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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_이야기(35)] 조선 멸망의 촉발제가 된 경복궁 중건

이동진 선생님에게 듣는 경복궁 이야기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2.26 12:56 의견 0

☞이동진: 경복궁은 조선이 건국된 이후로 조선의 정궁으로 조선왕조 500년의 흥망성쇠를 함께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이후 오랜 시간 방치된 경복궁을 무리하게 중건하죠.

경복궁 중건을 시도한 것 자체가 왕조의 불행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은 아닙니다. 경복궁 중건이 조선역사의 멸망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죠. 경복궁 중건으로 인해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입지가 변화하고, 이런 역사적 흐름들이 조선 역사의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니까요.

흥선대원군이 추진한 내정 관련 정책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둡니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으로 실각하게 됩니다. 경복궁 중건에는 많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과 노역이 부과되었죠. 이 원망은 후에 대원군의 하야로 연결됩니다.

▲ 경복궁 전경의 모습 ⓒ문화재청

☞이동진:만약에 대원군이 계속 집권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고종이 왕위에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를 통해서 새롭게 즉위하지 않는 이상 왕이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다른 정치세력과 연합해 계속해서 왕위에 집권했다면 아마 고종과 민씨 척족의 부정부패처럼 백성들을 착취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국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권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죠. 실제적인 민생안정 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들, 며느리와 권력 투쟁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죠. 이런 정치적인 권력 다툼에 경복궁 중건이라는 거대한 토목사업이 발생하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본인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이 사업 만큼은 완성해야한다는 집념으로 토목공사를 추진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사대부와 백성의 지지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는 흥선대원군의 실각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패망으로 흘러갑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씨왕조의 멸망은 그냥 역사적 흐름으로 봤을 땐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 ⓒ 문화재청


☞이동진: 올해 2019년으로 경복궁 중건 151주년이 되었습니다. 186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어를 하면서 경복궁은 다시 28년간 정궁이 됩니다. 고종은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겪은 뒤 1890년에 고종은 러시아 공사에 몸을 맡깁니다. 1년 만에 고종은 궁궐로 돌아오지만 돌아온 궁궐은 지금의 덕수궁, 당시의 경운궁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궁으로 쓰인 건물은 경복궁이 아니라 덕수궁이죠. 마지막 황제인 순종조차도 죽기 전까지 창덕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경복궁은 중건 이후 딱 28년간만 궁궐로서 역할을 했고 이후 빈 궁궐로 남아있게 되죠. 일제 강점기에는 건물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조선왕조의 멸망과 경복궁의 쇄락이 같이 역사 속에서 같이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겠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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