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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34편: 죽음

조인 작가 승인 2020.09.20 20:57 의견 0

“이렇게 내 경력이 끝나나 보다. 할 만큼 하기도 했지. 평생 시민운동만 하다가 정치를 하니, 재미도 있었고 권력의 맛도 골라 먹을 만큼 경험했고.”

김 비서와 관련한 보고를 받은 시장은 달콤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수년간의 일들이 주마간산처럼 지나간다. 채 5분이나 됐을까? 그 짧은 시간에 거의 10년이 지나간다. 영화 <인셉션>에서처럼 현실에서의 시간과 꿈속 시간이 다르듯이. 지금 시장의 머릿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큰 차이가 있다. 고도로 정밀한 물리학 시계로 재면, 책상 위에 있는 시계가 지면에 있는 시계보다 더 느리게 간다. 가장 꼭대기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가졌던 시간이 오히려 독이 돼 남은 시간을 모조리 몰수해 간다.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만있자, 그래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시장은 책상 오른쪽 가장 밑, 자물쇠로 잠겨있는 서랍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두 번째 손가락을 펴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한다. 

“삐이익~~ 스르륵~~”

서랍은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어두운 밤 몰래 엄마 몰래 먹는 과자에서 나는 바스락 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차라리 누구라도 있었다면, 시장은 서랍을 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 있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휴대폰을 들더니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잠시 후...

“접니다.”
“네.”
“아시겠지만, 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게요. 어쩌다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껏 가만히 있다가.....”
“마무리를 잘 하셨어야.....”

둘의 대화는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한다. 그럴 필요가 없을만큼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였다. 염화미소(拈華微笑)였을까? 그런 부처의 그윽한 웃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짧고 조용하지만, 애절하고 절박한 목소리로 시장이 애걸했다. 흡사 뱀에게 둘둘 감겨 죽음을 앞에 둔 개구리가 ‘개굴’ 하면서 애원하는 목소리와 같았다. 그러나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냥 한숨 소리로 들었을 것이다.

“네. 일단,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죠.”
“아, 거기 말이죠?”

“뚜뚜~~”

대답 없이 통화가 종료됐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은가? 이번 일도 잘 정리될 거야! 힘내자고.’

듣고 싶은 답을 들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실날같은 희망에라도 자신의 목을 걸어야 한다는 걸 시장은 잘 알고 있었다. 시장은 스스로 독려하며, 약속 장소로 나가기 위해서 여장을 챙긴다. 

평소에도 가벼운 복장으로 종종 나서기에 많은 공무원과 경찰들도 가볍게 목을 숙여 인사할 뿐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몇몇 사람만 ‘오늘 일정이 없으신가?’라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공관을 빠져나온 시장은 걸었다. 목적지가 있지만,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걸었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는 모양새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거 같았다. 

한 시간 남짓 정신없이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었다. 좁은 공터가 끝없이 멀어지는 우주처럼 보인다. 

‘조금 더 기다릴까?’

약속시간이 30분이 지났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허허!”

시장은 체념한 듯 허탈하게 웃어본다. 

‘어쩔 수 없나 보구나!’

등산모로 머리를 가리고, 마스크로 안면을 가리니 그가 시장인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의 마음은 차라리 누구라도 알아봐 주면 적어도 오늘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혹시, 모르는 사람이 “시장님 아니십니까?”라고 하면서 사진을 요청하면 흔쾌히 포즈를 취하고, 그러다가 서로 흥에 겨워 막걸리까지 한잔 걸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코로나시대에 마스크 쓴 사람을 알아본다는 건 정말 친한 지인 아니면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시장이 몸에 두른 옷은 영락없는 등산객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늘은 장맛 빗물을 가득 머금은 구름이 곧 후하고 빗물을 뿜어낼 듯이 입을 부풀리는 중이었다.

“시장이 책임을 지셔야 할 거 같아요. 벌써 저 아랫동네에서 같은 사고가 터진 걸 시장도 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책임을 집니까? 방법이라도 알려 주세요.”
“사퇴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죠?”
“너무 일이 커졌어요. 다들 왜들 그렇게 모자라게들 .......”

시장도 굽신거릴 만큼의 인물이 더하려던 말을 거두고 입을 굳게 다문다.

“알겠습니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좀 섭섭합니다.”
“그 마음이야 이해가 되오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아요. 차라리 먼저 터졌으면....”

역시 말을 거둔다. 시장은 그대로 일어서서 시청 관사로 향한다. 

‘나 보고 알아서 하라는 건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따로 없구먼.’

