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과 부모의 매너리즘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결과만 봐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알아서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게 아닙니다. 분명히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이 부모와 아이의 신뢰 가운데서 이뤄진다면, 괜찮은 적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배신감 혹은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부모라면 들어보거나 읽어 본 ‘마시멜로 실험’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서술하면, 한 방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보이는 곳에 먹음직스러운 마시멜로를 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한테 15분 동안 먹지 않으면, 한 개를 더 줄 거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안에 먹는 아이들한테는 추가로 마시멜로는 주지 않겠다고 말해 줍니다.
15분 후 당연히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도 있고, 먹지 않고 참아서 보상으로 마시멜로 한 개를 더 받은 아이도 있습니다.
실험 이후 아이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을 찾았습니다. 이때, 잘 참고 보상을 받았던 아이들이 훨씬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실험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성공을 위해서는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마시멜로 실험에 대한 비판은 많으며, 여전히 찬반 토론 중입니다. 그리고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의 행동은 타고난 게 아니었습니다. 참고 견딜 수 있었던 아이들은 부모와 신뢰가 두터웠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즉, 아이들과 약속하면 부모들이 잘 지켰던 것이죠. 반면, 부모와 신뢰 관계가 좋지 않았던 아이들은 15분 후의 약속을 믿기 힘들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장 주어진 먹거리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이집 적응은 부모와 아이의 신뢰 정도가 중요합니다. “엄마가 데리러 갈게!” 혹은 “아빠가 데리러 갈게!”라고 부모는 아이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약속을 믿습니다. 대부분 부모는 데리러 간다는 약속을 지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간혹 그런 약속조차 할 수 없는 부모도 있고 약속은 했더라도 잘 지킬 수 없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아이들과 부모의 신뢰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이들과 손가락 걸고 한 모든 약속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키지 못했을 때는 어린 자녀라고 하더라도 정중하게 사과하며 상황을 이해하도록 설명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어른들은 아이들과의 사소한 약속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2주 정도가 지나니, 안아는 울지 않았습니다. 울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알아서 준비하고 나갈 준비까지 했습니다.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짠했습니다.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어린이집에 자연스럽게 갈 정도로 익숙해진 모습을 보면서 칭찬하거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안아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동안 아빠도 대구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초기에는 아침에 눈 뜨면 보이는 아내와 안아가 정말 반가웠는데, 어느덧 특별한 감정이 평소로 돌아갔습니다.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편안’이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일과도 규칙적으로 정돈됐습니다.
일어나서 아침 9시까지 안아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면, 오후 한 시까지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3~4시간 정도 됐는데, 주로 책을 읽었습니다. 아르바이트와 대학원 등으로 읽을 수 없었던 책을 오랜만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대회를 준비하는 보디빌더가 대회를 마치고 찾아가는 뷔페에서 느낄 수 있는 심정을 책을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다 보니, 한 달에 20권 이상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안아를 데리러 갑니다. 대구의 겨울은 춥지 않아서 산책하기도 좋고, 야외 활동하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네 살 안아한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시간을 ‘집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아한테 책도 읽어주고, 영상도 보여줬습니다. 절대 보여주면 안 될 거 같은 뽀로로도 이 시기에 보여줬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지만, 잠들기까지의 시간은 길고도 길었습니다. 그나마 저녁 6시 이후에는 안아의 외할머니께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육아의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요즘같은 '코로나 19'시대였다면, 정말 답답했을 겁니다.
날짜는 달랐지만, 일상은 거의 똑같게 반복됐습니다. 크게 달라질 게 없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도시에 홀로 카페에 앉아 책을 벗 삼아 한 달을 더 보냈습니다. 적응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진 기간이었습니다. 시민 활동도 하고 대학원도 다니던 저에게 안아를 돌보는 두 달은 ‘내가 도대체 뭐 하는 거지?’라는 회의감을 품게 했습니다.
◇ 부분 육아 아빠
주부라고 하더라도 혼자만 하는 ‘독박육아’는 힘듭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반드시 도와줘야 원활한 육아가 가능합니다. 아니면, 아이 조부모님의 도움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엄마’, ‘아빠’이기 전에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권리가 있는 인간입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기가 방긋 웃어줘도 매일, 매시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육아를 부모가 전담하는 게 맞다고 하더라도 종종 육아에서 벗어나 충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첫째를 돌 볼 때 온종일 육아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 서너 시간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오후에도 저녁 여섯 시 이후에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베이비시터가 복귀하면서부터는 오후 시간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죠.
이렇게 말하면, “뭐 별로 한 게 없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아오는 동안 육아 경험이 없는 사람한테는 어린 자녀 몇 시간 돌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 둘이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육아에만 쉽게 집중할 수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를 방치하기 일쑤였죠. 이런 아빠한테 종일 육아를 맡긴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초보 아빠한테는 ‘부분 육아’가 적절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조금씩 아이를 돌보면서 관련한 책도 읽게 됐고, 이런 경험들이 둘째를 돌보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만약, 혼자서 안아를 돌 봐야 했다면, 저는 또 한 번의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을지 모릅니다.
흔히들 “아이의 체력은 프로레슬링 선수 수준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어른의 체력이 훨씬 좋습니다. 다만, 아이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활동하는 데 비해,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자는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더 있기 때문이죠.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현명합니다. 물론, 다들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장기간 집을 비울 때는 어머니를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 정도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 때는 장모님께 부탁드렸습니다. 매일 아니고 가끔 있는 일이어서 흔쾌히 도와주셨습니다.
한 아이 육아는 부모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핵분열 가족 시대에 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부모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비교할 때 아이들의 예절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삼대가 모여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활동을 하는 부모 세대가 집에 없더라도 조부모님이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돌봤습니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체득하고 한평생 살아 온 조부모님 세대는 손주들에게 인사법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예절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서로 멀리하는 추세입니다. 어쩌다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주는 좋지만 매일 마주쳐야 하는 각기 다른 세대는 원치 않습니다. 연로한 부모를 모시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 먼 과거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게 모시고 사는 가족도 있으며,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면 타인의 좋지 않은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던 시절이 얼마 전 일입니다.
자녀 세대는 노인이 된 부모를 모시기 싫어하고, 그러다 보니 부모도 손주들 돌보는 게 썩 달갑지 않게 됐습니다. “가끔은 모르지만, 매일 보면 힘들어. 서로 다르니 자주 갈등도 생기고.” 틀린 말이 아닙니다. 부부도 싸웁니다. 그래서 주말 부부를 하면 “전생에 덕을 쌓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가족은 함께 모여 살아야 ‘정’을 쌓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세대가 모여 살면, 당연히 갈등도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갈등을 극복하고 살아갈 때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부분 육아 아빠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아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주변에 있는 가족들이 모두 불안해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가장 믿을 수 있는 양육자가 돼 있었습니다. 하루 내내 안아와 함께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둘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육아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했고, 다른 보호자들이 볼 때 청출어람(靑出於藍)한 육아 아빠가 되고 있었습니다.
◇ 좋은 아빠 TIP
1. 육아는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2. 육아 매너리즘에 누구나 빠질 수 있습니다. 이때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빠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3. 조부모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장기간은 어렵지만, 일정 기간은 충분히 아이들을 잘 돌봐주십니다. 이때, 부모는 리프레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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