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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 암에 쓰는 CAR T세포, 이 유전자 막으면 강해진다

- T세포의 독성 물질 분비 막는 EBAG9 유전자 제거에 성공
- 암세포 항원 식별하는 '기억 T세포'도 증가
- 독일 막스 델브뤼크 분자 의학 센터, '몰레큘러 테라피'에 논문

시사N라이프 승인 2022.08.02 21:08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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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형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T세포 [미국 국립 알레르기 감염병 연구소(NIAID)]

CAR T세포 치료법(약칭 CART)은 다른 방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 백혈병 환자에게 마지막 치료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서 CAR은 면역 요법에 쓸 목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키메릭 항원 수용체'(chimeric antigen receptor)를 말한다. 그러니까 CAR T세포를 그대로 풀면 'CAR로 무장한 T세포'라는 뜻이다.

CAR T세포 치료법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환자의 몸에서 T세포를 분리해 특정 세포 유형의 표지(marker)를 인식하게 유전자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뒤 배양과 증식을 거쳐 다시 주입해야 한다.

암 환자에게 주입된 CAR T세포는 몸 안을 돌아다니다가 특정한 암 종양 세포와 결합해 파괴한다.

이런 조작 T세포는 CAR의 작용으로 암세포 표면의 특정 구조를 식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론상 CAR T세포는 환자의 몸 안에 항구적으로 남아 증식해야 한다. 암이 재발해도 다시 공격해 파괴한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 치료를 받은 많은 암 환자가 다시 암에 걸린다.

암세포가 EBAG9이라는 단백질 생성량을 늘려 CAR T세포를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암세포는 T세포 스스로 이 단백질을 더 많이 생성하게 하기도 한다.

EBAG9 단백질은 CAR T세포의 세포 독성 효소 분비를 억제한다. CAR T세포가 기대했던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마침내 CAR T세포의 이런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됐다.

EBAG9 단백질의 생성 암호를 가진 같은 이름의 유전자 발현을 차단해 CAR T세포의 공격 능력을 증강하는 것이다.

독일 막스 델브뤼크 분자 의학 센터(MDC)의 아르민 렘 박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셀 프레스(Cell Press)가 발행하는 저널 '몰레큘러 테라피'(Molecular Therapy)에 논문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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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청색)를 둘러싼 킬러 T세포(녹색·적색) [미국 국립보건원(NIH)]

2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CAR T세포 치료가 백혈병 환자에게 처음 적용된 건 2017년이다.

당시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와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연구진이 공동으로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 치료법은 주로 암이 재발했을 때 쓴다. 절차가 복잡한데다 개인 맞춤형 치료여서 비용도 많이 든다.

사실 EBAG9 유전자는 발견되자마자 눈길을 끌었다. 암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할 거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MDC 과학자들은 2009년 이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가 '기억 T세포'를 더 많이 만들고,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에 더 잘 견딘다는 걸 처음 밝혀냈다.

그러다가 2015년이 되어서야 마이크로RNA를 이용해 이 유전자의 발현을 막는 데 성공했다.

EBAG9 유전자를 차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는 데도 오랜 연구가 필요했다.

렘 박사팀은 한 달 전 저널 'JCI 인사이트'(JCI Insight)에 중요한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생쥐의 EBAG9 유전자 발현을 막으면 암에 대한 면역반응이 지속해서 강해진다는 게 요지였다.

이 유전자가 꺼진 생쥐는 '면역 기억'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억 T세포'도 더 많이 생성했다.

이렇게 되면 면역계는 전에 만나본 암세포 항원에 대해 더 강하게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종양 생물학 연구자들이 찾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EBAG9 유전자를 차단하면 인간의 CAR T세포에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걸 확인했다.

EBAG9 유전자가 꺼진 CAR T세포를 배양하는 데는 다시 마이크로RNA가 동원됐다.

이 유전자의 발현을 막는 건 CAR T세포에 걸린 브레이크를 푸는 것과 같았다.

CAR T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데 쓸 세포독성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이 치료법을 쓸 때 흔히 수반되는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은 일으키지 않았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렘 박사는 "EBAG9 유전자를 끄면 종양 세포를 더 조기에 근원적으로 뿌리 뽑을 수 있다"라면서 "성공적인 치료가 연장될 뿐 아니라 진정한 치료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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