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열적인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각각 다른 구조와 경향성을 보여 왔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주로 구사하는 회색지대 전략의 유형과 강도에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했고, 그 행위자 역시 차이를 보였다. 큰 틀에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분쟁은 세력균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분쟁 당사국들이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달랐다.
중국보다 세력이 약한 국가들이 대거 분포해 있는 남중국해에서는 중국의 군사력 현시와 해양정찰, 해양조사, 어업활동 등의 회색지대 전략에 대해 자국의 방어력을 강화하는 같은 방식으로 간접적인 대응 행태를 보였고, 팃포탯 전략도 적극 활용해 중국이 사용하는 회색지대 전략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에 대응했다.
◆동중국해에서의 회색지대 전략
동중국해에서는 중국과 갈등하는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힘을 강화하고 군비와 기술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일본과 미국 간 동맹이 조금 더 강조되었고, 방위지침과 국제규범 등에 근거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외적 균형 수단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일본은 미국의 분쟁 관리와 관여 정책을 바탕으로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적 대응을 이어갔다.
회색지대 전략의 주요 전술 중 하나인 ‘기정사실화’는 경험적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분쟁 모두에 있어 핵심적인 전략으로 기능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단지 중국이 행사하는 정치 외교적 수사 또는 상징의 의미로써 분쟁이 격화되지 않았던 2010년대 초반과 중반에 주로 사용되었던 전략이었다. 하지만 기정사실화 전략은 여전히 매년 몇 차례씩 남중국해, 동중국해 분쟁에서 활용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심화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은 유형이 매우 다양하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분쟁에 있어 핵심적인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이는 대체로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구사된다는 측면에서 분쟁 지역에 대한 안보 불안을 가중시킨다. 더불어 상대국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안보 위협을 가하면서 전면전으로의 확대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전략을 다양한 차원에서 활용하면서 해양 분쟁을 수행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 사용 의도는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쟁 관리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결국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분쟁에서 활용하고 있는 회색지대 전략에 포섭된다면, 분쟁에 대한 적실한 대응이 불가능해질뿐더러 중국이 원하는 해양에서의 점진적인 패권 주도와 현상 변경까지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해상민병대: 회색지대 전략에 적합한 수단
중국은 회색지대 전략의 변형인 ‘살라미 전략’을 추구해 왔다. ‘살라미 전략’은 1974년 베트남 홍사군도를 처음 장악하면서 확인된 전략이다. 중국이 이 전략을 채택한 이유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이어도에 살라미 전략을 적용해왔으며, 궁극적으로 이어도를 장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회색지대 전략 최선의 수단으로 평가되는 해상민병대를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해상민병대는 인민해방군 해군의 보조군이자 지원군 역할을 한다. 예비군으로 분류되지만 인민해방군 해군의 실제 예비군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두 개의 분리된 예비군 시스템의 구성 요소로서 민병대와 인민해방군 예비군을 동시에 건설했다. 중국 민병대는 인민해방군 예비군과 유사한 역할을 하며 인민해방군이 맡은 역할을 지원한다.
해상민병대에 주의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평화시 해상민병대와 일반 어선단을 구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해상민병대는 사실상 감시, 접근, 외국 바다 행위자와의 교전, 심지어 상륙과 중국이 주장한 해상 영유권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필요할 때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 최전방 비정규군 역할을 할 수 있는 군사구조와 정기적인 훈련체제를 갖추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곳에 이어도가 있는데, 이것은 실제 해상 경계를 확정하는 것이 양국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이 주요 전투 작전의 전통적인 단계로 이어도를 점령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노골적인 공격은 유엔 헌장에 정의된 전쟁에 해당하고, 대규모 공격의 비용은 심각하지만 잠재적 이익은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색지대 갈등의 원인과 특성, 전략 등을 고려할 때 중국의 회색지대 강제에 이어도가 취약해지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
◆ 독도와 이어도를 둘러싼 회색지대 전략의 가능성
일본은 한국의 이웃 국가 중 하나로서 비밀 작전의 속도가 빠른 극우 세력을 이용하여 독도 섬을 상륙 및 점령하는 데 회색지대 전략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극우주의자들은 위장한 사실상의 민병대로 동원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해양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의 관점뿐만 아니라 일본의 관점에서도 이 시나리오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해양 주권을 방어하는 전략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인 것이 우위에 있다. 즉, 국방 전략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생각할 수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 최고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이어도와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잦아든 것은 회색지대 활동에 대항하는 일종의 억지력이 해당 해역에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이어도와 독도에 대해 회색지대 공격을 개시했을 때 우리에게 구체적인 억제책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판단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오랜 기간 한국이 중국과 경계획정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어도 주변수역과 서해 인근에서 민간 어선을 가장한 해상민병대의 출현 횟수가 증가하는 데다가, 도발 강도 역시 거세지고 있다.
또한, 한국 영공과 방공식별구역 인근에 지속적으로 중국 군용기가 단독으로, 때로는 러시아와의 연합 훈련을 계기로 출몰하고 있는 것도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전히 공개된 바로는 주로 독도를 대상으로 한 일시적 무력 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정례 훈련과 계획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노골적인 군사 작전에 대한 대응 전략은 회색지대 위협과 관련이 없다. 따라서 중국이 구사하는 분쟁 전략인 회색지대 전략에 맞서 우리의 해양안보와 해양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더욱 강한 해군력과 참신한 해양 전략의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이제 해양 전략은 해군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회색지대 위협에 대한 군사적 비군사적 영역을 망라한 종합적인 대처능력을 갖추고 특히 중국의 해상민병대에 대처하기 위해 구토작용제를 살포할 수 있는 함포탄과 같은 비살상 제압 무기와 전자전 장비를 해군과 해경이 모두 확보해 해상민병대를 앞세운 중국의 기정사실화 활동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