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다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48)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8.23 10:59 의견 0

3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회는 시대적 변화에 실패했고, 임기응변으로 세대 간 분리를 실행했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세대 간의 깊은 이랑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는 시설과 시스템이 좋은 대형 교회로 청소년과 청년들이 이동하도록 했다.

현재도 아이의 교회 교육 환경을 위해서 교회를 옮기는 가족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교회에서 부모들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 연세가 있는 여성 성도들이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는 교회도 있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윗세대의 노력이 교회를 부흥시키는 데 얼마 동안이나 작용할 수 있을까? 지금 3040 세대는 그들이 50대가 넘었을 때 다른 3040 세대의 자녀를 돌봐 줄 거로 생각한다면 큰 오판이다. 당장은 중소규모 교회의 청년부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대형 교회는 그렇지 않고, 작은 교회들은 점점 사라지고 큰 교회만 한동안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많다고 해서 혁신과 개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시인 사무엘 울맨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다.”라고 했다. 아무리 청년이 많아도 교회가 젊어지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교회에서 청년들의 역할은 장년층을 위한 찬양단 역할, 장년들의 후원을 받아 비전트립(vision trip)을 떠나거나 교회 행사의 흥을 돋는 역할을 주로한다. 비전을 품고 한국 교회의 주역으로 나서야 할 청년들은 교회의 메인행사를 위한 오프닝 담당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년들의 신앙적 열정도 크지 않다. 10년 넘게 청년 사역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한 해가 다르게 기독교 청년들의 삶 속에서 세상과의 갈등이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보수적인 교회에서 주일 날 군것질을 하는 것은 안식일을 위배하는 것이라 하여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필자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간단한 간식을 사주다가 한 집사님으로부터 안식일을 운운하면서 한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지나서 21세기가 되자, 주일은 물론 수련회를 다녀오는 날에도 노래방을 찾아(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유흥)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움직였다. 아래는 당시 상황이다.

 

▶청소년 : (웃으면서 다가온다) 선생님, 수련회도 끝나고 해서 저희끼리 노래방을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필자 : (고개를 꺄웃거리며) 내가 노래방을 좋아하고, 너희들과 평상시 잘 놀아주기는 하지만, 수련회를 다녀오자마자 노래방을 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데.
▶청소년 : (실망한 모습으로) 이 시간에는 보호자 없이 노래방 출입이 어려운 것 잘 아시잖아요?
▷필자 : (미안해하며) 그래도 오늘은 아닌 것 같아. 다른 날 가도록 하자.

 

학생들의 기분을 잘 맞춰주고, 당시 기성세대의 눈총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해서 청년층과 청소년층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교회 학생들이 교회 분위기와 다른 일을 할 때 필자를 보호자로 동반하려고 했다.

필자가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회 내에서는 절대로 전자 기타나 드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장광설을 퍼붓던 담임 목사 사모님의 강력한 저지(?)가 있었는데, 몇 년 사이에 교회 본당에는 전자 기타, 드럼, 베이스 등 전자 악기가 들어와서 예배를 지원하고 있었다.

단, 3년 사이에 교회는 큰 변화를 겪은 것처럼 보였다. 주일 날에 간식을 구매하는 일도 스스럼없이 진행하고 있었고, 예배 시 반바지나 샌들을 신고 오는 성도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필자는 1998년 저녁 예배 당시 반바지와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필자를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신 강도사님 한 분이 꽤 강한 어조로 질타하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필자는 그 질타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반박했다. 그 반박이 거셌는지 이후 강도사님은 필자가 어떤 일을 하든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이러한 생활 속의 문제 외에도 ‘신앙과 음주(흡연)’, ‘신앙과 돈’, ‘신앙과 성공’, ‘신앙과 섹스’ 등 다양한 문제가 20대를 갓 넘은 청년들의 고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고민이 아니라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예로 2000년대 후반에 지도했던 청년들한테는 “술 먹는 사람?”이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술 안 먹는 사람?”이라고 질문해야 손드는 청년들이 더 적었다.

청년들의 변화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교회가 청년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훌륭한 기독교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고, 많은 기독인 유명인들이 비판을 받는 가운데 청년들이 의지할 멘토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고지론에 혈안 돼서 앞만 보고 달린 교회는 예전처럼 쉽게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들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기도해줘도 취업, 결혼, 출산 등에 있어서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은 개혁의 상징이 아니라 정체성조차도 확립하기 힘든 계속 돌봐야 하는 아이의 연속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