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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트렌드] 로컬트렌드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트렌드일까?

윤준식 기자 승인 2023.05.26 00:00 | 최종 수정 2023.05.26 00:36 의견 0


로컬트렌드와 관련한 첫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단어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트렌드’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계신가요? 아주 보편적인 단어가 되어버려 익숙하게 활용되는 단어죠? 특히 비즈니스나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글로벌트렌드, 재테크트렌드처럼 대세나 큰 이슈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패션트렌드, 문화트렌드, 선물트렌드 등의 표현을 보면 유행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트렌드’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건, ‘트렌드’라는 단어의 뜻은 잘 모르면서도, ‘트렌드’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화의 맥락 속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우리의 일상언어가 되어 있다는 거죠. 어쩌면 “트렌드를 트렌드라 하는 건데, 트렌드가 무슨 말이냐고 하시면... ㅠㅠ”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갑자기 케이블TV에서 무한 재방송되는 사극 중 하나인 <대장금>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하온 것인데...” 요즘 이런 단어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트렌드 개념의 이해

그래도 사물의 이치를 따지는 데 있어 개념을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보다 긴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트렌드의 개념을 자세히 짚어보는 게 필요합니다.

‘트렌드’ 개념을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시킨 건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로 불리는 책자의 힘이 컸습니다. 『트렌드 코리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잘 알려진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매년 펴내고 있는 책입니다. 그 해를 상징하는 12간지의 동물의 이름을 넣어 예측되는 트렌드 키워드를 나열하고, 이를 영문 이니셜 조합의 슬로건으로 만들어 책 제목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측의 적중률을 논하기에 앞서 2008년부터 시작해 벌써 15년째 대한민국 트렌드를 정리해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초창기 저작물인 『트렌드 코리아 2009』은 매우 독특하게도 트렌드 예측방법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간적 길이에 따른 트렌드 예측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대목에 트렌드 이해에 적합한 내용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구하기 매우 어려운 책이므로 해당하는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발췌] 『트렌드 코리아 2009』 225~228쪽

트렌드는 지속하는 시간적 길이와 동조하는 소비자의 범위에 따라, ①마이크로트렌드, ②패드(fad), ③트렌드, ④메가트렌드의 4가지 종류로 세분화할 수 있다. 마이크로트렌드, 패드, 트렌드, 메가트렌드를 엄밀하게 구별하지 않고, ‘트렌드’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포괄적인 의미로 트렌드라 부를 때는 넓은 의미의 트렌드로 볼 수 있지만, 패드보다 영향력의 범위가 넓고 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는 현상에 한정적할 때에는 좁은 의미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① 단기간 소수의 소비자가 동조하는 작은 변화를 ‘마이크로트렌드’라고 한다. 마크 펜에 의하면 “소비자의 일상 구석구석에는 아주 작은 변화의 조짐이 존재하는데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그만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사회적, 심리적, 경제적 조건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점을 놓치지 말고 작은 변화의 중요성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마이크로트렌드’보다 동조의 범위가 넓고 지속시간이 긴 트렌드를 ‘패드(fad)’라고 부른다. 패드의 사전적 의미인 ‘변덕’, ‘일시적 유행’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패드는 대부분 1년 이내로 비교적 짧게 지속되는 변화를 이른다. 흔히 ‘유행’을 트렌드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패드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할 때가 많다. 2003~2004년 유행했던 트레이닝복 패션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젊은 여성 사이에서 트레이닝복 패션이 열풍을 불러일으켰지만 해를 넘기자 급속하게 퇴조했다. 이처럼 단기간에 특정 계층의 소비자에서만 나타나는 트렌드가 패드다.

③ 단순한 유행을 넘어 1~5년까지 지속하며 상당수 소비자들이 동조하는 움직임을 나타낼 때 이를 ‘트렌드’라 부른다. 적절한 사례로는 꾸준히 지속되어 온 웰빙 트렌드, 개인화 트렌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트렌드가 10년 이상 계속되면 메가트렌드를 형성할 가능성도 갖게 된다.

