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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60주년(7)]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혁명 (下)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0.05.17 15:35 의견 0

◇민주주의의 실현 방법으로써의 혁명

민주주의와 혁명은 항상 보폭을 같이하며 동행했다. 공식적으로 혁명으로 인정된 사건은 거의 없음에도 우리는 혁명과 같은 사건–대표적으로 ‘4·19’, ‘5·18’, ‘6·29’와 최근에 ‘촛불’ 등과 전쟁을 20세기부터 이번 세기에 걸쳐 겪고 있다.

잦은 ‘혁명’이 등장했지만 ‘혁명’은 쉽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언어다. 본래 국가 구조의 근본이 바뀌어야 비로소 ‘혁명’이라 칭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와 사회체제를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일반적으로 혁명이라 부른 사건들이 혁명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4·19’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혁명이라 규정됐지만, 혁명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가운데 있으며, 과거 운동권들이 혁명이라 칭했던 ‘5·18’은 민주화 투쟁이라 부를 뿐 혁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혁명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걸까? 혁명이 파생하는 감성, 열정, 대변혁 등의 의미가 집회나 봉기의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혁명이라 칭했던 상황은 한 사건을 주도하고 성공한 집단이 명분을 세우기 위해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한 언어도단에 불과했다. 故 김종필이 쿠데타로 규정된 ‘5·16’을 회상하며 ‘혁명’이라 표현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쿠데타 세력 역시 그들의 행위를 혁명으로 규정하기 위해 민주주의 질서확립을 내세웠는데, 후에 보편적인 민주주의 원칙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게 되자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명분을 세우려 했다. 또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불법적 군사 행위를 혁명이라 포장해 강압적으로 선포했다.

이에 국민은 사이비 민주주의에 대해 분노했고, 참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한없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분노와 열망이 시너지를 발휘해 폭발했을 때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한반도를 덮을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보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폭력 혁명은 정당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폭력 혁명은 민중이 주체가 됐을 때만 혁명으로 기록됐을 뿐, 기존에 존재하는 폭력적 수단으로 권력을 쟁취한 경우에는 혁명이라고 하지 않았다. 혁명의 세기로 불리는 18~19세기도 민중이 일어나 국가 구조를 바꿨기에 역사 속에 혁명으로 기록됐지, 제국주의의 무력지원으로 얻은 체제전복은 혁명으로 기록된 사례가 없다. 아무리 강한 물리력으로 민중을 제압할지라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철인통치’(가디언십_Guardianship)와 민주주의

과거의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위한 강력한 파도였다면, 20세기를 기점으로 발생한 혁명은 민주주의를 위한 화산분출이었다. 민주주의가 지닌 의미는 여러 가지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민주(民主)’는 백성이 주인이라는 의미가 강조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상대적 개념으로 ‘독재(獨裁)’가 등장한다. 그러나 독재도 이상주의화될 수 있다. ‘철인통치’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이상적인 독재를 ‘철인통치’라고 한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은 독재의 장점을 내세우고, 시대의 영웅이었다고 표현하며 그리워한다. 이승만 역시 독재자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겠지만, 당시 이승만의 지도력에 대한 공(公)을 예찬하는 사람도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철인통치’는 하나의 이상일 뿐 한계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서 완벽한 통치는 불가능하다. 분명 누군가는 중국 요순시대를 말하고, 로마 시대의 5현제 시대와 조선 시대의 세종대왕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대의 주인은 진정한 ‘민(民)’이 아니었다. 왕이 곧 국가였고 제국이었던 시대였다. 그 시대와 현재를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국가의 개념과 통치 기반, 주인이 달라서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후 베버가 내세운 ‘카리스마적인 권위’ 개념이 ‘철인’과 유사해 보였지만, 이런 개념에 비춰본다 하더라도 독재자들의 명운은 길어야 한 세대에도 못 미쳤다. 이는이승만 독재 12년, 박정희 독재 18년만 봐도 알 수 있다.

‘철인’은 신이 아니기에 언젠가 죽는다. 강력한 독재자일수록 후계자가 제대로 서지 못한다. 독재자 이후 권력 붕괴 현상이 발생하고 그 공백을 쉽게 메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이승만 이후, 박정희 이후의 벌어진 사회적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철인에 가까운 독재자는 속성상 2인자를 수시로 바꾸고 경쟁시켜서 도전자를 제거한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러운 권력의 공백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철인통치’의 비현실성을 비판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비난했고, 실제로도 제도를 운용하는 관료나 국민의 수준이 높지 않을 경우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꼴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이 강력한 물리력으로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제로 이식하기도 했으나, 역으로 독재자가 정권을 쟁탈해서 환영받았던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민주주의 이식 과정의 정당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나에게 있는 다홍치마가 다른 사람에게도 반드시 어울리는 옷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장점은 동태적이라는 점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의 병참능력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로마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듯, 긴 호흡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했다. 잠시 왜곡되고 유린되고 중단되기도 했지만, 결국 승리의 월계관은 민주주의의 머리 위에 놓여 있었다. 민주주의에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면서도, 동물성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무결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스스로 비판하면서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완벽한 독재란 없고, 공포정치도 한계에 다다르면 눈치만 보고 있던 새로운 세력들이 민중을 등에 업고 등장한다. 중국의 서경(書經)에 기록된 “민심은 천심”이라는 구절을 푯대 삼아 국민을 그들의 명분으로 삼는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가 혁명으로 앞선 독재를 넘어서는 순간이 다시 도래하게 된다.

◇‘좌파 독재’란 표현을 풀면 민주주의의 좁은 문을 의미한다

현재 정권이 독재정권일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과 비교해 보자.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평등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동태적인 민주주의의 문은 계속 좁아진다. 그래서 새로운 독재를 만들며 좁은 문의 문턱을 넘어서려 한다.

이전 정권을 독재로 규정했던 국민은 촛불로 정권을 태워버리고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좌파 독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를 진짜 독재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술적인 개념이나 일반 상식으로 버더라도 현 정권은 독재가 아니다. 언제라도 정권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며, 언제라도 전 정권처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국민은 또다시 가상의 적 ‘독재’를 선정하고 민주주의 문을 더 좁게 만들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플라토닉 러브를 주제로 삼고 있다. 결코 이뤄지기 힘든 연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로 사랑하지만, 지향점이 다르기에 함께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 역시 이와 같다. 권력을 잡은 소수나 민중 모두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그들이 서로 바라보는 민주주의는 다르다. 현재 권력자들은 더 좁은 민주주의 길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반대다. 더 좁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그리고 역사는 항상 민중의 바람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불었다. 아무리 방향키를 바꾸려 해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혹, 대세를 물리력으로 막으려 한다면, 다시 한 번 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를 달성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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