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석 연휴와 비슷한 일본의 올해 ‘오본야스미’(お盆休み)는 약 9일간(8월 10~18일)이다. 게다가 연휴 중에는 8월 15일 ‘슈센노히’(終戦の日)도 있다. 이날은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념한다”고 하는데 이런 종전기념일을 하루 앞둔 8월 14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할 것을 밝혔다.
현 여당인 자민당 총재는 총리를 맡게 되기 때문에, 9월 총재선거 불출마는 당연히 총리를 그만두겠다는 의미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이 변할 것임을 보여주는 첫걸음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자민당이 변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 같은데, 국민들은 그의 의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1. 기시다의 초라한 퇴진
최근까지도 기시다 총리는 자신이 이룬 업적을 치부하면서 총리직을 지속할 것임을 공언한 적이 있다. 찬반 논란도 있지만, ①30여 년 만의 임금인상과 기업실적 호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G7 히로시마 서미트 개최로 관련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였다는 것이 그의 큰 업적이다. 하지만 ②방위력을 발본적으로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5년간 43조 엔을 투입하면서, 저출산 대책도 추가로 내놓았지만,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는 뒤로 미뤄둔 상태이고, ③1인당 4만 엔의 정액 감세를 실시하는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다. ④앞선 부정적 요인에 추가해 아베 전 총리의 총격 사망 사건으로 밝혀진 구 통일교회 문제, 자민당 정치자금(파티권) 문제를 스리슬쩍 매듭지려고 한 것, ⑤대기업들의 주가는 눈에 띄게 올랐지만, 엔저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상승해 국민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도 부정적 요인 중 하나다.
그러므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권지지율은 장기간 저공비행(7월 기준, 20.2%)상태였다. 문제는 정권지지율 뿐 아니라 자민당 지지율도 하락(7월 기준, 35.2%)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민당 지지율 하락은 야당에게 정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국회의원 보궐선거 뿐 아니라 자민당이 지원하는 지방선거도 거의 전패하였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2. 무엇이 기시다 총리를 그만 두게 했나?
그만둔다고 결심한 것은 기시다 총리 스스로의 결심이다. 하지만 주변의 강압적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이제까지 기시다 총리 정책을 반대해 왔던 전 아베파 즉 자민당의 강성 보수세력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아베 총리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베 사망 이후 하나 둘 정치자금 문제로 사임하거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들 스스로도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끓는 분노를 참고 있었을 것이다.
유튜브와 우익 언론을 통해 기시다 총리의 정책에 반발해 왔고, 만일 기시다 총리가 연임한다면 내년에 있을 참의원과 중의원선거에서는 더 이상 당선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부 바람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처럼 그만둘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금 총리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공언하거나 고민중이라고 언급한 자민당 정치인들은 11명(8월 18일 기준)에 이른다. 이들이 자민당 총재 후보가 되려면 국회의원 20인 이상의 추천이 필요한 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후보가 나선 것은 아소파를 제외한 공식적인 파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아베 전 총리처럼 강력한 총재 후보가 없다는 것도 의미한다.
한편, 이제까지 자민당 파벌이 유지되었던 이유는 파벌이 후보자들에게 ①선거자금, ②선거구 공천, ③각료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파벌에 대한 절대복종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파벌이 해산된 것은 아베파의 정치자금 문제 때문이었고, 결국 기시다 총리의 임기를 마치게 한 이유도 되었다. 정치자금 문제 이후 아소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파벌들은 없어지긴 했어도 ‘정책집단’이라는 형태로 살아남았다. 즉, 간판만 바꾸었을 뿐 정책집단 수장들의 입김은 아직 살아있다. 그러므로 자민당 내 유일한 공식 파벌인 아소파의 회장 아소 타로는 가치우마(勝ち馬: 승마에서 이기는 말이란 뜻)를 찾기 위해 코노 타로 혹은 모테기 도시미츠 같은 유력후보와 접촉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이 자민당의 변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다는 빈축도 사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역시 아소 타로와 함께 킹메이커로 이름이 거론되면서 총재 후보를 좌지우지하는 ‘야미쇼군’(闇将軍 :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3. 총재선거를 통해 자민당 정치는 바뀔까?
그렇다면 기시다 총리의 말처럼 자민당은 이번 총재선거를 통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①오히려 아소 타로의 ‘가치우마’(勝ち馬) 찾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민당 분위기 쇄신이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②국민들로부터 총리 후보로 가장 지지받는 이시바 시게루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엄밀히 말해 자민당 당원들의 다수가 이시바를 원하지만 아베 전 총리와 대립각을 유지했기 때문에 자민당 정치인들로부터는 거의 왕따 취급을 받고 있으므로 이시바가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③또한 세대교체를 원하며 새로운 바람으로 기대되는 40대의 코이즈미 신지로, 코바야시 타카유키 등이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지만, 아소 타로 같이 뒷배가 되어줄 강력한 ‘야미쇼군’(闇将軍)은 나서지 않을 것이다. 코이즈미 신지로조차 그의 아버지이며 전 총리였던 코이즈미 쥰이치로가 “아직 총리가 되기에는 빠르다”라고 할 정도다. 리더는 될 수 있지만 어려운 정국을 헤쳐 나가면서 각 정파를 조정할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다.
④게다가 자민당을 견제할 만한 야당이 없는 것도 자민당 정치가 변하기 힘든 이유다. 제일 야당인 입헌민주당 대표선거가 다음 달로 예정되어 있는데,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에다노 유키오 후보이지만, 우리에게도 알려진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도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는 아베 전 총리에게 정권을 빼앗긴 소위 ‘카마세이누’(かませ犬: 젊은 투견의 자신감을 북돋기 위해 일부러 물리게 하는 연습용 개를 지칭하며, 통상 주인공의 강함을 보여주기 위해 당하는 역할, 즉,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지칭함)라고 알려져 있지만, 국회에서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추도연설을 하고 난 다음부터 자민당 국회의원들로부터도 좋은 반향을 얻었다. 그 결과 중도 보수층 지지를 결집할 인물로 부상중이지만 그 또한 역부족이다.
이러한 이유가 국민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자민당 중심의 정치 변화를 막는 배경이므로 결국 자민당이 변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