과거부터 정치는 버리고 버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권력을 탐하는 자는 수도 없이 많으니 당장 한둘을 잘라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괜히 머뭇거리면, 대마(大馬)가 잡힐 수도 있다.

“시장한테 전화가 왔네. 어떻게 해야 하나?”
“시장을 잘라내셔야 할 듯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겠나?” 
“예.”

그 역시 시장을 그대로 내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거둘 경우 자신의 자리도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정치에는 의리가 없다. 좋을 때는 동료고 평생 벗이지만, 조금만 위태해지면, 벗은 적으로 바뀌고 서로 잡아먹지 못해 다투는 사자와 호랑이처럼 변한다.

자주 올라오는 무명산이 오늘따라 평온하다. 점점 어두워지는 산기슭에 도달한 시장은 자주 찾아와 쉼을 얻었던 자리에 앉는다. 방근 전 누가 앉았다 가기라도 했는지, 평평한 돌바닥에 온기가 남아있다. 

“너는 항상 그 자리에 있구나!”

때마침 부는 바람에 잎사귀들이 서로 비벼대면서 ‘스삭스삭’ 소리를 내면서 시장의 말에 대답한다. 10년간 등산 갈 때마다 메고 다녀서 상표도 사라지고 밑부분은 다 헤져서 내용물이 다 쏟아져 나올 거 같은 가방에서 텀블러를 하나 꺼낸다. 텀블러에는 색은 바랬지만, “시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처음 시장이 됐을 때 지지자들이 기념으로 제작해 준 것이다. 텀블러를 살펴보던 시장의 얼굴에 그늘진 미소가 안개처럼 깔린다. 땅거미 진 산속의 어둠이 따뜻한 이불인냥 시장을 덮어씌운다.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보기 힘들고 산 짐승조차도 후각으로 찾으면 모를까? 눈으로는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터였다.

뚜껑을 돌리니 커피 향이 틈새로 새어 나온다. 시장의 머릿속에 소설 <향수>가 떠오른다. 모자란 인간이라 여겼지만, 신적인 후각으로 오히려 세상을 농락한 주인공. 그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조차도 세상을 희롱한 기획이었다.

‘나 역시 참 모자란 사람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이 시장을 여러 번 했으니, 참 성공했지.’

소신을 지키고 좋은 정책도 꽤 많이 펼쳤다. 그래도 미담도 많고, 추종자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을 상쇄할 수 없었다. 이미지가 좋았던 만큼 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미투’는 견고한 돌 석상을 파고 갉아서 결구에는 무너뜨리는 작은 생쥐였다.

덮개에 커피를 따른다. 마지막 커피라고 생각해서인지, 그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어둠이 온통 커피 향으로 덮여서 그 향만으로도 자신의 위치가 노출될 것처럼 느껴졌다. 곧 “시장님!”이라는 외침이 자신의 결정을 만류할 것 같았다. 

“흡~~ 좋다!”

카페인이 들어가니 한없이 추락하는 마음에 조금 활기가 생긴다. 아무 것도 없이, 산속에 버려지듯이 소멸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몇 자 남기고 싶다. 

‘그래, 몇 마디 쓰자.’

항상 지니고 다녔던 펜과 메모지를 꺼내 한자, 한자 꾹꾹 눌러 빈 종이를 채운다. 크지 않은 종이에 어느덧 글씨로 가득 찼다.

“이제 됐다!”

시장은 첫 잔에 부어 놓은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시고, 다시 가방 깊숙이 손을 넣어 작은 통을 꺼낸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어 창백하리만큼 하얗고 작은 알약을 꺼낸다. 

‘몇 알이면 될까?’

약으로 가득 찬 통에서 열 개 정도를 손바닥에 꺼내 놓는다. 약들은 손바닥 중앙에 자기들의 자리를 잡고 가만히 눕는다. 곧 약들은 커피와 함께 입에 차례대로 들어간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고, 이리저리 돌면서 한 알씩 때로는 두 알씩 목으로 넘어간다. 시장은 넘어가는 약들을 센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세고, 남은 한 모금의 커피를 입에 털어 넣는다. 넘어간 약들의 흔적 식도에 남아 쓴맛을 느끼며, 주름을 구긴다.

‘얼마나 남았을까?’

잠시 후 시장의 눈이 감긴다. 보이는 게 없는 어두운 산 아래 정신을 잃은 육체가 두꺼운 절망 속으로 떨어진다. 갑자기 덮친 시장의 몸에 소스라치게 놀란 땅이 얼떨결에 받쳐준다.

‘그래, 참 좋은 세상이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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