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 : 권력과 성공(2)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30)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7.17 17:08 의견 0

성공을 갈망

교회의 성도들은 부자들을 좋아하고 정치인도 좋아한다. 성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받았다는 상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기복신앙(祈福信仰)’은 그 시비(是非)를 떠나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한국 교회를 유지하는 큰 동력이다. 필자와 관련한 예를 하나 들고자 한다.

필자는 199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해서 재수생 시절을 보내게 됐다. 가정 분위기도, 재정적인 수준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대학은 들어가야 했기에 재수를 결심했다.

재수를 시작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거리를 두었던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많은 간증 거리가 있지만, 언급은 하지 않겠다. 이 글은 간증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 열심히 다녔다. 매주 주일 저녁 예배까지 드렸고, 성가대 봉사, 유년부 보조교사, 그리고 재수 학원을 1주일간 빼먹고 농활도 다녀 왔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정성껏 예배를 드리는 필자를 보면서 많은 성도가 처음에는 열심 있는 청년으로 바라봤지만, 수능시험 날짜가 다가오면서 필자의 열정이 부담됐다고 한다. 이유는 ‘저러다가 대학에 떨어지면.....’이었다. 재수생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건 좋은데, 시험 성적이 안 좋으면 청년의 열심과 그를 응원했던 성도들의 신앙적 분위기는 상실감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필자는 시험을 그럭저럭 잘 치렀고, 개인적인 신앙의 열심과 지지해줬던 성도들의 마음에 큰 기쁨을 줬고, 동시에 안도의 한숨까지도 선사해 주었다. 필자의 사례는 금요 찬양 예배 때 담임 목사님을 통해서 다시 한번 부각 됐는데, 목사님도 열심히 교회 다니는 청년에 대해 무관심하기 힘들었고 다른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부담을 느꼈는데, 필자가 대학교에 합격하자 부담이 감사로 바뀌었음을 직접 전했다고 한다.

당시 교회 내에서 절대적 권위의 상징이셨던 담임 목사님의 직접적 언급으로 필자는 교회 내 유명 인사가 될 수 있었다(성인 교인 800명 이상이 출석하는 교회로 작은 교회가 아니었다). 많은 성도가 필자를 알아봤고, 장로님들이 먼저 인사를 청하고, 중고등학생들한테는 원치도 않는 ‘롤 모델’이 됐다. 가장 큰 이유는 한 재수생이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혹, 필자가 삼수했다면 어땠을까?

교회는 성공을 위한 부적이 아닌데, 한국 교회는 교회가 여전히 부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천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께서 자신한테 열심이 있는 한 인간을 출세시키는 일은 일도 아니라는 것이 교회의 논리다. 논리적으로 보면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틀렸다. 쉽게 생각해 보자.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열심인 한 인간을 출세시킬 이유가 있을까?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출세시킬 이유가 있을까? 소수를 택해서 성공시키는 것보다, 지금도 몇 초 만에 한 명씩 굶어 죽어가는 국가나 사회에 '만나'를 내려주시는 것이 더 전지전능한 신 같아 보이지 않을까?

구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주인공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이 좋은 본보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을 개인 성공의 표본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수많은 등장인물, 특히 선지자들의 최후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바알을 섬기던 제사장들을 도륙한 후 자신감 충만했던 엘리야마저도 죽기를 청했을 정도였다. 가장 두툼한 선지자서의 이사야조차도 잔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신약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주인공인데, 십자가형으로 죽었고 대표적인 사도 베드로와 바울도 순교를 피할 수 없었다.

교회는 순교로 세워졌다. 그러다가 순교자를 만드는 기관이 됐다. 역할이 바뀐 것이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참된 종으로 인정하실까? 지금처럼 거대 권력을 차지하고 세상을 지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교회를 과연 전지전능한 신이 칭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