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김장은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을 대비한 것인데요. 최근 들어 김장문화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먼저 김장하는 양이 줄었어요. 수백 포기에서 몇 십 포기로 줄거나 혹은 아예 담그지 않는 집도 늘고 있습니다. 풍부해진 먹거리로 김치 소비량은 줄었고 한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사실상 김장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죠. 그래도 김장은 세시풍속이라 아직도 일부러라도 담는 가정이 많습니다. 오늘은 김장의 고현학입니다.
1. 김치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김치는 재료, 만드는 시기, 담그는 방법 등에 따라서 250여 종이나 됩니다. 그 중에서도 담그는 방법에 따라 다시 또 세세하게 나누면 무려 1천여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김치는 배추를 이용한 배추김치로, 양념에 따라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담그는 백김치도 있습니다. 무로 담근 김치 중 가장 많이 먹는 것은 깍둑썰기로 만드는 깍두기와 나박나박 썰어 담그는 나박김치, 통으로 담그는 동치미가 있습니다. 여름을 대표하는 오이소박이와 파김치도 많이 먹는 김치입니다.
흔히 들어 보지 못한 독특한 김치들도 많습니다. 텃밭에서 키우는 상추, 쑥갓, 가지, 미나리, 깻잎, 고구마 줄기, 콩잎 같은 다양한 채소도 김치로 담는 곳도 있고,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들빼기, 민들레, 돌나물, 도라지로도 김치를 담가 먹습니다.
지역에 따라 구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해 김치를 담그는데, 해산물이 흔한 제주도나 전라남도 완도에서는 내륙에서는 보기 힘든 전복으로 김치를 담고, 콩나물콩이 많이 나는 전주 지역에서는 콩나물로 물김치를 담기도 합니다.
2. 최근 SNS에서 샤인머스캣 김치도 봤는데...
달콤한 과일로도 김치를 담글 수 있는 데요, 과일로 담근 김치는 달고 향이 좋으며 색도 곱습니다. 사과와 배로 만든 깍두기를 비롯해 참외 김치, 수박껍질김치, 토마토 김치, 복숭아 김치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새로운 채소를 보면 일단 김치로 담가 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김치로 담글 수 있는 채소는 무궁무진해서 콜라비나 루콜라 같이 해외에서 들어온 새로운 채소를 활용하여 김치를 담기도 합니다. 세계의 모든 농산물이 김치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셈이라 김치의 가짓수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것 같습니다.
3. 지역마다 가정마다 김치 맛이 다른데 그 이유는?
김치는 지역과 기후에 맞게 발전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어떤 젓갈을 넣는지, 어떤 특별 재료를 쓰는지, 양념소를 얼마나 넣는지 다릅니다. 각 가정마다의 맛이 다른 건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손맛이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죠.
서울은 궁중 음식과 양반가 음식의 영향을 받아 정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김치가 발달했고, 경기도는 서해안의 해산물과 평야지대와 산에서 나는 재료들이 혼합되었습니다. 총각김치와 개성의 보쌈김치가 유명합니다.
충청도는 내륙이냐 해안이냐에 따라 김치 맛이 다른데, 예전에는 강과 바다를 이용한 수상 교통을 통해 물류가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수상 교통의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은 별다른 양념 없이 무나 배추에 소금과 고추씨 정도만 넣은, 양념의 비율이 적은 담백한 김치를 담았습니다.
경상도는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동해안의 해산물이 산을 넘어오기 어려웠고, 기온이 높다보니 부패 방지를 위해 소금과 젓갈, 고춧가루를 듬뿍 넣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맵고 짠맛이 강한 김치가 만들어졌습니다.
전라도는 먹거리가 풍성해서 음식 문화가 다양하게 발전해 왔는데요, 곡창지대를 끼고 있다 보니 쌀을 활용해 김치에 찹쌀풀을 넣었고, 따뜻한 날씨로 인해 양념을 많이 씁니다. 경상도 김치처럼 맵고 짜지만, 찹쌀풀의 단맛이 더해지면서 감칠맛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제주도는 김장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사계절 내내 푸른 채소를 구하기 쉬워 굳이 김치를 오래 저장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주 김치는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고 국물이 흥건한 특징이 있습니다.
