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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일기(03)] 3월 6일(일) 달콤한 기억이 통증을 이깁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2.04.26 13:09 의견 0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시간을 아끼라는 의미죠. 하지만, 이번에 느껴지는 시간은 빨리 오는 게 더 좋았습니다. 빨리 해가 뜨고, 시간이 돼야 병원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2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코로나 기간에 시간이 더 기다려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결국, 시간의 상대성 원리인 셈이죠.

“오전 9시부터 연다고 하니까, 지금 출발할까?”
“그래!! 일찍 가야 대기 시간도 짧을 테고.”

사전에 알아 둔 병원으로 운전해서 도착했지만, 휴일은 신속항원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병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종 포털 사이트에 올라 온 정보를 찰떡같이 믿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질 때가 있는데, 하필이면 오늘이었네요. 투덜투덜댔지만, 어쩔 수 없었죠. 우리나라 N포털의 정보오류는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바로 다른 병원을 검색해서 출발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처음 방문하는 병원이어서 길을 조금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 앞에는 주차하기 힘들 듯해서 병원 옆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갔는데 그곳은 주차장이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큰 길로 다시 나가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나서는 데, 병원 주차장이 보입니다. ‘소가 뒷걸음 질 하다가 쥐를 잡는다’라는 속담이 실현된 날이었습니다. 이제 투덜투덜에서 반짝 미소를 짓 습니다. 참 인간은 단순합니다. 사소한 일에 짜증냈다가 다시 사소한 일에 웃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주차하고 병원에 들어가서 대기표를 뽑으니 앞에 10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환자가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검사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른이 해도 콧속을 아리는 통증은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그러니 여기저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었죠.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주아가

“아빠, 저는 코로나 검사하는 건 아니죠?”라고 묻습니다.

주아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열 감기에 걸려서 검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를 생각하면서 겁이 나서 물었던 것입니다.

“응, 검사 안 할 거야!!”

옆에 있던 아내가 선의의 거짓말을 합니다. 저도 뭐라고 할 수 없어서 그저 웃었습니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나니 주아 이름을 부릅니다. 들어가자마자, 상황판단을 한 주아는 울기 시작합니다. 저는 주아를 꼭 안고 움직이지 못 하게했고, 아내는 주아 얼굴을 잡았습니다.

간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다란 검사 봉을 주아의 콧속에 넣었습니다. 최대한 깊게, 그리면서도 신속하게 끝냈습니다. 정말 신속항원 검사다웠습니다. 당연히 주아는 울었습니다. 아내는 이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사탕을 얼른 주아의 작은 손에 쥐어줬습니다. 그 랬더니,정말 거짓말처럼 눈물을 거두고는

“이 사탕은 언제 먹을 수 있어요?”라고 묻습니다.

분명 아파서 울었을텐 데, 사탕에 대한 달콤한 기억이 눈물나게 아픈 현재 상황을 덮어버렸습니다.

20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 열 감기라고 믿었습니다. 감염될 곳이라고 한다면 어린이집이었는데, 어린이집에는 확진 자가 없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돼 확인을 위해 검사실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조주아, 확인하러 왔습니다.”
“양성이네요!!”
“네? 양성이요?”

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와서 아내에게 양성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신속항원도 100% 정확한 건 아니니까, PCR 검사 하러 가자!”

아내도 제 말에 동의했습니다. 정말 걸릴만한 곳에 간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혹시 몰라서 비대면 진료로 약을 처방받아서 만약을 대비했습니다. 이제 다시 차를 타고 휴일에도 운영하는 임시진료소로 향했습니다. 일요일이었지만, 역시 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한 30분 정도 줄을 서고 난 후에야 주아차례가 됐습니다. 하루에 두 번 콧속을 찔러야 했으니, 5살 아이에게는 참 힘든 하루였을 듯합니다. 역시 제가 주아의 몸을 잡고, 아내가 얼굴을 고정시킨 후에 검사 봉으로 주아의 콧속을 찔렀습니다. 당연히 주아는 울었고,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준비해 온 또 다른 사탕을 줬습니다. 그랬더니 또 울음을 멈췄습니다.

인간은 기억에 지배되는 동물인 듯합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부모 혹은 가족 중 누구라도 사랑으로 보살펴주면, 청소년기에 일탈할 확률이 현격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청소년 문제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사랑해주고 신뢰해주는 사람의 부재가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른도 참기 힘든 아픔을 사탕의 달콤한 기억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다면, 후에 더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적인 우리나라의 현실은 좋은 추억의 부재가 원인이 될 수도 있겠네요. 어린 시절 놀이공원보다 학원을 더 많이 다녔던 결과로 나온, 좋지 않은 수치가 모순은 아닌 듯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더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더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행히 주아는 열이 더 오르지 않았습니다. 어제 밤 만해도 고열이 며칠 지속될 거 같았는데, 해열제로 열을 잡고 나니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니 조금 올랐습니다. 38도 초반 수준이었습니다. 해열제를 먹이는 바로 떨어졌고요. 그날 밤에는 주아와 저만 같이 한 침대에서 잤습니다. 아내가 감염되면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 벌어지니 최대한 격리시켜야 했습니다.

사실, 저도 감염에 대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고 싶을까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근새근 잠든 주아를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차라리 내가 걸리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부모 마음이 그렇겠지만, 아이가 아프면 그보다 심란하고 괴로운 게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주아의 손을 잡아보니, 뜨겁지 않았습니다.

‘그래, 아빠가 걸리는 게 뭐 대수겠니? 네가 안 아픈 게 중요하지.’

열이 나지 않는 것 만해도 정말 다행이었고, 감사했습니다. 코로나에 걸렸을 수도 있다고 하니, 어린 주아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잠을 잤습니다. 물론, 자는 동안 벗겨졌지만, 다시 씌우지 않았습니다. 물끄러미 주아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면서,

‘그래도 주아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주아는 사랑받으면서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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