④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조해 10년 이상 지속되는 경향을 ‘메가트렌드’라고 한다. 메가 트렌드는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만든 용어로서 “탈공업화 사회, 글로벌 경제, 분권화, 네트워크형 조직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조류”를 뜻한다. 어떤 현상이 단순히 한 영역의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한 공동체의 사회, 경제, 문화적인 거시적 변모를 수반할 때 메가트렌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트렌드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면 어떤 트렌드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인가? 사람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관심있는 트렌드는 서로 다르다. 마이크로트렌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마크 펜은 “몇 개의 거대한 힘이 세상을 움직이는 메가트렌드의 시대는 끝났고, 개인의 작은 트렌드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이고 소소한 변화에 주목하여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마이크로트렌드가 중요할 것이다.

#단기적인 시각으로 보는 로컬트렌드

그렇다면 요즘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로컬트렌드’는 4가지 트렌드의 분류 중 어디에 해당하는 걸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현상과 유행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마이크로트렌드’일 수도 있고, 한 번 끓어올랐다가 사그라드는 ‘패드’일 수도 있습니다. 단기적인 현상이라 보는 분들은 ‘로컬’ 혹은 ‘로컬트렌드’라는 표현을 부정하거나 큰 비중을 두고 바라보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느 지방도시를 들렀다가 현지에 거주하시는 분의 안내를 받으며 동네 마실을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내해주시는 분이 골목 어귀에서 잠깐 멈추시더니, “에이~ 저기 또 가짜 로컬이 있네!”라고 하시는 겁니다. 새로 생긴 점포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는데요. 사연을 들어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방도시에도 서울의 유명한 술집, 밥집, 빵집, 카페를 흉내낸 점포가 들어서고 있지만, 서울에서 경험한 것과 분위기가 다르거나 서비스 형태가 달라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서울의 핫플레이스와는 다른 손님 구성 때문에 문화적인 이질감이 두드러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점포가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호기심 때문에 오는 사람이 많아 장사가 되는 듯하지만, 얼마 못 버티고 문을 닫는 게 많다는 이야기였어요.

이 때문에 힙한 가게가 앵커스토어 구실을 못하니 ‘~리단길’같은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게다가 창업을 희망하는 자도 많지 않아 가게 하나가 문을 닫고 나면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기까지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심하면 5년 이상 공실상태로 방치되어 작은 가게 하나가 사라진 것뿐이지만 원도심 공동화가 일어난 것처럼 거리 분위기가 위축되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하는 겁니다.

이런 경험을 많이 쌓였던 사람의 입장이라면 로컬트렌드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 일시적인 거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최근 부상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적어도 5년 이상 지속되는 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는 로컬트렌드

수년 전부터 규모가 있는 식품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메뉴가 선을 보여왔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복잡다단한 트렌드와 생각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이기도 한데요. 이는 “우리의 것이 우리 몸에 좋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과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신토불이라는 말은 불경에 기록된 구절을 요약한 문구로 불교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1986년부터 시작된 국제무역협상 결과, 무역규제를 철폐해 세계를 단일경제블록을 만들자는 의도로 1995년부터 WTO라는 새로운 세계경제체제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농산물 시장개방 문제가 대두됩니다.

당시 선진국의 농업과 비교해 경쟁력이 매우 약했던 국내 농가를 지키자는 의미에서 “한국 사람은 한국 땅에서 난 것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신토불이’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1990년대 들어 대학생과 농민, 시민단체가 연대해 농산물 수입반대 시위가 이어졌는데, 시위 때마다 번번이 등장하는 슬로건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993년에는 ‘신토불이’라는 제목의 트로트곡이 출시되어 히트를 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외국으로부터 수입되어오는 농산물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며, 우리 농산물이야말로 몸에 좋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동시에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우리 농산물을 팔아주어 농가소득 증대에 도움을 주게 되면,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농촌지역, 즉 지방도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이런 풍조가 최근에는 ‘로컬푸드 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신토불이’와 달리 ‘로컬푸드 운동’은 생태주의의 영향에서 시작한 또 다른 분위기입니다. 식품을 해외에서 수입해오게 되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먹거리를 조달하는 것이 친환경적이라는 거죠.

