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오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던 날, 우산을 든 메리 포핀스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왔습니다. 1964년 8월 27일 세상에 첫선을 보인 이 마법 같은 영화는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영화 팬들의 추억 속에 사랑받고 있습니다. 소설 1권의 첫 출간이 이루어진 1934년으로부터 영화화까지 무려 30년이 걸린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크리스마스 시즌 국제극장과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했고, 4년 뒤인 1979년 어린이날 시즌에 허리우드극장에서 재개봉하며 영화팬들에게 선보인 작품이죠.
◆영화화 불발될 뻔, 영화는 최고의 걸작으로 탄생
<메리 포핀스>의 영화화는 원작자 P.L. 트래버스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트래버스는 영화화 과정에서 원작의 메리 포핀스의 차갑고 얄미운 성격이 바뀌는 것을 맘에 들지 않아 했고,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의 삽입을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화의 제작이 끝난 후에도 에니메이션 씬을 삭제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영화의 속편 제작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해요.
20년의 기다림 끝에 만들어진 영화 <메리 포핀스>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인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을 선보였습니다. 거울에 비친 메리 포핀스와 거울 밖의 메리 포핀스의 이중창 장면이라든가 <Jolly Holiday> 장면에서 줄리 앤드류스와 딕 밴 다이크가 그림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당시의 관객들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마치 메리 포핀스가 평범한 일상에 마법을 불어넣는 것처럼, 영화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영화 <메리 포핀스>의 진정한 마법은 그 메시지에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1910년 영국의 런던을 배경으로 하지만,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시기를 극복한 가족의 소중함, 상상력의 힘, 일과 삶의 균형 등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가 개봉된 1960년대를 향한 주제이면서도, 개봉 후 60년이 지난 2020년대의 지금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특히 아버지 조지 뱅크스의 변화는 주목할 만합니다. 일에만 몰두하던 그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변화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줍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또 한 번 일깨워 줍니다.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보편성 있는 작품입니다.
이 때문인지, 2006년 12월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2013년까지 공연되었으며, 2013년에는 영화 ‘메리 포핀스’의 탄생 비화를 다룬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가, 2018년 디즈니가 속편이자 리메이크 격인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제작됐습니다.
<메리 포핀스> A to Z
A: Andrews
<메리 포핀스>의 주인공 쥴리 앤드류스 1935년 10월 1일 영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주목받았습니다. 1964년 <메리 포핀스>로 영화 데뷔를 했고, 이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활약하던 그녀를 발굴해 영화 주연으로 캐스팅한 월트 디즈니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줄리 앤드류스는 <메리 포핀스> 촬영 당시 임신 중이었지만, 월트 디즈니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 우아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연기는 메리 포핀스 캐릭터 그 자체였습니다. 이 영화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고,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연을 맡아 연이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B: Banks
뱅크스 가족은 조지 뱅크스(데이비드 토믈린슨)와 윈이프레드 뱅크스(글리니스 존스), 이들의 자녀 제인과 마이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속으로는 불화가 내재된 이 가족의 삶은 메리 포핀스의 등장으로 완전히 뒤바뀝니다. 엄격하고 고지식한 아버지 조지 뱅크스의 변화는 영화의 중요한 서사 축을 이룹니다. 메리 포핀스의 보살핌 아래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C: Cherry Tree Lane 17
체리 트리 레인 17번지. 뱅크스 가족이 사는 거리이자 메리 포핀스가 우산으로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곳입니다. 이 거리는 1900년대 초 런던의 중산층 주거지역을 재현한 디즈니 스튜디오의 세트장에서 촬영되었지만, 관객들에게는 런던 어딘가의 동화같은 거리로, 아름다운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장소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D: Disney
월트 디즈니는 <메리 포핀스>를 스크린으로 옮겨온 장본인입니다. 디즈니는 20년 넘게 P.L. 트래버스를 설득해 영화화 권리를 얻어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따뜻하고 마법 같은 이야기, 최첨단 기술과 전통적 가치의 조화, 음악과 이야기의 완벽한 결합 등 월트 디즈니 자신의 제작 철학을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D: Dick Van Dyke
극 중 어디에라도 나타나는 19세기 N잡러 버트 역은 다재다은한 배우 디크 밴 다이크가 맡았습니다. 춤, 노래, 연기를 모두 소화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굴뚝 청소부들과 어우러지는 <Step in Time> 장면에서 남자 앙상블들과 보여주는 역동적인 춤은 큰 볼 거리입니다. 당시 영국 서민층을 연기하기에는 액센트가 어색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익살스럽고 매력적인 연기로 모든 비난을 상쇄했습니다.
