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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덕후생활(2)] 2차 세계대전 공중전 영화의 오마쥬 - ‘지옥의 외인부대(원제: 에어리어88)’

<지옥의 외인부대②> 명장면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고전전쟁영화들 - 이른바 ‘총복습설?’

퓨전매니악 씀 승인 2019.06.27 05:24 | 최종 수정 2020.09.28 15:43 의견 0

<지옥의 외인부대(원제: 에어리어88)> 국내 방영 30주년을 회고하는 사연으로 이 시리즈의 문을 열었다. 당시 이 애니메이션의 방영 여파로 다양한 분야의 덕후가 탄생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단 한 번만의 방영으로 청소년들에게 큰 여파를 끼친 것은 작품성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과 오버랩되는 점으로 인한 충격효과가 있었고, 이후 1990년 발발한 <걸프 전쟁>으로 인한 복습효과를 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큰 여파가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초등학교 다니던 꼬꼬마가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애니메이션을 심도 깊게 보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발상을 거꾸로 해보았다. 오히려 <지옥의 외인부대>가 기존에 방영된 전쟁영화들에 대한 총복습편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워 본 것이다. 사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10월 1일 국군의 날이 공휴일이었던 당시 ‘특선영화’라는 제목으로 하루 종일 전쟁영화를 방영했다.

게다가 콘텐츠가 다양한 지금과 달리 틀었던 영화를 또 틀어주는 건 당연했다. 비디오나 DVD, 지금과 같은 VOD(OTT)가 없던 시절이라 재탕삼탕은 훌륭한 시청자 서비스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고,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빌리고, 여러 차례 구글링을 한 끝에 <지옥의 외인부대>와 연결할 수 있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3편의 공중전 영화를 추려낼 수 있었다.

<장렬 633폭격대>, <공군대전략>, <공폭대작전> 이 3편이다. 특히 <장열 633폭격대>는 1989년 6월 6일에 방영됐던 <지옥의 외인부대> 2부의 협곡비행 전투신에서 철저하게 오마쥬(hommage;경의의 표현)된다.

▲ 장렬 633 폭격대 ⓒ 네이버 영화

¶ 오마쥬(1) <장렬 633폭격대>(633 Squadron, 1964)

옛날 신문을 뒤져보니 1964년 11월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했다. 국내 개봉당시 <장렬!! 633폭격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안방극장 방영은 1984년 11월 3일 KBS2 <토요명화>를 통해서다. 재방영은 1985년 8월 10일 낮 지금 EBS의 전신인 KBS3의 <세계명작감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모스키토 폭격기로 구성된 633비행대대는 노르웨이 상륙작전을 앞두고 특수임무를 맡게 된다. 연합군에게 위협적인 독일의 로켓병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로켓의 특수연료를 생산하고 있는 공장을 파괴하라는 임무다. 633비행대대는 노르웨이 피오르드 사이로 침투해 독일군의 방공망을 피한 후 바위절벽을 무너뜨려 공장을 부수는 작전이다. 결국 비행대대의 희생을 통해 절벽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상당히 사기성이 있는 영화인데, 영화 시작과 동시에 뜨는 자막만 보면 영화 속 작전이 실화였던 것처럼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작전 내용이 상당히 황당하지만 순항미사일도 없고, 폭탄의 위력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던 2차 세계대전 당시를 생각하면 상당히 개연성이 있었다.

▲ 경향신문 1964.11.28. 7면에 게재된 광고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하지만 633 비행대대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 속의 가상의 부대이고 이런 무모한 작전도 없었다. 다만 실제로 영국의 617 비행대대가 노르웨이 피요르드에 정박중이던 독일 전함 틸피츠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고는 한다.

피오르드 절벽 사이를 비행해 적진 깊숙이 있는 연료공장을 폭격한다는 내용이 <지옥의 외인부대>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정부군의 연료공장을 없애기 위해 150km 길이의 S자 골짜기 사이의 터널 공간으로 침투한다는 내용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영화보다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지옥의 외인부대>가 <장열 633폭격대>를 오마쥬한 것은 이외에도 더 있다. 등장인물 중 갈고리 모양의 의수를 사용하는 파일럿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런 디테일한 오마쥬가 이루어졌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원작 만화의 작가 ‘신타니 카오루’와 관련있어 보인다. 원래 파일럿을 꿈꾼 소년이 만화가가 되며 날고 싶은 소망을 만화로 표현해낸 것이다. 추측컨대 항공기 메카닉을 비롯, 공중전 장면 등을 참고하기 위해 기존의 전쟁영화 속 장면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모사해 낸 것 아닐까

한편 <장렬 633폭격대>의 협곡침투비행을 오마쥬한 유명 작품이 또 하나 있다. 1977년에 등장한 <스타워즈>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데드스타’를 파괴하기 위해 출격한 반란군의 X윙, A윙 편대의 전투신 또한 <장렬 633폭격대> 후반부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X윙 편대가 분열하며 비행하는 장면, 제국군의 4연장 대공포가 불을 뿜는 장면, 데드스타의 심장부에 폭격을 가하기 위해 좁은 협곡을 비행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레드 리더, 스탠바이!”같은 대사조차 똑같다.