이뿐만 아닙니다. ‘공정무역’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공정무역은 생산자들이 생산원가와 생계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자는 주장입니다. 대항해시대를 지나며 플랜테이션 농업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식민지를 만들어 대규모 상품작물 재배가 가능한 농장을 조성한 후 노예나 원주민을 강제로 동원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데서부터 기인한 불합리한 전통을 끝내려는 노력의 하나입니다.

대항해시대 이후 식민지를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들이 제국주의 열강이 되어 값싼 원료의 공급지와 잉여 생산물의 소비지로 식민지를 운영해 나가게 되었고, 제국주의 팽창이 한계에 달함에 따라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졌던 불공정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이기도 하지요.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현대에도 이런 불공정의 고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기에, 산지직거래를 한다든가 공정무역이 가능한 내부 규약을 정하는 것 등을 통해 생산자와 생산지를 보호하겠다는 착한 소비의 형태로 정착해 가고 있습니다.

한편, 기업의 사회적책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기업이 이윤추구 활동을 하더라도 사회공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기업활동의 과정 자체가 선한 동기와 선한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기에 기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생각과 행동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닝아웃’이라고 하여 소비자 스스로 정치적·사회적 신념 등 자기만의 주장과 실천을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극적으로는 SNS 포스팅이나 해시태그 등으로 주장을 펼쳐내려 한다든가, 보다 적극적으로는 옷이나 가방, 타투 등에 메시지를 담는 ‘슬로건 패션’ 등의 형태로 나타내기도 하지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실천 행동으로 식생활을 비건으로 개선해 간다든가, 가격이 훨씬 비싸더라도 업사이클링 제품을 구매한다든가, 동물권을 위해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한다든가 하는 것도 ‘미닝아웃’의 하나입니다.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와 지방도시의 불균형에 저항하기 위해 로컬제품을 구매하거나, 로컬을 우선순위에 놓거나 ‘로컬로 턴’하는 행위도 ‘미닝아웃’에 포함됩니다.

“식품기업들이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개발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먼 길을 돌아왔죠? 이제 살펴보니 지금까지 설명한 생각과 주장, 풍조들이 결합해 기업활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스타벅스가 2020년에 제주 한정메뉴를 출시해 지역의 로컬푸드 소비를 촉진하고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는 이색적이면서도 새로운 맛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한편, 제주도에 있는 스타벅스 지점의 마케팅 프로모션을 통해 높은 매출을 올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같은 해 파리바게뜨도 제주 특산물인 우도땅콩을 넣은 ‘제주마음샌드’를 출시했고, 편의점 체인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도 전남 보성군과 협약을 맺고 ‘벌교꼬막비빔밥 도시락’ 등을 통해 로컬푸드 확산을 위한 상품개발에 나섰습니다.

로컬푸드 뿐만 아니라 로컬 업체나 소상공인과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출시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시시호시의 경우 군산의 명물인 이성당과자점을 입점시켰고, 롯데제과도 ‘지역 빵집 상생프로젝트’로 경기도 양주시의 나블리베이커리와 손잡고 ‘나블리 홍쌀빵’을, 전북 부안 슬지제빵소와는 ‘삼거리호빵’을 출시하는 등의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까지 길게 설명한 내용 속의 핵심 키워드 하나하나가 로컬과 관련한 5~10년 주기의 트렌드거나 10년 이상 장기간 지속되는 메가트렌드이기도 합니다. 광범위한 접근을 시도한 이유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관점에 따라, 또는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로컬이라는 테마가 단기적일 수도 있고 장기적이기도 하며, 미시적인 주제일 수도 있고 거시적이기도 한 것이라서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직까지 세상에 로컬트렌드라고 정해진 것이 없어서입니다. 따라서 로컬트렌드란, 지금의 로컬 담론 형성과 관련된 트렌드라고 볼 수도 있고,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현상들로 국한된 트렌드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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