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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_이야기(02)] 청소년들이 살아가야 할 시대: 표준이 있을까요?

지방분권 이야기를 위한 긴 프롤로그 #02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07.28 09:00 의견 0


1958년은 IT분야의 특출 난 인물들이 태어난 해입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이 태어났으니까요. 전자는 은퇴해서 자선사업에 몰두하고 있고, 후자는 타계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발명품은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윈도우’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기 힘들고, ‘애플’의 신제품에 환호성을 지르며 이른 아침부터 애플샾 앞에서 장사진을 칩니다.

물론, 청소년들이 기성세대가 됐을 때 두 기업의 위상이 지금과 같을까요? 과거 절대 무너지지 않을 듯했던 ‘코카콜라’의 위상도 무너졌고, 아날로그 시대, 필름의 대명사인 ‘후지필름’은 종적을 감췄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아무리 철옹성 같은 기업이라도 언제가 절정에 도달하고 결국 내려 올 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있습니다. 갤러웨이 스콧 교수는 『플랫폼 제국의 미래』와 『거대한 가속』에서 “빅 4(아마존, 애플, 알파벳, 메타)는 업계에서 덩치가 가장 크기 때문에 어떤 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가물었던 하늘에서 다시 비가 내리면 더 번성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슈퍼맨 같은 창립자들이 사라지면, 그 기업들에도 석양의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의 마크 주크버그가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처럼 여겨졌습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언급될 때도 있었죠.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은 ‘페이스북’ 가입을 꺼리고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와 함께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게 ‘별로’라는 게 이유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명을 ‘페이스북’에서 ‘Meta’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메타버스’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요.

다른 예로 ‘테슬라’, ‘기가팩토리’,‘스페이스엑스’를 모두 거느린 일론 머스크도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모델로 삼기에는 ‘아저씨’ 느낌입니다. 그의 기이한 언행 때문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꾸준히 쌓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분명히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크버그, 일론 머스크 등을 이어서 지금 청소년들의 ‘롤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런 ‘롤 모델’이라는 언어자체가 현재 청소년들에게는 고루한 단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선진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주목받는 유명인의 상위권에는 유튜버(Youtuber)들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유명인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위인이었습니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이었죠. 그러다가 2000년을 갓 넘겼을 때쯤에는 초등학생들의 위인은 인기 연예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HOT’, ‘SES’, ‘핑클’ 등이 청소년들의 우상이었죠. 90년대만 하더라도 『WHY』라는 책의 주인공으로 ‘유재석’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요? ‘아이돌’이 더 이상 ‘Idol’이 아닌 시대가 현재입니다.

서서히 표준이 희미해지는 시대임에도 한 세대(세대라는 기간도 줄어들고 있네요)를 선도했던 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시대 흐름을 잘 파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애써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학습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수학과에 들어갔으나,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전공인 철학을 관두고 컴퓨터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도 하버드 심리학과를 중퇴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전공은 경제학인데, 그의 사업 영역은 이공계 영역입니다. 대학 졸업장이 중요했던 시절이었음에도 그들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대학 졸업장을 포기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인물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와 앞으로 다가 올 미래 시대를 잘 이해했고, 부족한 영역에 관심을 두고 빨리 학습했습니다. 그래서 무려 하버드를 포기했고, 철학과 어울리지 않는 컴퓨터를 만들었고,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대신 코딩을 공부한 것이죠.

현재 청소년 세대가 살아갈 시대는 ‘표준’이라는 언어가 어떻게 정의될지 모르겠습니다. 표준이 있다는 것은 그 시대에 어울리는 인재상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표준’을 내걸고 있는 영역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입니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 영어 점수 등, 흔히 말하는 스펙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스펙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채용할 기업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스펙이 좋을수록 취업하기 어렵습니다. 눈높이가 있으니 웬만한 직장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요. 기업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좀 의역하면 정말 큰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할 때, 이 말의 의미가 많이 축소됐습니다. 대기업과 매스 미디어 등이 작은 기업이나 1인 미디어에 밀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공중파 방송국이 처음부터 ‘유튜브’를 인정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지상파, 종편 할 것 없이 유튜브에 여러 개의 채널을 만들고 운영합니다.

여전히 관련종사자–카메라, 편집 등– 중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그런 걸 촬영해요?”라고 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만, 대세는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콘텐츠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채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표준’이 사라질 것 같은 사회, 큰 것이 진리가 아닌 사회, 개인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사회(수익은 별개입니다). 이런 언어들을 종합하면, 확실성이 없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 불확실성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현재 청소년들이 살아야 할 미래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의 정치구조는 당연히 지방분권이고요. 왜냐하면, 중앙정부에서 차원에서 추진하는 보이지 않고 막연한 정책보다는 내가 머물러 있는 곳에서의 정책 등이 상대적으로 더 눈에 잘 보일 테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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