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 육아’
‘공동 육아’의 반대말은 ‘독박 육아’입니다. 말 그대로 혼자서 육아한다는 의미입니다. 2년 전쯤에 서울에서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서로 성격도 잘 알고, 어떻게 결혼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녀가 있는 동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체로 육아는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나는 밖에서 일하다가 일찍 들어 가봐야 10시야! 그러니, 아이를 돌보기 쉽지 않지. 주말에는 당연히 좀 쉬어야 하고. 대신 아내는 전 업주 부니까.”
친구의 말은 자신은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벌어오고, 그 돈으로 생활을 하니까 육아는 아내의 몫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도 반납한 채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굉장히 힘들 것입니다. 사실, 이 친구는 육아 초기에 아내를 돕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 전력도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조금 세밀하게 따져보면, 친구의 말은 틀렸습니다. 밖에서 실행하는 경제활동은 근로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사 노동’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 육아는 ‘가사에 포함된 거’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육아는 부부 둘 중 하나의 몫이 아닙니다. 이 말에는 많은 부부가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옛날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교육과 훈육 관련한 부분은 남성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관행은 동서양이 비슷합니다. 성경에서도 아이들의 주된 양육자는 남성이었습니다. 물론, 남존여비(男尊女卑) 같은 사상이 보편화된 것도 영향을 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가정에서 자녀를 다른 방식 – 의식주를 잘 챙겨주는 것 등 –으로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성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재 교육으로도 유명한 칼 비테(Karl Witte)의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도 아버지입니다. 역사상 가장 천재라고 인정받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도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이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역할이 나눠지기도 했지만, 정해진 부분은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 이 말을 잘 생각해보면, 상황에 따라 부모가 적절히 분배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즉, 양육은 부부의 공동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역할 상 ‘주’와 ‘보조’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이 완전히 빠져서는 안 됩니다. 종종 주말에 놀아주는 아빠들은 ‘그래도 난 아이들과 잘 놀아줬어. 내 역할 잘했어!’라고 하면서 스스로 만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정말 제대로 아빠 역할을 다 한 걸까요?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대체로 양육을 담당한 부모는 무서워하고, 그렇지 않은 부모는 친구처럼 여깁니다. 혹은 사이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대체로 엄마가 주 양육자면, 엄마를 무서워하고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빠한테는 친구처럼 대하거나 심할 때는 하대하기도 합니다. 종종 우스개로 아빠들이 가족 내 서열을 말하면서 “난 우리 집 3등이야. 아내가 1등 아이가 2등 그리고 나.”라고 합니다.
현재 50대 이상의 세대에서는 100일 이전의 자녀가 있을 때 엄마와 아이와 따로 잠자리를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날 출근을 위해서 잠을 자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넘어오면, 가사 분담도 하고 아이도 열심히 돌보려고 합니다. 단, 보조 역할에서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조금 더 나이가 어린 부부들은 더 나아진 모습 이리라 생각하지만, 아내를 보조하는 역할 이상을 감히 나서려는 남편은 별로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단, 관행입니다. “집안일은 여성이 해야 한다.” 그러니까 육아도 아내가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다음은 여성보다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저도 아내가 육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나서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소중한 딸한테 잘못하면 안 되니까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능숙한 사람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둘째가 태어나고 바뀌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심히 육아에 신경 쓰고 실천하다 보면, 꽤 괜찮아집니다. 오히려 둘째는 엄마보다 아빠한테 더 의존합니다. 어느 날 밤 침대에서 떨어지면서도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아빠!”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지만, 다시 누우면서 의문의 1승을 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모성애도 있고, 부성애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모성애의 힘이 부성애보다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애착이 부부가 똑같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었던 엄마의 사랑이 더 큽니다. 이런 불리한 조건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아빠가 더 열심히 육아하고 스킨십을 더 자주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운 싸움을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도권을 아내한테 주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러면 시키는 일 외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빠와 친한 아이는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말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면, 그만큼 아빠와 아이가 가깝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더 아이들과 놀아주고 관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듣는 아빠 입장에서 기분 좋은 말이 절대 아니죠. 이미 엄마와의 관계는 좋다는 게 전제로 깔린 연구 결과입니다. 그만큼 자녀를 양육하는 데 아빠 역할이 중요함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공동 육아’는 아이를 양육하는 데 부부가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자녀와 관련된 문제는 부부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으로 한 10년 전쯤에 유행했던 말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경제력, 할머니의 운전능력”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참 비극적인 말입니다. 아빠는 "관심 좀 꺼 달라"라는 말이니까요. 물론, 최근에는 달라졌다고 합니다. 아빠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아빠보다는 엄마의 영향력이 더 큽니다.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카페에 가보면 삼삼오오 앉은 엄마들이 보입니다. 대체로 자녀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학원이 좋은지, 어떤 학교가 좋은지 등. 그리고 그 정보대로 아이들을 돌립니다. 아빠는 학원비를 열심히 벌어다 줄 뿐입니다. 엄마가 잘 알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사실, 대부분 정보는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입니다. 역시 아빠는 아내가 잘하겠거니 하면서 방관합니다. 제대로 된 좋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면 됩니다. 물론, 부부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 납득할 수준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합니다.
