세계 등 다루는 영역도 넓고 심오한 주제와 세계관을 다룬다. 수상작들은 ‘어렵다’라는 이유로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작품’으로 간주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중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노벨문학상 발표 뉴스를 통해 처음 알게 된다. 그런 소식을 듣기 전에는 작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혹 영화화된 작품을 가진 인지도 있는 작가도 나타나지만, 대개 대중 소설과는 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라 대중들이 알리는 만무해서다.
수상작가들 전체가 그런 작품을 오랫동안 꾸준히 써 온 작가들이기에, 수상작을 바로 읽어본다고 해서 그들의 작품 세계는 이해하기는 어렵다.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출신(국가나 도시)과 배경(시대), 연보를 훑고 이해해야 한다. 연보를 달달 외우지 않는 한 작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의 문학작품도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읽는 것은 어려운데, 외국 문학을 접한다는 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을 읽기 전, 작가와 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수월하다. 그러나 작가와 작품 이해는 전문가가 미리 만들어둔 정리 자료가 없다면 스스로 탐구하기는 힘들다. 일반인들이 문학의 한 영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 작가를 이해하고, 작품 속의 의미와 연계해 정리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실제 작품을 읽는 것보다 작가 이해가 더 어려울 때도 있다. 마치 ‘시시포스’가 바위를 밀어 올릴 때의 힘겨움 수준이다. 게다가 정작 읽어야 할 작품은 읽지도 못하고 작가의 언저리만 서성거리는 꼴이, 마치 저주받아 굴러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와 같다. 그러다 보면, 시시포스처럼 ‘언제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품고 낙담하다가 제풀에 지쳐 노벨문학상 수상작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
자, 이제부터 이런 어려운 읽기는 전문가에게 맡기자.
시시포스 신화 (사진출처: yes24)
대중은 소설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취미로 읽으면 된다. 평론가가 아닌 이상 비평문을 쓸 이유도 없다. 내 맘대로 즐겁게 읽으면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은 시시포스가 밀어 올려야 할 바위가 아니다.
단순히 읽으면 읽히고, 덮으면 보이지 않는 문학작품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이해하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문학에 정답이 있는가? 당연히 없다. 작가도 작품을 통해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작가가 생각하는 것을 허구로 완성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정답을 찾으려 하는가?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 길’을 제시했을 뿐인데, 굳이 독자가 지도를 만들어서 옳은 길을 찾으려고 하는가?
과연 노벨문학상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답이 나왔다! ‘그대로 읽자!’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즐겁게 읽고, 그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다 보면 어느 틈엔가 작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종종 작가들도 거대한 담론에서 벗어나 사사로운 작품을 쓰기도 하기에 작품을 계속해서 대하다보면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진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그대로 읽기’ 시리즈는 필자가 읽었던 노벨상 수상작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노벨상을 받은 모든 작가를 다룰 수도 없고, 다루는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다룰 수도 없다. 다만, 전문가들에게는 환호받지만, 아직은 대중들이 잘 모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읽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서 시작하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그대로 읽기’ 연재 또한 철저히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이 중심이다.
학창 시절 국문과에 다니는 후배와의 짧은 에피소드를 나누면서 프롤로그 전편(前篇)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선배는 요즘 어떤 책 읽어요?”
- 응. 카뮈.
“어렵지 않아요?”
- 소설이지 뭐. 그냥 읽는 거지. 너도 읽어봐!
“아니에요. 아직 카뮈는 어려워요.”
이후에도 난 ‘그대로 읽기’를 계속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뮈 전집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후배는 그 후로 카뮈를 한 편이라도 읽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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