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개항로는 1883년부터 개항이 시작됐던 도시입니다. 이름이 ‘개항로’가 된 이유이죠. 신문물이 들어오는 입구였기에 무엇이든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연장인 애관극장, 인천 최초의 백화점인 향도백화점, 명동성당보다 오래된 답동성당,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 내리교회 등이 있습니다. 또 금융 1번지로 불리는 거리였기에 이 곳에 입점한 은행들은 ‘인천지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고 하죠. 바로 인천에서 처음 생긴 지점이라는 뜻입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힙’한 것들은 다 볼 수 있었던 번화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하면서 잊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개항로의 매력을 잊지않고 <개항로 프로젝트>를 통해 거리를 살려낸 이창길 대장을 만나고 왔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연결하고 어떤 자원들을 재해석 했는지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이창길 대장은 약 4년간의 구상 후 2018년 카페 <브라운핸즈>를 시작으로 인천 중구 개항로에서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넣는 <개항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개항로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린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개항로 프로젝트>는 인천 중구의 개항로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나 역할이 끝난 건물의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해서 디자인하고 시공하고 운영한다.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요즘 말로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개항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 건물들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살려가면서 새롭게 바꿨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회사나 단체를 만들어서 진행한 게 아니고 나와 뜻이 맞고 마음이 맞는 디자이너, 사업가, 요식업자, 기획자 등 20여명 정도가 모여서 함께 하는 작업이다.
▶어떻게 오래된 거리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계기가 궁금하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원래 하던 일의 연장선인 것 같다. 인천에 오기 전에 하던 일들이 비슷했다. <토리코티지>라는 브랜드로 일을 할 때였는데, 제주도에 7대가 살아왔던 100년이 넘은 집이 있었다. 마지막 세대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몇 십 년 간 비워져 있던 건물이었는데, 이 곳을 리모델링해서 독채 펜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제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많아져서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숙박업소로 쓰는 사례가 많지만 당시에는 제주도에서 이런 작업이 처음 이뤄진 것이었다.
이창길 대장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또 한 번은 제주도에 사시는 아버지가 집이 습하고 안 좋다며 부수고 다시 짓겠다고 하셨다. 당시 영국 유학을 하던 중이라 기다려보시라고 하고는 나중에 돌아와서 내가 설계를 했다. 귤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지금까지도 살고 계신다.
그리고는 집 주변을 보았더니 퐁난이라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주변에 의자를 가져다두고 옹기종이 앉아계시곤 했는데 솜이 들어간 재질이어서 비가 오면 다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카레클린트>라는 가구를 만드는 친구들하고 콜라보해서 어르신들 편하게 앉아있을 의자를 만들어 드렸다.
처음에는 그 친구들이 아주 세련된 의자를 만들어 왔는데 내가 반대했다. 그렇게 해서 유명해지면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정작 주민들은 사용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놨던 의자와 최대한 똑같이 베이직하게 만들어서 기존에 쓰던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개항로 프로젝트>에서 했던 작업들은 이런 식으로 내가 기존에 해오던 작업들과 흐름을 같이 한다.
다만 <개항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시작할 때 이런 바람은 있었다. 영국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이 세대에 관계없이 20대부터 80대까지 어울리는 공간이 많다는 점이었다. 또 외국을 보면 400년 된 건물도 많지 않나.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된 공간에서 전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것 말이다.
개항로에 오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마틸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인천, 그 중에서도 개항로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고향이 인천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곳에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인천은 뉴욕, 런던, 리버풀, 요코하마 같은 도시들과 같은 기능을 한다. 이 도시들의 특징은 과거 그 지역에 국가시설, 산업시설이 있어서 시민들이 물가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그 도시들의 공간은 갤러리, 카페, 숙박업소 등 다른 차원의 것들로 변신해 있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만든 <테이트모던>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천만의 특징도 있다. 인천은 사방이 바다인데도 방문했을 때 바다가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 그 이유가 바다 근접 지역이 다 산업시설이어서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설정 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이런 산업 구역이 다 해체되고 나면, 인천의 미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 유행했던 인더스트리얼풍 카페들은 장치물 이런 것들이 미국이나 독일에서 산업시대에 쓰던 것들이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지금 인더스트리가 다 가동중이기 때문이다. 조선업처럼 시간이 많이 지나서 가동이 멈추고 나면 이런 것들이 다 자원이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 인더스트리얼’을 가질 수 있는 자원이 가장 많은 곳은 인천이 아닐까 한다.
<개항로 프로젝트>로 만든 선술집 <이슬옥> 건물은 건축준공년도가 1910년으로 110년 된 건물이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게다가 인천은 개항도시다. 서울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인천이라는 도시를 위한 발전이 아니라 서울로 향하기 위한 발전이 이뤄진 곳이다. 개항기 정복자들이 머물러야만 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 동네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무대가 바로 이 곳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개항기 구도심이 그대로 남아있다. 개항을 시작한 1883년부터 지금까지 지어진 모든 건물들이 공존하고 있어서 시대별 양식들을 다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극장인 애관극장에서 700~800미터정도 되는 이 거리를 보면 골목이 엄청나게 많아서 그 골목골목에 숨겨진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데 인천은 ‘관광’을 하러 가는 도시는 아니다. 이렇게 역사가 있고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정말 많은데 그런 자원을 하나도 이용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무언가를 한다면 그게 뭐든 플러스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인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앞서 언급한 그런 공간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관광객 입장에서도 나중에 부두가 다 오픈돼서 인천 바닷길이 열린다면 재미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또 인천 인구가 295만 명 정도 되는데 부산하고 비슷하다. 인천 인구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규모의 도시다. 즉, 나에게 인천은 유럽처럼 400년이 넘는 건물이 공존하면서도 모든 세대의 문화가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적합한 도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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