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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을가다] 골목시장의 재발견, “영화타운”-<지방> 조권능 대표

이연지 기자 승인 2020.12.04 14:10 의견 0
군산 영화동의 오래된 골목을 <영화타운>으로 재탄생 시킨 '영화시장 프로젝트' (사진=비로컬 제공)

▶도시재생에 관련된 일을 했다고 들었다. 그 계기가 궁금하다.

☞지방 조권능 대표: 도시에 관심을 가진 건 학창시절부터다. 예전에는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미술계에서는 일찍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에서 문화 활동 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바꾸는 영국의 <테이트모던> 같은 사례가 2000년대 초반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서 관심 있게 봤던 건 ‘스쾃 운동’이다. 예술가 몇 명이 어떤 공간을 점거해서 전시를 하거나 작업실로 사용하는 운동이었는데, 이게 불법이어서 결국에는 공간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런데 시민들이 쫓겨나는 것을 막아주면서 오히려 프랑스 파리시가 그들에게 그 공간을 사주게 됐고 그 공간은 지역 명소가 된다. 미대를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됐는데 가슴이 많이 뛰었다.

2004년도쯤부터 한국도 홍대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악 하고 미술 하는 사람들의 서브컬쳐가 메인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홍대가 아이콘이 됐다. 그걸 지켜보면서 대학을 졸업하면 군산에서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문화 활동이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조권능 대표는 에어리어매니지먼트를 하는 주식회사 <지방>을 세우고 군산의 오래된 지역 곳곳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조권능 대표 페이스북)

▶도시재생에 관련된 일은 군산에서 처음 시작했나?

☞지방 조권능 대표: 200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군산 개복동이라는 동네에 작업실을 구했다. 사실 군산에서도 재생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뿐이지 공간이나 도시 재생에 대한 움직임은 계속 있었다. 다만 문화예술인들이 주체가 되었다 보니 정책보다는 담론을 만드는 데 더 집중돼 있었다.

나는 활동가의 영역을 꿈꾸었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을 모아서 실질적으로 동네를 바꾸는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섬>이라는 카페를 오픈하고 모든 공간을 직접 꾸몄다. “나는 섬이다”라는 외로운 감정과 “날고 싶은 섬”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독특한 공간을 만드니 미대생들도 놀러 오고 그랬는데,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20~30명 남짓한 이들이 모였고 ‘개복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도시 재생이나 청년 지원사업이 이슈가 아니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하려면 스스로 하나부터 열까지 해야 했다. 나도 미술 하던 사람이라 장사를 잘 몰랐기 때문에 좌충우돌 하면서 카페서 번 돈으로 친구들을 모으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5년간 정말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게 군산에서 나름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관심은 금방 사라졌고, 자생적으로 하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아 결국에는 지치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함께 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자기 일을 찾아 떠나게 됐을 때 비즈니스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다. 남은 친구들과 생계도 해결하면서 프로젝트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앙팡테리블>이라는 바를 하나 더 오픈했다. 그렇게 10년차쯤 됐을 때 나도 지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로컬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컬의 움직임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도태되지 말고 새롭게 해보자는 다짐을 하고, 2017년 과감하게 개복동을 떠났다.

그래도 개복동에서의 10년은 의미있었다. 일단 지역민들에게 “저 친구는 꾸준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서 뭔가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오해는 받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당시에 군산시에서도 나름대로 우리를 도와주려고 해서 ‘예술촌’이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예술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주었고, 내가 오랫동안 계획했던 공간을 매입해서 스케치된 모습대로 정원을 재현해줬다. 예술촌 촌장님은 아직도 가끔씩 나를 불러 자문을 구하시기도 한다.

어두운 골목을 어떻게 정리해야 활기를 띠게 될지, 골목의 톤부터 인테리어 소재까지 수많은 스케치를 그리고 수많은 주민들과의 회의를 통해 지금의 <영화타운>을 만들었다. 조권능 대표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스케치.(사진=조권능 대표 페이스북)

▶대표님이 하신 활동 중에서는 <영화시장 프로젝트>가 가장 유명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지방 조권능 대표: 2017년에 <액티브로컬캠프>라는 프로젝트를 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주관을 했고 <로컬스케치>, <어반하이브리드>, <블랭크> 팀이 마스터플랜을 맡았다. 이 때 지역마스터로 참여를 한 게 <영화시장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이 캠프의 목적은 지역에서 지역민이 운영하는 지역관리회사를 세우자는 개념이었다. 기존 공공기관 프로젝트들은 구성을 다 해놓고 민간 운영자를 모집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민간과 행정이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들어줬다는 점이 다르다.