E: Edward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10년으로, 1901년부터 1910년까지 재위한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마지막 통치 기간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이전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던 때였습니다. 영화는 이 시대의 의상과 건축, 사회 분위기를 세밀하게 재현해냈고, <메리 포핀스>만의 독특한 미학을 만들어 내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F: Feed the Birds
극 후반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주는 넘버 <Feed the Birds (Tuppence a Bag)>는 월트 디즈니가 가장 좋아했다고 알려진 이 노래이기도 합니다. 성 바울 대성당 앞에서 새에게 모이를 주는 노파의 모습은 경제공황 시대를 겪은 이들에게 인간애와 자선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터펜스(Tuppence)’는 2펜스를 뜻하는 당시의 속어로, 은행에서 벌어지는 대소동과 대비되어 개인적인 부의 축적과 자선, 인색함과 행복을 가늠하는 암시를 제공합니다. 이 장면은 조지 뱅크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G: Grammy Awards
<메리 포핀스>는 1965년 제7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두 개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래미상 수상은 <메리 포핀스> 속 뮤지컬 넘버가 대중적 인기와 예술적 가치 모두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메리 포핀스>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이 최우수 아동 녹음상을 수상해 영화음악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리처드 M. 셔먼, 로버트 B. 셔먼 형제는 영화 또는 TV 쇼를 위한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새로 신설된 카테고리의 첫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H: High
<메리 포핀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높은 곳’을 향한 여정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메리 포핀스로 시작해, 지붕 위의 삶을 사는 굴뚝 청소부들의 춤, 웃음 가스로 천장에 떠오르는 사람들, 옥상에서 대포를 쏘는 붐 제독까지.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답답한 일상의 무게가 가득한 아래를 벗어나 삶의 즐거움이 있는 높은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특히 가족이 함께 공원에서 연을 날리는 장면은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메리 포핀스가 다시 하늘로 떠나갈 때,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스스로 높이 올라서는 마음으로 극장을 떠나게 해 주죠.
I: I: Imagination
<메리 포핀스>는 상상력(Imagination)의 승리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메리의 마법 가방에서 끝없이 나오는 물건들, 분필로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 웃음으로 천장에 떠오르는 장면 등은 모두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특히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라는 단어 또한 상상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환상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완고한 조지 뱅크스가 마지막에 얻은 깨달음도 이런 상상력의 원천에 힘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J: Jane and Michael
영화 속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는 건 뱅크스 가족의 아이들 제인(커런 도트라이스)과 마이클(매튜 가버)입니다. 실질적으로 이 두 아이의 성장과 변화가 모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축이죠. 처음에는 말썽꾸러기로 등장하지만, 메리 포핀스의 보살핌 아래에서 성장합니다. 두 어린 배우의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연기는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K: Kite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에 연(kite)이 등장합니다. 마지막 넘버 <Let's Go Fly a Kite>를 부르며 가족이 함께 연을 날리는 모습은 영화의 감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도 영화의 주제 의식을 구현하는 장면입니다. 가족의 화합, 삶과 일의 균형,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연날리기 장면에 담았습니다.
L: London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런던입니다. 20세기 초 런던의 모습이 아름답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세인트폴 대성당, 빅벤, 의사당 등 런던의 랜드마크들이 등장하며, 특히 런던의 지붕 위를 누비는 굴뚝 청소부들 장면도 재밌습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다른 영화로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는데요.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M: Magic
가방에서 큰 물건들을 꺼내고, 손가락을 튕겨 방을 정리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등 메리 포핀스의 마법은 영화 속에 판타지를 불어넣습니다.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상력과 특수효과 실력을 뽐내는 데도 제격인데요.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 상상력이 지닌 힘과 일상에서의 기적을 표현하는 모티브가 되어 주었습니다.
N: Nanny
메리 포핀스의 직업은 보모(保姆)입니다. 소설과 영화는 보모라는 직업을 통해 당시 영국 중산층의 문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동시에 메리 포핀스라는 이상적인 보모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와 교육 방식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O: Oscar(아카데미상)
<메리 포핀스>는 이듬해 열린 37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5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여우주연상, 편집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주제가상 등을 받았는데, 줄리 앤드류스의 수상은 매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을 맡았던 '마이 페어 레이디'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줄리 앤드류스 대신 오드리 헵번이 캐스팅되었는데요. 이에 설욕하듯 오드리 헵번을 제치고 이뤄낸 여우주연상이라 더 큰 의미가 있었죠.