◇ 잔소리 많은 아빠
서두에서 사춘기 자녀들이 상담자로 찾는 사람 중 1등이 ‘친구’고 아빠를 찾는 자녀는 1,000명 중 2명 정도라고 했습니다. 주로 엄마가 자녀를 양육하면, 잔소리는 엄마가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를 무서워하죠. 하지만, 아빠가 주 양육자가 되면 잔소리는 아빠의 몫입니다. 당연히 아빠를 무서워합니다. 항상 무서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서울 때가 있다는 것이죠.
잔소리 많은 아빠는 아이한테 별로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간섭’, ‘통제’, ‘꾸중’등을 포함합니다. 좋은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잔소리를 해도 아내가 크게 말리지 않는다면? 부부의 합의가 이뤄진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부부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평생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자녀를 양육하는 데도 생각이 다르고 방법도 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깁니다. 첫째를 양육하는 동안 갈등은 계속됐습니다. 하나를 넘어서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납니다. 가끔은 심각하게 다툴 때도 있습니다. 둘이 사랑해서 결실로 나온 자녀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죠. 몇 년 전에 아내가 출장 중 친구 집에서 머문 후, 돌아와서 저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00집에 갔더니, 둘 다 아이들한테 언성을 높이지 않고 정말 자상하게 말하더라고. 우리도 그런 모습은 본받아야 할 거 같아.”
“응. 좋은 모습이네.”
부모가 자녀한테 자상하게 설명하고, 대화한다는 것,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별로 없습니다. 혹, 있다면 부모가 자녀들과 만나는 시간이 적은 가정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내가 예로 든 가정도 부모가 정신없이 바쁜 가정이어서 자녀 양육은 할머니께서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언성을 높이고 폭언하는 걸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결혼도 그랬듯이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만 주고 싶은 자녀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자녀들이 부모한테 제일 먼저 달려갈 거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 때문에 고민이 생기는 자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잔소리 많은 아빠’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방법은 ‘공동 양육’뿐입니다. 한 사람이 자녀의 대부분을 담당하면, 잔소리는 어쩔 수 없습니다. 자녀는 부부 공동의 작품이자, 공동 선물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부의 모습이 공존합니다. 가끔 딸들을 보면서 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내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좋은 모습만 본다면, 문제없겠지만 그럴 수 있을까요?
내 모습 중 싫은 모습이 자녀한테 나타나고, 배우자의 꼴도 보기 싫은 모습도 느닷없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씩 자의식이 생기고 발달하기 시작하면, 의견을 말합니다. 말도 안 되게 어린 자녀가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한편으로는 대견하지만, 때로는 굉장히 기분 나쁠 때도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주 양육자 혼자 겪어야 한다면? 당연히 ‘잔소리’를 기관총처럼 쏘아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둘이 나눈다면? 잔소리가 줄어들겠죠. 부부는 둘이지만, 하나입니다. 하나이면서 둘입니다. 경험치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의미죠.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은 혼자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 양육자가 됐다고 하더라도 자녀 양육은 둘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자녀에 대한 정보를 배우자와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아이들과 관련한 내용을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일상을 그대로 정리한 일기 형식은 아닙니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중에 제가 보고 느낀 점을 옮겼습니다. 블로그에 넘치는 육아 일기가 아니라, ‘육아(양육) 느낌’입니다. 아내는 이런 제 느낌을 읽고,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공동’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엄마의 역할을 찾아서 실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음으로 항상 강조하는 ‘학습’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과 느낌으로 양육하면, 엄청난 실수가 있고, 그 실수를 인지하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양육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부모님의 연륜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학 지식이라든지 학습과 관련한 부분, 체벌과 관련해서는 새롭게 공부할 분야가 참 많습니다.
◇ 좋은 아빠 TIP
1. 혼자서 육아를 담당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배우자와 상의하고 ‘공동 육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안과 밖을 구분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절대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2. 모르면 배우면 됩니다. 지난 경험과 누군가의 이야기, 느낌에 의존하지 말고 모르면 찾아보고 학습해야 합니다.
3. 현실과 이상은 다릅니다. 그리고 다른 가정과 우리 가정이 다릅니다. 좋은 점은 참고해서 가정의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합니다. 절대 우리 가정과 다른 가정을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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