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민_이야기(35)] 물류업에 뛰어들다(上)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5.06 09:30 의견 0

물류는 무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단 바이어와 셀러가 정해지고 나면 그 이후는 거의 대부분 물류와 관련된 것이다. 어느 한쪽이 직접 운송을 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찾아야 하는데, 이게 바로 DHL이나 UPS처럼 다국적 공룡기업부터 소규모 구멍가게 포워딩업체까지 수많은 회사들이 서로 따내려고 경쟁하는 산업이다.

상사를 다니며 배웠던 기본적 업무와 대동소이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상사는 셀러나 바이어를 대신하는 리스크를 짊어지고 물류까지 해결하는 반면 포워딩은 말 그대로 forwarding, 즉 바이어나 셀러로부터 물류 의뢰를 받아 화물만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 간단히 말해 포워딩이라는 일은 개인이삿짐이 아닌 회사의 짐을 날라주는 것이다.

말은 간단한데 막상 일을 해보면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다. 화물이 항상 나르기 좋게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고 반도체 장비처럼 어떤 화물은 온도나 습기에도 민감하며 어떤 건 폭발하고 어떤 건 수출입 제한이나 금지된 경우도 있어 주의해야 할 일이 종종 있다.

기본적으로는 셀러의 공장에서 물건을 픽업한 뒤 공항이나 항구까지 운송한다. 비행기나 선박 등 캐리어에 선적, 수출한 뒤 수입국의 항구나 공항에 도착 후 최종 목적지인 바이어의 공장까지 배달해주는 게 포워딩이 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수출·입신고와 통관이 얽혀있는데 내가 지원했던 회사는 물류와 통관을 같이 하고 있었다.

내가 지원한 시카고 지점은 지점장님을 포함해 5명 밖에 안 되는 구멍가게 규모의 사무실이었다. 원래 포워딩이란 게 사람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고 다만 각 지역 허브마다 사무실과 창고는 필수다. 본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고 삼성전자 화물을 주로 다뤘으며 직원도 수십 명 정도 되니 한국계 포워딩 치고는 꽤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돈도 돈이지만 일단 지긋지긋한 한인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포워딩 회사도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완전 미국식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신문사처럼 불합리한 업무 강도를 요구하진 않았다. 또 사무실 안에서만 한국 사람들끼리 있지 업무 중 많은 부분이 다른 미국 회사들과 연결돼 있어 현지 사회 적응하기에도 좋았다.

나 같이 늦게 외국으로 이민온 경우 학교에서 빡세게 재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현지의 언어나 관습 등을 익히기 어렵다. 신문사에서 2년 넘게 있으면서 거의 대부분 취재원이 커뮤니티 안 영감님 아줌마들이었던 관계로 영어도 별로 늘지 않고 답답함만 늘던 차였다.

사무실에는 지점장님 외에 1.5세 아줌마 둘과 아저씨 하나, 그리고 내가 새로 들어오게 됐다. 아줌마 둘은 통관만 담당했고 나는 수출입 포워딩 업무를 보던 아저씨의 보조로 채용된 것이다. 이 아재가 군대에서의 사수격으로 포워딩 실무의 기초를 가르쳐줬다. 아줌마 중 하나가 좀 까탈스러워서 피곤하긴 했는데 그럭저럭 별문제없이 지낼만 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