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바뀌지만, 교회는 늙었다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47)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8.21 14:42 의견 0

시대는 바뀌지만, 교회는 늙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말하는 투명성과 다양성, 그리고 개인화는 한국 교회가 추구하는 성격과 맞지 않았다. 한국 교회는 철저히 밀실 행정이 실행되고있으며, 획일적인 순종을 강요했다. 혹 토론이라도 할라치면, 사탄의 계교로 여겨져서 배척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필자는 교회에서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결론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토론중 비판이라도 있게되면,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나, 상처받아서 이 모임에 못 나오겠어.”라고 이야기한다. 상처받은 한 명, 그 한 명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라는 생각에 토론은 유명무실해진다. 혹, 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지면 누군가가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 특히 목사와 장로의 토론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개인적인 발언은 교회의 구태의연한 방침을 순종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돼 담임 목사한테 전달되지 못한다. 혹, 그 발언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면 누군가가 찾아와 “당신이 원하는 교회를 찾아 떠나시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교회를 더 힘들게 했는데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그리고 SNS의 출현은 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목사들이 설교하는 내용은 스마트폰을 통해 수시로 검색되고, 즉시 진위(眞僞)가 가려진다. 그래서일까? 한국 교회는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지만, 크게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물론, 성도의 연령층 자체가 고령화되었기에 스마트폰과 SNS를 교회에서 원활하게 활용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인지도 모른다(65세 인구가 14%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라고 하는데, 교회는 이미 넘어섰다. 초고령화 기준 21%도 넘었을 것이다. 특히, 지방 교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세대 차이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교회는 청년층이 줄어드는 것을 간파하고, 90년대 후반부터 청년층을 위한 별도의 예배를 실행했다. 필자가 청년부 시절, 청년부 예배는 토요일에 있었다.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고 다음 날 본 예배를 다시 드렸다. 즉, 싫든 좋든 온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렸었는데, 구분해서 예배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나눔이 분열이었음을 깨달아야 하는데, 아직도 차이(差異)에만 치중해서 더 세부적인 분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배를 연령층으로 구분한 교회의 전략은 성공했을까? 쉽게 말해서 청년들의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됐을까? 혹은 청년 예배를 별도로 드린다고 해서 청년 성도가 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토요일 등 주일과 별도로 드렸던 예배는 사라지고, 기존에 유지했던 모임도 사라졌다. 예배도 줄고, 교제 시간도 줄어들었다. 한국 교회는 청소년, 청년 성도들이 줄어들고 있음을 심각하게 걱정한다. 걱정은 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만을 운운한다. 이미 세대 차이로 부모와 단절된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이 가정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로 드렸던 예배가 조각난 상태에서 교회 공동체를 강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미 교회에서 구분시킨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다시 융합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들을 별도로 구분시킨 기간만큼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필자가 다니는 교회에서 청년들과 장년층 예배를 함께 드리는 방안을 논의했었는, 그렇게 하면 많은 청년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전달됐다. 그 정도 수준의 청년이라면 다른 교회로 떠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정도 수준이면, 한 마리 양이기 보다는 염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