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와 사진의 관계를 언급한 화가 위젠느 들라크르아(Eugene Delacroix)의 “오늘 이후 회화는 죽었다.”라는 표현은 그 당시 사진술이 세상에 공표된 후 미술계의 솔직한 반응이었다. 전적으로 그의 선언은 화가, 예술가들에게 사진술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 HotelLobby, 1943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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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진술의 등장은 화가들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관념적인 응시의 변화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이와 상반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1859년 살롱(Salon)에서 밝힌 사진의 본질에 관한 “예술적 리얼리즘을 가시적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정신적 세계의 상상, 꿈, 환상의 재현으로 보았다. 그리고 사진은 산업생산물이므로 인간의 상상력이 결여된 순수예술영역의 범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평은 사진술을 부정하기보다 미래에 사진술이 급부상할 것에 대한 기대와 우려감의 표현이라고 보인다.
당대의 많은 예술가, 화가, 비평가들은 사진술이 이상적이고, 대상의 외양을 사실적으로 모사(copy)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틀림이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그것의 이미지에 몰입하게 됐다. 그러나 이미 카메라 옵스큐라 이전 화가들이 광학적인 거울을 이용해 대상을 그렸다는 주장, 즉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그의 저서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에서 밝힌 “이미 15세기 초부터 서양의 많은 화가들이 광학-거울과 렌즈(혹은 양자의 결합)-을 이용하여 생생한 투영법을 구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학설은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 Nighthawks, 1942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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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다게레오 타입(Daguerre Type) 사진술의 발명 이전에 사용된 카메라 옵스큐라와 카메라 루시다는 화가들이 대상의 외양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고안한 보조기구로서 미술사에 있어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원근법의 산물, 즉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확한 현실 재현을 위해 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미술과 사진은 서로 다른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이미지의 재현과 표현을 위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곧 사진이 독자적인 이미지 재현을 내세우며, 타 매체와의 차별성을 주장하면서 실제적으로 예술 전체의 흐름에 편승하거나 혹은 앞서가는 매체의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 사실주의 회화의 대가인 로버트 헨리(Robert Henri)의 지도를 받은 ‘미국적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그림은 후대의 수많은 화가, 사진가, 영화제작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호퍼의 그림은 미국의 욕망, 슬픔, 아름다움 등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호퍼가 평생 그렸던 각각의 이미지들을 조합하면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림 속에 재현된 다양한 인물들의 이미지에서 산업사회에서 현대인이 겪는 외로움과 고독을 엿볼 수 있다.
▲ Rear Window, Poster,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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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뉴욕 주의 나이액(Nyack)에서 출생한 호퍼는 1913년 뉴욕의 아모리 쇼(Armory Show)에서 미국 예술가, 유럽의 모더니스트들과 전시를 가졌으며, 37세 되던 해에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Whitney Studio Club)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호퍼는 식당, 바, 주유소, 모텔, 호텔, 사무실의 실내, 극장 등 다양한 뉴욕의 도시에 갇힌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포착하였다.
그의 부인 조(Joe)를 포함해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매우 경직된 자세로 무표정하며 외부와 고립된 채 관객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호퍼의 그림 속 도시는 움직임이 없고, 복잡한 군중도 없으며 실내는 매우 고요하다. 모델들은 산업화된 도시의 시멘트벽에 갇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또한 커튼과 창문은 항상 열려 있고 따사로운 정오의 강한 햇살이 실내를 비추고 있으며, 때때로 그 실내 환경에 갇힌 도시의 여인들은 옷을 걸치지 않은 상태로 노출된다. 따라서 그들의 노출은 그들만이 지닌 도시인의 고독이 아니라 누군가가 엿볼 수 있는 고독이다. 호퍼는 각 모델의 특별한 표정이나 개성을 무시한 채 그렸으며, 그들은 호퍼 자신이 느끼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용된 영화 속의 배우와도 같다.
예를 들어, 1942년 작품 『Nighthawk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모두 꺼진 정적이 흐르는 한밤에 길모퉁이에 위치한 카페의 따뜻한 불빛의 반영이 길거리를 환히 비추고 있다. 늦은 밤 카페에는 도시의 남녀 한 쌍과 등을 보인 한 남자가 앉아 있으며, 그들을 서빙하는 남자가 있다. 그들은 서로 아무 관계없이 카페의 유리 내부에 갇혀 각자의 고독을 씹고 있다. 이 그림에서 호퍼의 시선은 행인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카페의 내부를 슬쩍 훔쳐보는 듯한 시선이다. 카페의 도시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의 주체를 모르고 있는 것처럼 묘사돼,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고독과 대화에 시선을 고정 시키고 만든다.
이런 시점을 통해 아이디어를 떠올린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은 『이창』(Rear Window, 1954)에서 주인공인 사진작가 제프리를 다리가 부러져 휠체어에 앉아서 창문을 통해 맞은편 아파트를 엿보는 고독한 탐닉의 관찰자로 설정하였으며, 우리는 다시 그 장면을 훔쳐보는 관람객이 됐다.『이창』에서 훔쳐보는 히치콕의 시선은 바로 호퍼의 다양한 그림들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문을 통해서 노출되는 뉴욕 중산층의 일상적인 삶을 주의 깊게 훔쳐보는 남자(호퍼)의 시선이자 그 장면에 눈을 뗄 수 없는 관객들의 시선이다.
