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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거버넌스(1)] 블록체인에서 발견하는 거버넌스의 가능성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8.06 12:05 의견 0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단어가 일상 속에서 흔하게 사용하게 된 기간은 오래되지 않았다. 

기존에는 중앙 정부인 ‘거버먼트(Government)’가 세상을 다스렸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됐지만 중앙 정부는 여전히 힘을 과시하고 있고, 행정권만 간신히 넘겨받은 지방자치단체 역시 ‘준 거버먼트’ 역할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체단체가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걸 보면 준거버먼트라고도 부를 수 없는 듯하다. 

한편 1990년대 후반부터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단체가 우후죽순(雨後竹筍) 등장하고 있다. NGO의 출현은 ‘시민’이 하나의 대안이자 새로운 권력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시민단체 역시 ‘거버먼트’의 관료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시민영역에서 비슷한 권력자만 양산했다. 

주기적으로 보도되는 시민단체 대표들의 공금 횡령 등과 관련한 문제는 NPO(Non-profit organization) 표방을 무의미하게 했고, 오직 회원과 후원금을 늘리기 위한 거리 판촉행위는 이제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행하는 노방전도만큼이나 외면받는 분위기다. 

이런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편 그 와중에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해서 통합, 연합, 연대 등을 긍정적으로 추구하려고 했으나, ‘거버넌스’를 제대로 이해한 공무원도 없고, 정치인도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거버넌스’는 또다른 ‘거버먼트’가 됐을 뿐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버넌스’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권력 기구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개념이라 여겨진다. 

초기 ‘거버넌스’

‘거버먼트’의 대안으로 제시된 ‘거버넌스’는 기존 공무원 중심의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민관연합체 역할을 기대하게 했다. 과거로부터 강한 국가에 눌려왔던 국민 혹은 시민이 본격적으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수많은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거버먼트’는 이런 시민단체를 민초(民草)로 생각했고, ‘이제야 한국에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를 확산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속절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데, 관료집단이 가지고 있는 재력(예산), 행정력 등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시민단체들은 처음에는 강하게 소신을 피력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관의 입맛에 맞게 그들의 마음을 고쳐먹어야 했다. 스스로 자생적으로 성장하기 힘들었던 초기에는 ‘거버넌스’의 호스트 역할을 하는 ‘거버먼트’가 다른 영역의 힘보다 컸기 때문에 말만 ‘거버넌스’였지, ‘거버넌트’를 후원하는 거수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관이 함께 모여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었다는 의미만큼은 충분히 상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버전 ‘거버넌스’

초기 거버넌스를 예산과 행정력이 있는 ‘거버먼트’가 주도했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국민의 다양한 니즈가 등장하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거버먼트’는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기존 공무원 체제로는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희망 사항을 다 듣기도 벅찼으며, 특히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과학기술 앞에 거대한 관료집단은 적응은 고사하고 대응하기조차도 어려웠다. 

 

이제 ‘거버넌스’는 ‘관’에서 ‘민’으로 힘의 이동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권력을 경험한다. 공무원들은 그저 자리만 만들어주고, 주로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면서 해법을 만든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지만, 시민단체 역시 기존 관료집단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권력이 생기자 그 힘을 공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예로 규모 있는 시민단체 대표들의 횡령과 직원 착취 등과 관련한 보도가 계속 등장했다.

관료주의의 한계에 봉착한 ‘거버먼트’에 이어서 시민단체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우리나라 ‘거버넌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시민단체는 관료집단이 그럭저럭 잘했던 행정적인 부분조차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서 기획과 실행을 별도로 진행해야 했고 이러한 이중적인 사무 처리는 ‘예산의 낭비’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시민은 함께 하는 공무원에게 불만이 있었고, 공무원 역시 시민 대표들에게 불만이 있었다. 

이쯤 되면, ‘거버넌스’가 언급조차도 안 될 것 같은데, ‘거버넌스’는 새롭게 조성되고 해체되기를 되풀이했다. ‘거버먼트’나 ‘NGO’ 등이 단독으로 행하는 것보다는 ‘거버넌스’를 조성해서 행하는 편이 양자에게 득이 됐기 때문이다. ‘거버먼트’는 형식적으로나마 민의를 들었다는 생색을 낼 수 있었고, 시민단체는 예산 지원, 행정지원 등을 받을 수 있었으니 ‘거버먼트’와 함께 하는 일을 마다할 수 없었다.

SNS의 등장에 걸었던 기대

SNS 혁명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아랍의 봄(혁명)’은 SNS가  정치·사회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도구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후 “Occupy Wall street!”도 SNS를 활용한 운동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 대통령 탄핵의 쾌거를 달성한 촛불집회도 SNS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서 모이고 해체하기를 원활하게 할 수 있었고, 이러한 디지털 도구와 인간의 정치적 인식의 결합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환상이었다. 아랍은 여전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월 스트리트’는 굳건하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은 바뀌었으나, 자릿수 다른 세력*이 정권을 차지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생과 현실을 모르는 권력층은 그저 ‘책상물림’만 반복할 뿐이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재산을 보면 자유한국당이 ‘0’ 하나가 더 붙어있다는 말이다. 일반인들이 봤을 때 수백억 자산가나 수십억 자산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있는 ‘ㄴ’일 뿐이다)

기존 ‘거버넌스’가 이루지 못한 거대한 변혁의 물꼬를 튼 SNS였지만, 그 활용은 곧 한계에 봉착했다.

 


SNS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되기 힘들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언어 중에 ‘통섭’, ‘협력’, ‘융합’, ‘네트워크’ 등이 있다. 이 단어들이 갖는 공통점은 ‘장벽 없음’이다. 통섭(統攝)은 각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말이고, 협력(協力)은 다른 생각, 가치관을 가졌다 하더라도 토론을 통해서 ‘선’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융합(融合)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언어이기도 하면서,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폭발적인 화학반응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는 세계화를 의미하면서 역시 시공간의 장애를 극복하는 언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벽의 소멸과 더불어 하나의 의미를 더 찾는다고 한다면, 해결방법을 찾는 방식의 변화다. 전문가에서 집단지성으로 방법론이 이동 중이다. 실제로 많은 실험결과 전문가 집단이 내놓는 해법보다 다양한 집단이 모여서 제시한 해법이 더 유용하다고 한다. 

그러나 SNS로 표현된 민중의 의지는 집단의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성(intelligence)’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선동하기(instigate)에 가깝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SNS 사용 자체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스압(스크롤 압박)’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세대들은 장문의 글 읽기를 꺼리고, ‘스킵(skip)’한다. SNS를 활용해서 불특정 다수를 쉽게 모으고 해산시킬 수는 있지만, 이들을 ‘집단지성’으로 만들기는 어렵고 책임지는 대안 세력으로 조직하기는 더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SNS의 단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SNS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블록체인 거버넌스’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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