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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제대로 준비하자! : 문제 인식(2) 무지에서 오는 불안?

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시대(41)

조연호 작가 승인 2018.11.30 12:26 의견 0

문제 인식 3.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지에서 오는 불안

- 공부도 하고, 대화도 하자!

필자는 결혼을 앞둔 후배를 축하하기 위해 후배들과 친구 한 명과 함께 저녁 모임을 했다. 필자는 원래 책 이야기나 트렌드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그날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이야기와 ‘넛지(Nudge)’ 이야기를 했다.

필자 : 리처드 탈러의 ‘넛지’라는 책 다들 알지

후배 1 : 넛지요

후배 2 : 들어 본 것 같은데요.

후배 3 : 멀뚱멀뚱.

친구 : ‘넛지’ 노란 책 말하는 거지

필자 : 전 세계에서 ‘넛지’가 가장 많이 팔린 국가가한국이라던데.

많이 팔렸고, 대중매체에서도 많이 소개했고, 서점마다 진열된 책인데, 내 주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필자의 지인들이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은 아니다. 2명은 서울에 있는 교육대학교를 나와서, 초등학교 고학년 담임을 맡고 있으며, 현재 교육대학원 재학 중이다. 다른 한 명은 서울대에서 의(醫)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후배고, 친구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 들을 만나기 전에도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님 한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역시 ‘넛지’는 잘 알지 못했다. 필자의 주변 사람들만 관심이 없는 분야여서 잘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일반화시켜도 될까

현재 ‘넛지’ 보다 사회적으로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이 들어 본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들었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다. 자주 들으면,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착각이다. 자신이 담당자이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착각이다. 최근에 한 경제학과 교수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와 관련한 지식은 필자보다 많다고 할 수 없었다. 그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나는 것은 금융 분야 관련 전공 교수가 있는데, 그 교수님은 본인보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해 더 모른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열풍이 불었다. 특히, 비트코인 열풍이 한국에서는 더 세게 불어서 한국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대한민국 정서를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기질이(투기성 말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산적으로 발휘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앞에서 필자가 말했듯이 공무원, 교육계,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 심지어 언론기관조차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모르니 당연히 두려워야 한다. 독자들도 초행길이나,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되면, 두려울 것이다.

문제는 두려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우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학습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면 두렵지도 않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본인은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현명하다고 말한다. 많이 들어봤고,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라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필자는 먼저, 겸손히 무지를 인정하고 무지에 대한 두려움을 발판 삼아 학습하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지를 깨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고, 공공기관에서도 말로만 4차 산업혁명을 크게 선전할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실질적인 학습 방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보화니, 인터넷 시대니 엄청나게 떠들어 댔지만 실제로 정보와 인터넷을 가지고 생산적인 일, 즉 소득을 창출했던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저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을 독식했을 뿐이다. 그러니 ‘성장은 있으나 고용은 없다’라는 암울한 구호만 떠도는 것이다.

세대(generation)로 구분한다면, 50대 아랫세대라고 봐야 한다. 그 윗세대는 컴퓨터와 친근하지 않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어르신 세대는 개발독재 시대의 향수에 젖어 있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다시 등장해서 험난한 세계무대에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리더가 출현해도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잘 이뤄진 상태고, 포퓰리즘적인 경향이 없진 않으나,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촛불’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영화 1987을 시청한 문재인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봤다. 제목이 “6월 항쟁 완성 시킨 것이 촛불 혁명”이었다. 조금 이상해서 다른 기사들을 검색했는데, 대통령이 촛불 항쟁이라는 표현은 썼어도 촛불 혁명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기자는 항쟁과 혁명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를 보여줬다. 엄격히 따지면, 1987년의 항쟁이 혁명에 가깝다. 헌법을 바꿔서 적어도 국민의 투표권을 찾아 왔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상명하달식의 일방적이면서도 신속한 결정은 이뤄지기 힘들다. 대신 시간은 더 소모되고 더딜 수 있지만,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토론을 통해서 도출할 수 있다.

미래의 무지에 대한 두려움은 함께 극복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화의 시작이 필자가 제언하는 웰빙-포용의 사회로 나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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