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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군복무자를 지킨다는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

“왜 민간전문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았는가?”(7)

김형중 기자 승인 2019.02.01 20:18 의견 0

지난 6편에서는 서울 1.4배 면적에 병원 하나 꼴인 군 의료실태와 군의관만으로 응급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군 의료인력의 필요성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이찬호 병장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찬호 병장에 따르면 “폭발사고가 발생한 자주포에서 자력으로 탈출했지만 응급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탈출 후에도 훈련장 바닥 땡볕 아래 방치돼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찬호 병장 이야기를 빌자면 당시 화상환자에게 나타나는 잦은 응급 상황인 ‘연기 흡입 손상’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 호흡보조기를 이용해 호흡보조처치술을 실습하고 있는 미해군 전투의무병의 모습 ⓒ유튜브 캡쳐

화재 사고로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는 크게 3가지로 현장의 화염에 휩쓸리며 생긴 화상, 화상을 입은 뒤 감염이나 쇼크 등으로 인한 사망, 흡입 화상에 의한 호흡기 손상으로 인한 사망(‘연기 흡입 손상’)이 있습니다.

이중 가장 사망률이 높은 경우가 ‘연기 흡입 손상’입니다. 이는 화재로 발생한 뜨거운 연기를 들이마신 후 기도의 점막에 화상을 입어서인데, 화상을 입은 점막이 부어오르며 기도가 막히거나 폐가 손상되어 호흡 곤란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기 흡입 손상’은 화상 사고 현장에서 즉시 처치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특히 처치 과정에서 고농도 산소를 투여하고 호흡보조를 하는 것은 생존률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찬호 병장이 복무했던 K-9 자주포 부대처럼 높은 살상능력의 무기를 사용하는 부대, 좁은 공간에서 폭발성, 인화성 물질을 취급하는 일이 잦은 부대라면 훈련 중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초동조치를 해줄 수 있는 의료지원인력이 대기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다행한 것은 ‘연기 흡입 손상’의 호흡보조는 군의관이 아니더라도 응급구조사 자격에 준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처치입니다. 미군의 경우, 전투의무병에게 ‘연기 흡입 손상’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 미 해병대는 전투의무명을 분대마다 배치하고 있다. ⓒ 영화 <블랙호크다운> 중에서

위급한 상황일수록 화상이나 총상을 입은 사람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기초적인 수준에서 환자의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합니다. 바꿔 말해 굳이 모든 훈련현장에 군의관이나 의무부사관에 해당하는 의료인력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따라 지금처럼 해당 의료 인력이 군 병원이나 사단 의무대에 소속되어 있다가 훈련부대의 일정에 맞춰 파견되는 방식이 아니라 전투부대의 부대원으로 소속되어 함께 생활하며 유사시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사고 직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응급조치가 현장에서 이루어진 다음, 환자상태 평가를 통해 후속 의무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사망의 위험에 노출된 장병들의 생명을 구하고 부상 후 회복과 사회복귀율을 현저히 높일 수 있습니다.

이찬호 병장의 응급상황과 같이 “기다리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군 응급의료체계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개선된다는 것입니다.

미 해병대가 가장 좋은 사례를 보여줍니다. 10명이 되지 않는 분대 전투원 중에도 응급조치가 가능한 의무병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투 상황 속에서도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훈련된 건 물론입니다.

우리 군의 경우 의무대에 소속된 군의관과 의무부사관, 의무병만 의료행위와 응급처치를 맡기고 있습니다. 이는 실전적 전투부대에는 맞지 않는 배치이자 편제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응급처치 교육을 이수한 인력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라도 하루 속히 응급의료 소요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현장에 함께하는 ‘전투의무지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민간 의사의 진료장면 ⓒ 국군 의무사령부 홈페이지

현실적으로 1차(사단급 의무대)에서 2, 3차(군병원 및 수도병원)에 이르는 의료전달체계가 군 전체의 질적, 양적 의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8년 7월 17일 마린온 추락 사고는 군병원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마린온이 추락한 지점에 인접해 있는 해군포항병원에서 부상자를 치료할 수 없어 울산대 병원으로 이송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군 의료체계가 군 의료수요 전체를 감당할 수는 없다는 현실이 다각도에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현역 병사들을 위한 건강보험 가입이 이루어졌습니다. 2018년 7월에는 무자격 의무병의 의료보조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전문 의료인력을 증원하는 한편, 야간 및 휴무일의 의료 인력이 부족한 7개 군 병원에 대해서는 민간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19년부터 시범 운영되는 ‘병사들의 평일 일과 후 외출’을 이용해 외래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2019년 공사완료, 2020년 개원 예정인 국군외상센터 조감도 ⓒ 국방부 제공

이를 위해 10여 개의 군 병원을 통합해 수 개의 광역 병원으로 변경해 ‘군에 빈발하는 각종 재해와 질병’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고, 일반 진료의 경우에는 민-군 의료 협조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이 일반 진료만 가능한 중소병원 수준의 군병원을 10여개 운용하는 것보다 화상과 외상(총상) 등 전투나 훈련 시 발생하는 손상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진료과목을 전문화하고 간호장교 등 군 의료인력 상당수를 야전 부대에 배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민간의 의료 능력이 매우 높은 수준이고 의무헬기 등을 통해 신속하게 환자 이송이 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진료 수준의 군진 의료를 위해 현재의 의무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민간에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화상과 중증 외상 분야를 군이 전문화하고 거꾸로 이러한 능력을 민간에 공유함으로써 평시에도 국가 수준의 응급의료에 기여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입니다.

▲ 군 응급환자 지원업무 훈령 내용 ⓒ 국군 의무사령부 홈페이지

또한 국군 의무사령부가 지정한 ‘민간진료협약병원’을 주기적으로 재검토하고 재지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전국에 66개나 산재해 있지만 앞서 열거한 군 관련 사고 중 ‘민간진료협약병원’에서 치료가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아주대 병원과 부산대 병원의 사례 외에는 없으며 오히려 응급환자가 협약되지 않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주도에는 군 협약 병원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2014년 대조영함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송됐던 제주한라병원은 의무사령부의 ‘민간진료협약병원’이 아니었습니다. 제주에는 대양해군의 발판인 강정해군기지와 여단급 해병부대 및 다양한 목적의 육해공 부대가 주둔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시로 각종 훈련과 작전이 실시되고 있는데, 이런 지역에 ‘민간진료협약병원’ 하나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군은 본질적으로 적지 않은 위험에 노출돼 있고, 이러한 위험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특수한 집단입니다. “조국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한 국민이 “국가 역시 나를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2012년 제정된 ‘군 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국가는 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