강원도의 김치는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영서와 영동 지역이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산간 마을이 주를 이루는 영서 지역에서는 더덕, 질경이처럼 산에서 나는 채소나 나물로 소박한 김치를 담갔고, 해산물이 풍부한 영동 지역에서는 명태, 대구, 오징어 등이 들어갑니다.
남부지방과 다른 점은 강원도는 젓갈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기에 생물을 넣었는데요, 김치가 익으면서 생선뼈가 삭아들어가 시간이 흐를수록 감칠맛이 깊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명태, 대구는 다른 음식에 사용되지 않는 아가미와 내장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버려지는 부분을 활용한 삶의 지혜가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3. 김장 무를 활용한 깍두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궁중음식이었다고?
깍두기는 정조대왕의 딸 숙선옹주가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설에는 부왕인 정조에게 바쳤던 깍두기가 민간에 퍼졌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는 오라버니인 순조 임금에게 바쳤다는 설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역사 시간을 통해 순조 때부터 100년간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죠? 실제로 순조는 외척 세력 때문에 정치가 힘들어 위장이 안 좋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염려한 숙선옹주가 위장에 좋은 무를 재료로 김치를 담근 겁니다.
이후 궁중 종친회 때 이 김치를 내놓아 호평을 받았는데, 당시 종친 중 어르신이 숙선옹주에게 요리방법을 물었더니 “요리하다 남은 무를 깍둑깍둑 썰어 버무렸더니 맛이 있어 이번에 내놓게 되었습니다”고 해 깍두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깍두기를 한자로 음차해 ‘각독기(刻毒氣)’라 했는데, 각독기란 ‘벗길 각(刻)’에 독기(毒氣))를 붙여 ‘독기를 없앤다’라는 뜻입니다. 이 종친회에서 깍두기를 맛본 신하가 고향인 충청남도 공주로 낙향해 똑같이 만들어 먹은 후 민간에 널리 퍼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4. 총각김치? 알타리김치? 달랑무김치? 뭐가 표준어지?
뿌리채소인 무의 일종으로 총각무, 알타리무, 달랑무 모두 같은 식물을 부르는 말입니다. 채소의 형상을 보고 아래쪽이 달랑거린다고 본 사람은 달랑무, 알같은게 달려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달랑무라고 부르다 이름이 붙여진 거 같은데요. 총각무는 좀 다릅니다.
보통 ‘총각’이라 하면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뜻한다고 알고 있는데, 이 표현은 한자어 ‘총각(總角)’에서 나온 겁니다. 한자어를 풀이하면 ‘합할(묶을) 총(總)’, ‘뿔 각(角)’으로 상투를 틀지 않고 양쪽으로 머리를 묶어 뿔처럼 솟은 헤어스타일을 의미하는 걸로, 상투를 틀지 않은 남자 아이를 말하는 겁니다. 중국의 옛날을 묘사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오는 어린이들의 머리모양을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이 머리모양과 닮은 무라는 뜻에서 총각무라고 불렀던 거죠.
5. 변화된 김장문화
시대가 변화며 김장문화도 많이 바뀌었는데요. 옛날인 김장 품앗이 문화가 있었는데 이게 많이 사라졌습니다. 일손이 많이 필요했던 건, 김장을 담그려면 대량의 배추를 사서 가져와야 하고, 씻고, 다듬고, 절인 다음, 다시 씻고 물기를 빼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기에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 김장이 끝났으니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죠.
지금은 절임 배추, 김장 양념 등을 농산물을 직거래로 구입할 수 있어 김장이 많이 간편해졌습니다. 절임 배추와 양념의 판매로 농가는 추가 소득을 올리고 가정은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3~4개월의 기나긴 겨울 내내 김치를 신선하게 저장하기 위한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요. 예전엔 김장독을 묻는 풍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보급돼 김장독을 묻을 일도 사라졌습니다. 사실 김치냉장고 못징낳게 김장독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발명품인데요. 옹기로 된 김칫독은 통풍이 잘 돼 적당한 습도로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었구요. 이 김장독을 파묻으면 땅속 흙의 보온효과로 인해 한겨울의 추위를 막아주면서 김치의 신선도를 적절히 유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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