신타니 카오루가 <에어리어 88>의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79년이니 <장렬 633폭격대(1964)>-<스타워즈(1977)>-<에어리어 88(1979)>로 이어지는 흐름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스타워즈>가 국내 안방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건 1985년 2월 20일로 KBS1의 ‘민속의날’ 특선영화를 통해서다. 따라서 국내 안방극장을 통해 이 장면들을 보게 된 것도 <장렬 633폭격대(1984)>-<스타워즈(1985)>-<지옥의 외인부대(1989)>의 순으로 이어진다.

¶ 오마쥬(2) <공군대전략>, <공폭대작전>, <373 특수비행대>

아래 소개하는 3편의 작품은 <장렬 633폭격대>만큼 구체적인 오마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지옥의 외인부대>의 설정에 많은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들이다.

① 공군대전략(Battle Of Britain, 1969)

영화의 배경은 1940년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이 영국을 폭격하며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이다. 제공권을 지키려는 영국 공군과 영국 공군을 괴멸시키려는 독일 공군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을 통해 여러 차례의 공중전과 지상폭격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지옥의 외인부대>의 무대는 현대전이기 때문에 유도미사일을 사용한 전투가 주여야 하는 게 정상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제한된 화면 안에서의 액션을 연출하고 원작자의 로망이 반영되어서인지 2차 세계대전 공중전에서나 볼 수 있는 기총전투신이 과도하게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유사한 장면들도 볼 수 있는데 <공군대전략>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던 총탄에 맞은 파일럿의 고글이 피로 물드는 장면이 <지옥의 외인부대> 속에서도 고스란히 모사된다.

국내 개봉은 1969년이었고, 안방극장에는 일찍 소개되었다. TBC에서 1978년 3월 3일 최초 방영되었고, 이후 1978년 6월 23일 KBS 명화극장에서 방영된다. 1984년 9월 29일에도 KBS1 명화극장에서 또 방영되었고 이후 1987년 6월 6일 현충일 특집, 1997년 6월 6일에도 MBC에서 현충일 특집으로 방영하는 등 호국보훈의 달 단골 영화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69.12.15. 경향신문 8면에 실린 광고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공군대전략(Battle Of Britain, 1969) ⓒ네이버 영화

② 공폭대작전(La battaglia d'Inghilterra, 1969)

<공군대전략>에서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에게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건, 영국 본토의 레이더 기지 때문이었다. <공폭대작전>에는 영국의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독일 첩보부대가 등장한다.

이는 <공폭대작전>이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리던 ‘무법자’ 시리즈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마카로니 전쟁영화였기에 가능한 소재였다. 공중전 같은 스펙타클한 연출을 위해선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는데, 영국 공군기지를 배경으로 한 첩보활동과 지상전투 장면을 대폭 할애하여 스토리가 주는 재미는 강화하고 제작비는 절감하는 꼼수를 보여주었다.

국내 개봉은 1971년, 1985년 2월 9일 KBS 토요명화를 통해 안방극장에서 최초 방영된다.

▲ 동아일보 71.5.13. 8면 광고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③ 다큐드라마 373 특수비행대 (Squadron, 1982)

방금 소개한 2편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했는데, 현대전에 등장하는 군용기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자다 깨서 우연히 본 심야 프로그램으로 스쳐 지나간 흐릿한 기억이 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옥의 외인부대>에도 등장하는 수직이착륙 전투기 해리어, F-4 팬텀 등이 눈요기 거리였다.

열심히 구글링한 끝에 1982년 영국 BBC가 제작 방영한 <Squadron>이라는 10부작 시리즈며, 국내에선 1988년 MBC에서 심야 프로그램으로 방영했다는 정도의 기록만 찾을 수 있었다.

필자의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373 특수비행대>의 에피소드 중에 항공안전을 위해 소형 민간여객기를 격추하는 장면이 있었다. <지옥의 외인부대> 속에도 눈을 부상당한 동료 파일럿이 패닉상태가 되어 아군기를 공격하자 안전을 위해 격추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마쥬라고 하기엔 애매한 감이 있지만 오버랩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제작연대를 고려하면 원작자가 참고한 자료에 포함이 될 수 있다고도 본다.

(이외에도 흐릿한 기억이 좀 더 있지만, 정확하지 못해 자료가 보강되면 다른 연재의 내용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총복습설’이라는 가설을 내놓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굉장히 긴 썰을 풀어보았다. A4 한두 장이면 끝날 줄 알았더니 이런 방대한 내용이 되어버릴 줄이야.... 장마비가 오는 건지 안 오는 건지 애매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심심파적으로 시작한 글을 마무리하니 벌써 동이 텄다. 그러나 아직도 <지옥의 외인부대>와 관련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것들을 풀어내지 못한 게 많다. 또 언젠가 <슬기로운 덕후생활> 코너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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