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_이야기(16)] 경복궁의 수난(下)

시사-N | 기사입력 2018/03/16 [11:20]

[경복궁_이야기(16)] 경복궁의 수난(下)

시사-N | 입력 : 2018/03/16 [11:20]
1895년 경복궁에서 고종의 비, 명성황후가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고종은 이후 경복궁을 버리고 덕수궁 옆에 자리 잡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떠납니다. 이 사건은 경복궁이 조선의 왕궁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마치게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난 뒤, 경복궁은 더욱 큰 수난을 겪게 됩니다. 심지어 경복궁을 헐어 창덕궁을 복원하는데 사용하기까지 하지요. 또 경복궁에서 박람회와 미술전시를 열면서 경복궁은 계속해서 훼손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경복궁은 더 큰 시련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1926년, 경복궁 근정전 앞에 일본 총독부 건물을 세우기로 결정합니다. 이 건물은 1945년까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최고 행정관청으로 사용했습니다. 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유서깊은 경복궁의 부속건물들이 많이 부숴졌습니다.

 

총독부 건물은 광복 이후에도 중앙청이라 불리며 정부중앙청사 건물로 이용되었습니다. 한국전쟁까지 발발하며 어수선하고 혼란한 상황이 계속된 것도 있었고, 정부기능을 하고 있어 빠른 대안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91년부터 경복궁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일제잔재를 없애는 의미로 중앙청을 폭파함으로써 총독부 건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경복궁은 지금도 복원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45년까지를 목표로 경복궁의 원래 모습을 찾는다는 계획입니다.

 

 

경복궁에 자리한 조선총독부의 사진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건천궁과 향원정 주변은 왕실 가족들과 궁년 내시들의 생활하던 구역으로 ‘OO전’, ‘OO당’이라 불리던 건물 수십 채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1939년 일제는 건천궁을 포함한 모든 건물을 헐어버리고 미술관을 지었습니다. 조선의 전통을 끊고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해방 후, 미술관은 민속박물관, 전통공예전시관으로 사용되다 철거되었고 건천궁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제의 만행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훼손한 사례도 있습니다. 경회루 서북쪽에 하향정이 있는데, 하향정은 경복궁을 처음 건립했던 때에는 없었던 건축물입니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에도 하향정이란 정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하향정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건물로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경복궁 복원을 위해 철거해야 한다, 역사 교육에 활용해야 한다 등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문화재를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청산해야 할 괴로운 역사지만, 조선총독부 건물도 파괴하지 않고 어디엔가 옮겨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했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청년, 청소년들 중에는 조선총독부의 존재와 위치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경복궁 답사를 마쳤습니다. 감회가 어떠신가요?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면서 감회와 생각들을 잘 정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tip경복궁을 떠나기 전, 스마트폰으로 조선총독부 이미지 검색해 현재의 경복궁과 대조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재권 / 한누리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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