P: Practically Perfect in Every Way
“모든 면에서 실질적으로 완벽함”. 이는 메리 포핀즈가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문구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캐릭터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완벽을 추구하되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는 메리 포핀즈의 실용적 마법을 상징하는 대사입니다. 더 나아가 개봉 당시의 영화 <메리 포핀스> 자체를 대변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실질적으로 완벽한’ 뮤지컬 영화로 평가받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두 번 정도 등장하는데요, 첫 번째는 메리 포핀스가 뱅크스 가족에게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입니다. 특히 사람을 측정하는 테이프로 자신의 키를 잰 다음 이 문구를 읽어내죠. 이 장면은 자신감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A Spoonful of Sugar> 노래에서 ‘실용적인 완벽함’이 어떻게 일상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줍니다.
Q: Queen
공교롭게도 <메리 포핀스> 속에는 ‘여왕’의 메타포가 등장합니다. 영화의 배경인 에드워드 시대는 여전히 전임 국왕이던 빅토리아 여왕의 영향이 강하던 시기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영화가 개봉한 1964년의 영국 국왕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위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메리 포핀스는 뱅크스 가와 체리 트리 레인 마을 속에서는 여왕이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공원의 바닥에 그려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그동안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우려먹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변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림 속 세계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는데, 그 세계의 주인공들은 메리 포핀스를 여왕을 모시듯 예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줄리 앤드류스는 이 영화로 할리우드의 새 여왕이 되었고, 영화 <메리 포핀스>는 가족 영화의 여왕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원작자 P.L. 트래버스 또한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절대적인 여왕이었죠. 아마 월트 디즈니 입장에선 영화화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원작자의 까다로움과 고집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여왕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R: Rooftops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 지붕은 단순한 배경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런던의 지붕 풍경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해서죠. 영화 속에서 지붕은 자유와 모험의 상징입니다. 메리 포핀스의 마법으로 굴뚝을 통해 연결되는 지붕은 환상과 현실의 두 세계를 잇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또한 굴뚝 청소부들의 넘버 <Step in Time> 장면은 일상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S: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가장 유명한 넘버의 제목이자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영화 속에선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할 멋진 말이 없을 때 사용하는 말”로 나오는데요. 이 우스꽝스럽고 긴 단어는 애니메이션의 상상력과 재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심지어 줄리 앤드류스는 이런 어려운 말을 거꾸로 말하기까지 합니다.
나무위키에 자세한 설명이 있어 옮겨 보자면,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오셔스’라고 읽으며, 뜻을 전부 나누어서 해석하면 super(능가하는)+cali(아름다운)+fragilistic(섬세한)+expiali(속죄하는)+docious(가르칠 수 있는)으로, 영어의 감탄사들을 합쳐놓은 단어다.”
한국의 옛날 코미디에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과 유사한 조어 방식입니다만, 감탄사가 연속되는 어감으로 놓고 보면 청소년들의 속어인 급식체의 “에바쎄바쌈바디바, 오지고지리고렛잇고알파고”같은 느낌이랄까요?
T: P. L. Travers
원작 소설의 작가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는 호주 출신의 영국 작가입니다. 1934년 <메리 포핀스> 첫 번째 책을 출간했고, 이후 이를 시리즈로 발전시켜 8번째 책이 1988년에 나왔습니다. 작품에 눈독 들인 월트 디즈니는 영화화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했는데, 허락을 받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트래버스는 영화화 과정에 깊이 관여했으며 제작진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까다로운 성격과 원작에 대한 애착은 2013년 영화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U: Umbrella
뭐니뭐니 해도 메리 포핀스의 트레이드 마크는 우산입니다. 이 마법의 우산은 그녀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단이 되며,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합니다. 앵무새 머리 손잡이가 달린 이 우산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메리 포핀스의 신비로움과 마법 같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우산은 보호와 돌봄의 메타포로, 메리 포핀스가 뱅크스 가족에게 제공하는 보살핌을 나타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V: Votes for Women(The Suffragette Movement)
시대적 배경인 1900년대 초의 영국은 여성참정권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은 이미 1800년대 말부터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1918년에 30세 이상 여성에게 제한적으로 참정권이 부여되었고, 1928년에 이르러서야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했습니다.
