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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_이야기(17)] 경복궁 중건 150주년을 맞아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6.27 11:26 의견 0
조선의 정궁으로 건립된 경복궁. 그러나 경복궁은 크고 작은 화재로 수난을 면치 못한 궁궐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초기에 궁궐이 모두 불타 없어지면서 경복궁은 정궁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폐허가 된 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조선 말 실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주장으로 고종 2년이던 1865년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었다. 3년 후 1868년 7월 2일 고종 임금이 이어(移御;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했으니 경복궁은 올해로 중건 15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나 경복궁은 또 한 번 소실되었고 대대적인 공사를 반복한 끝에 1872년에 최종 완공된다. 하지만, 경복궁의 수난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일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했고 상품진열관을 만든다는 구실로 경복궁의 건물 4천여 칸을 헐며 경복궁을 훼손하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916년에는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착공하며 경복궁은 중건 후 50년을 채우지 못하고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오늘날 경복궁의 모습.

(출처 : 경복궁 홈페이지)

 

오늘날 경복궁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으로 경복궁은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1990년에 시작된 복원정비사업은 5년 주기로 단계별 사업을 이어가고 있고 2차 복원정비사업이 끝나는 2030년 무렵에는 고종 당시 경복궁 궁제의 76% 수준까지 복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왕조가 명운을 다한 지 100년이 지난 현대에도 경복궁의 복원에 힘쓰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경복궁이 갖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조선 말의 흥선대원군이 무리를 해서라도 경복궁 중건을 결심한 이유도 이 떄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경복궁 중건 당시 조선의 상황은 어땠을까 우선 조선 말 정세를 통해 경복궁 중건의 당위성을 추측해보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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