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인간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동물들도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인간만큼 사고능력이 뛰어난 동물은 아직 없습니다.
지금부터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봅시다. 먼저 제목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글자를 읽습니다. 한 쪽을 넘기고 다음 쪽으로 넘어가서 글자를 따라 눈동자가 이동합니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어느덧 책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합니다. ‘나는 무슨 내용을 읽었지?’ 책 수준이 높아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눈으로만 글자를 훑지 않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글의 내용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바보!”라고 하면서 소녀가 소년에게 돌을 던졌다’는 구절을 읽다보면, 독자는 ‘바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즉, 독서 하는 동안 계속 단어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글쓰기로 넘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 생각합니다. 간단한 문장을 쓸 때도 계속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글쓰기를 계속합니다. ‘다상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작가도 있다고 앞에서 말했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생각 없이 책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쓸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다상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을 읽기, 쓰기와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생각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입니다. 물론, 글쓰기 전에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도 독서 과정과 글 쓰는 과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평소에 독서와 글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면, 많은 생각이 필요할까요? ‘다상량’은 독서와 글쓰기와 연관한 것이지,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이뤄지는 행동이 아닙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커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는 두 가지 사고방식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어떤 상황에 기계적으로 대처하는 수준의 사고, 다른 하나는 심사숙고하는 사고입니다.
전자가 일상생활에 관련한 사고라면, 후자는 당연히 글쓰기와 관련한 사고입니다. ‘다상량’은 생각을 단순히 많이 한다는 게 아니라, ‘심사숙고(深思熟考)’ 한다는 의미입니다.
독서하고 글을 쓸 때 더 많이 생각 하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 사고능력이 좋아지고 창의력 발달에 좋다는 이유가 더 많은 생각을 깊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글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필자가 한 단어, 문장, 문단을 작성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삼다’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글쓰기를 하려 한다면 동시에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글쓰기는 독서와 깊은 생각과 글쓰기 연습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글자 쓰기도 어려운 어린아이라면 독서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책 읽은 후의 감상을 말과 그림 등으로 표현해 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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