뱅크스 가족의 엄마 윈이프레드는 진보적인 여성운동가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녀의 캐릭터는 당시 변화하는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상징합니다. 윈이프레드가 부르는 <Sister Suffragette>의 가사에 “우리의 딸들의 딸들을 위해 싸운다”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요. 미래 세대를 위한 투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메리 포핀스는 이 운동에 대한 입장을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영화 속 여성참정권 운동의 묘사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가볍게 다뤄진 측면이 있지만, 당시의 디즈니 영화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룬 것 자체가 진보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W: Wind
“Wind's in the east, mist coming in”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버트의 대사입니다. 메리 포핀스의 도착을 암시하면서,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모험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설정하며, 관객들을 메리 포핀스의 세계로 끌고 갑니다. 메리 포핀스는 바람 따라 떠도는 방랑자이기도 합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체리 피크 레인 마을에 날아 왔고, 바람의 방향이 또 바뀌자 떠나가 버리죠.
X: ParadoX
영화 <메리 포핀스>는 패러독스의 연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인공들부터 역설 덩어리입니다. 메리 포핀스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자칭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순간에 매력을 발합니다. 반면 가장 가난한 굴뚝 청소부 버트는 가장 부유한 영혼의 소유자죠.
영화의 줄거리도 역설로 가득합니다. 메리 포핀스가 떠나는 순간 가족은 더욱 가까워지고, 조지 뱅크스가 직장을 잃었을 때 비로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습니다. 대표 넘버 <A Spoonful of Sugar>는 힘든 일도 즐겁게 받아들이면 쉽게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로, 원작이 쓰여진 경제공황 시기를 관통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제작 과정의 역설도 재밌습니다. 원작자 P.L. 트래버스는 영화화를 극구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 덕분에 그녀의 작품들은 불멸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줄리 앤드류스의 캐스팅도 마찬가지죠.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연이었던 그녀가. 영화화 과정에선 주연에서 탈락했지만 <메리 포핀스>의 히트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또 화려한 뮤지컬 넘버들 중 가장 조용한 분위기의 <Feed the Birds>는 월트 디즈니가 가장 사랑한 곡이었다는 점에서 뮤지컬 넘버의 역설도 짚고 넘어가게 되네요.
<메리 포핀스>는 판타지 영화이지만, 관객인 우리에게 현실적인 삶의 교훈을 줍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역설이자 매력일지도 모릅니다. 필자도 60년 된 이 영화를 기념하는 것도 이런 달콤한 역설의 매력 때문입니다.
Y: Yellow Screen
<메리 포핀스>는 당시 혁신적이었던 특수효과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Sodium vapor process’ 혹은 ‘Sodium screen process’라는 기술로 옐로스크린과 특수한 프리즘 카메라를 사용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매끄럽게 결합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블루스크린이나 그린스크린보다 더 정교한 경계선 처리를 가능케 했습니다.
특히 <Jolly Holiday> 장면에서 실사 속 배우들이 애니메이션 세계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구현했습니다. 이런 기술 혁신은 <메리 포핀스>를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들었고, 이후 영화 산업의 특수효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Z: Zeitgeist
<메리 포핀스>가 반영하고 있는 시대정신(Zeitgeist)도 의미가 깊습니다. 영화는 191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원작 소설이 쓰여지던 시기인 1930년대는 대공황의 여파로 희망과 위안이 필요한 시기였죠. P.L. 트래버스의 이야기는 마법을 통해 일상의 고단함을 극복하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한편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는 또 다른 사회 변혁의 시대였습니다. 여성의 권리 신장(메리 포핀스의 독립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 가족 가치의 재조명(일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의 변화) 등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죠. 또 전통과 혁신의 조화(에드워드 국왕 시대와 최첨단 영화 기술의 결합)도 들 수 있습니다.
영화 속 메리 포핀스는 이 두 시대를 아우르는 캐릭터입니다. 보편적인 메시지와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시에,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는 셈이죠. 마법 같은 희망을 주면서도, 독립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죠. 따라서 <메리 포핀스>는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낸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 더]
L: Laugh 혹은 T: Tea Party on the Ceiling
천장에서의 티 파티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웃음으로 가득 찬 삼촌 앨버트의 집에서 벌어지는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법 같은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이 장면은 당시 특수효과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시도였으며,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삼촌 앨버트(에드 윈)의 넘버 "I Love to Laugh". 웃음을 참지 못해 천장에 붕 떠있는 앨버트 삼촌의 모습은 영화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노래는 영화의 전반적인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대표하며, 웃음이 지닌 전염성과 힘을 보여줍니다.
여기서도 메리 포핀스는 시종일관 차가운 태도를 바꾸지 않는데요.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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