<액티브로컬캠프>는 2016년에 운영팀이 군산을 왔다갔다 하면서 준비를 시작했는데, 외부 인력들이다 보니 군산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고, 우연히 <블랭크>와 내가 연결이 돼서 군산에 대한 정보를 주게 됐다. 2017년쯤에는 결혼도 하고 이 일을 한지 10년이 된 시점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캠프팀에서 나를 불러서 <액티브로컬캠프>를 진행할건데 지역관리회사 개념으로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개복동에서 했던 일들이 결국 지역관리회사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작업을 수락했다.

마을호텔의 프론트 데스크 역할을 하고 있는 <럭키마케트> (사진=비로컬 제공)

▶<영화시장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방 조권능 대표: <영화타운>은 원래 골목시장이다. 완전 재래시장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공간 조성이 된 시장인데 70%가 공실이었다. <영화시장 프로젝트는> 빈 점포들을 창업자와 매칭해서 거리를 조성하는 프로젝트인데, 관리 주체가 사업단이 아니라 민간이었다. 보통 사업단을 만들고 거기에 대한 예산이 책정되는데 도시재생을 하면서 지자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운영이다. 운영자를 위탁하게 되면 인건비와 같은 운영비가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지자체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을 민간이 책임을 가지고 진행하면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공동체 모델을 만들었다. 공간을 조성하는데 시가 투자를 하면 나머지 운영은 예산을 받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해 나가는 모델을 나름대로 설계했다.

사실 군산은 도시재생을 한 지 좀 됐는데, 근대문화에 초점을 맞춰서 <히로쓰가옥>, <8월의크리스마스> 이런 유명 스팟이 소변로와 월명동에 집중 돼 있다. 영화동은 콘텐츠가 없어서 도시재생 계획은 있었지만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가 <영화시장>을 시작으로 도시재생을 시작했다. 시장을 조성하기 전에 때마침 <언더독스>가 나를 찾아왔다. 군산에서 로컬라이징 프로그램을 하려는데 군산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타운 조성을 하려고 하는데 이 주변에서 함께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런 식으로 영화타운의 공간들은 마스터리스를 해서 나오는 수익을 다시 공간에 재투자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고, <언더독스>처럼 영화타운 주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모으고 있다. 투자유치도 노력하고 있고 공공기관과의 협력도 중간에서 맡고 있다. 뭔가 이 동네에 일이 생기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지금의 영화타운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화타운>이라는 마을의 촌장 업무를 하는 셈이다. 주변에 공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기회일지 위기일지 모르겠다.

☞지방 조권능 대표: 이 동네는 원래 공실이었던 동네다. 도시 재생 계획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지역이지 않나. 이 동네는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없었다. 영화타운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곳이다. 그래서 근처에 우리 관리 영역은 아니지만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 해서 만든 술집이 핫플레이스가 되기도 했다. 영화타운 주변으로 이런 스팟들이 생기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창업을 생각하는 젊은 청년들이 영화동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영화타운이 그런 측면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을 커뮤니티 호텔 1호 <후즈데어> (사진=비로컬 제공)

▶최근에는 마을호텔 사업도 시작하셨다. 마을호텔 사업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방 조권능 대표: 첫 번째 호텔은 <영화장>이라는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을 갤러리와 게스트하우스로 바꾼 <후즈데어(Who's there)>다.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 개념으로는 영화타운에 있는 <럭키마케트>가 담당한다. 원래는 <럭키마케트> 2,3층에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했는데 공사 문제로 잠시 멈췄다가, 지금 후즈데어 자리를 1호점으로 시작하게 됐다. 마을호텔을 준비하면서 동네에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위탁 운영을 바라는 분들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을 호텔이라고 하면 결국 숙박인데, 1차적으로는 영화타운과 어떻게 연결 할까 고민하고 있다. 마을호텔이 관광 차원에서 동네를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 플레이어들과 연결돼서 깊게 교류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차적으로는 타운 주변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운영하는 로컬라이즈들과 연결하는 게 목표다. 동네를 전부 다 연결할거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마을호텔은 결국 호스트의 취향과 이어지는 것 같다. 군산 토박이로 살면서 알게 된 숨어있는 보물 같은 공간들을 아주 주관적으로 여행객에게 소개하고, 여행객이 그 공간을 투어하고 경험하면서 같은 취향을 공유할 때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는 게 커뮤니티 호텔이라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여행객이 공유하고 소상공인의 매력도 알아가는 경험이 중요하다.

<영화타운>에는 미국음식점 <럭키마켓>,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공방 <꽃신도깨비>, 사케바 <수복>, 디저트카페 <달콤한 설렘> 등이 주축이 되어 골목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조권능 대표 페이스북)

▶숙박이나 관광에 포커스를 둔 게 아니라 마을 소상공인 비즈니스와 네트워킹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마을호텔을 생각하시는 것 같다. 군산 하면 ‘근대 문화’를 아무래도 많이 떠올리는데 <영화타운>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줄 것 같다.

☞지방 조권능 대표: ‘군산’ 하면 대부분 근대문화를 떠올리지만 사실 군산의 정체성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군산의 정체성은 ‘문화적 개방성’이다. 군산은 근대와 근대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콜라주 되면서 만들어진 도시다. 예를 들어 <럭키마케트>는 미군을 상대로 물건을 팔던 상점이다. 할머니들이 미국사람 보면 “어, 헬로보이 왔네.” 하면서 인사한다.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부분이 있는 거다.

또 군산이 딱 100년 살았는데, 일본인들이 철저하게 계획해서 만든 도시이기 때문에 토박이가 없다. 타지에서 모였기 때문에 문화적 개방성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것들이 와도 거리낌이 없다. 안동처럼 전통 사회가 강한 도시에 외지인들이 들어와 로컬라이즈를 한다고 하면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개방성이 군산의 매력이자 자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냥 근대 문화 많은 도시가 아니라 이런 재미있는 정체성도 있다는 걸 알면 사람들도 군산에 또 오고 싶고 그렇지 않을까? <영화타운>이랑 <언더독스> 로컬라이즈 프로그램도 군산 사람 반 타지 사람 반 섞여서 운영하는데 서로 융화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비플러스를 통해 <영화타운>에 들어올 점포 입점 비용을 펀딩하는데 성공했다. <영화타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사진=비플러스 캡처)

개복동에서 시작됐던 조권능 대표의 '군산 재해석하기'는 '영화시장 프로젝트'를 거쳐 지역을 관리하는 에어리어매니지먼트 회사 <지방>으로 거듭났습니다. <영화타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데요. 지난 5월에는 <비플러스>에서 <영화타운> 신규점포 입점 비용 펀딩을 진행해 목표 금액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골목을 살리는 것으로 에어리어매니지먼트의 길에 들어섰다면, 이제는 마을 커뮤니티 호텔을 기반으로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입니다. 마을호텔 1호점이 된 <후즈데어>는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었고요. 마을호텔의 프론트 데스크 역할을 하는 <럭키마케트>는 과거 군산의 영화동에 미군이 드나들면서 아메리칸타운을 형성했을 때 있었던 수입상회 <럭키마케트>를 재현한 공간이라고 하는데요. 이 곳에서는 호텔 예약관리와 여행자 프로그램 운영 등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입구에는 업사이클 카메라 자판기 필름로그가 있어서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맡기면 사진을 스캔해서 집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한다고 하는데요. 마을의 커뮤니티 라운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조권능 대표는 로컬라이즈 팀들과 LMO(Local Management Organization)라는 마을 만들기 거버넌스도 만들었습니다. 메이커(MAKER)를 중심으로 지역 기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LMO에서는 <common city, 군산>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 만들기’를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로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DIT(Do It Together)입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공간을 만들거나, 정원을 만들거나, 오래된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일들을 하는데요. 조권능 대표는 “메이커들이 많아지면 창의적인 도시가 되고 단단한 일상이 쌓이면 혁신이 된다.”라고 말합니다.

에어리어매니지먼트 <지방>을 중심으로 <영화타운>과 <로컬라이즈>와 <마을호텔>이 어우러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오래된 군산의 곳곳을 새로운 콘텐츠로 채워가고 있는데요. 앞으로 <지방>이 재해석해서 만들어갈 군산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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