▲ Night Windows, 1928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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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인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Untitled Film Still』에서 보여준 흑백의 사진들은 할리우드 B급 영화 이미지를 차용했지만, 자신을 모델로 표현했던 도시의 여인이 겪는 고독과 우울함, 나르시시즘적인 이미지는 호퍼 그림의 영향을 받았다. 실내, 창가, 길거리 등 셔먼이 지나치며 머무는 곳에는 또 다른 셔먼이 존재하고 있다.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도시는 호퍼의 도시를 연상케 하며, 현대 문명에서 소외된 나약한 여인으로서 셔먼 자신이 위치하고 있다. 셔먼의 표정은 호퍼가 생략된 채, 모델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과는 달리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문명에 적응치 못한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셔먼은 자신을 사진이미지의 피사체로 그리고 엿보임을 당하는 그녀 자신이라는 이분법을 구사하며 셀프이미지를 제작하였다.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사진가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은 농담으로 호퍼를 가장 위대한 사진가 중에 한 사람으로 여길 정도로 그의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미국 중산층의 삶을 기초로 영화적인 수법을 구사하는 크루드슨의 사진은 종종 ‘Staged Photography’로 정의된다.크루드슨이『Twilight』시리즈에서 보여준 사진 이미지들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한 화면에 포착한 듯, 인공광의 아름다운 색을 재현해 할리우드의 판타지 영화처럼 보인다. 크루드슨의 사진에서 실내는 호퍼처럼 창문과 문이 열려 있으며, 설치된 인공광과 어우러진 실내의 조명은 초현실적이며, 모델은 얼어붙은 상태로 무표정하게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크루드슨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사진이미지의 특징인 이야기 구조의 사진을 작업하는 선두주자 중 한 사람이다.
▲ Women, 1992~97 ⓒ사진작가 정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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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개념 예술가 빅터 버긴(Victor Burgin)은 80년대 중반에 호퍼의 그림 이미지를 패러디한 예술가로 유명하다. 버긴이 1985년부터 86년까지 선보인 사진-텍스트 이미지는 호퍼의 그림 일부를 그대로 차용해 이미지를 만들거나, 그래픽적인 색채와 도형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하였다. 버긴의 이미지들은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이 즐기는 기호학, 정신분석학,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있다. 거리사진에 오랫동안 심취한 버긴은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로버트 프랭크처럼 우연히 마주한 대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한 장의 이미지보다는 연속이미지로, 사이즈는 대형으로 프린트했으며, 사진과 텍스트와의 조화를 통해 이야기식 구조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비디오 이미지에 심취해 거리를 비디오로 촬영한 후 자신의 작품을 ‘Studies for Video’라 언급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모니터를 이용해 반복되는 영상을 보이면서, 비디오 영상을 다시 프린트하여 벽에 전시하는 형식이었다. 버긴의 영상 이미지들은 호퍼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호퍼의 그림을 닮아 있다. 그 영상과 사진은 빌딩의 창문을 통해 실내가 비춰지며, 그 안에 갇힌 대중들을 훔쳐보는 이미지이다.
▲ Walker Art Center, exhibition view, 2014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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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최초로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예술지원금을 수상한 필자의 사진, 『Woman, 1994-1997』시리즈도 호퍼의 그림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뉴욕 맨하탄에 도착해 스튜디오를 빌리면서 시작된 뉴욕생활에서는 가까이 이웃한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 초등학교 시절에 각인된 상황과 유사한 장면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에드워드 호퍼의 화집을 접한 필자는 곧바로 창을 통해 대상을 엿보는 시점의 사진 이미지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Woman』을 제작하게 됐다. 호퍼의 색채와 모델들의 포즈를 연구했고, 더 나아가 실내 공간과 모델들의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사진들은 의식적인 성인 관찰자의 시점이 분명하지만, 유년시절에 보았던 고독한 탐닉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호퍼의 영향으로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숨겨진 텅스텐 조명의 인공광이 어우러진 색감을 연출했다. 더불어 모델로 하여금 최대한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분을 포착하려 했다. 지금은 유년시절의 기억보다 호퍼의 화집을 통해 본 도시와 도시 군중의 이미지가 더 생생하게 각인되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 Office Night #6, 1985~86 ⓒVictor Bu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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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새우는 사진가, 메리 앨펀(Merry Alpern)은 『Dirty Window, 1993~94』시리즈를 발표했다. 앨펀은 뉴욕 ‘Wall Street’에 위치한 섹스 클럽의 작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매춘의 현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에서 주인공 제프리가 맞은편 아파트를 카메라로 훔쳐보듯이, 망원렌즈를 이용한 그녀의 사진은 예술과 관음증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매춘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녀의 사진은 남성이 돈을 지불하고 여성의 성을 매매하는 바로 그 현장을 엿보는 시점이다.
▲ Office at Night, 1940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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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라는 필터를 통해 매춘의 현장을 관찰하는 그녀의 시선은 뉴욕의 겨울만큼이나 씁쓸해 보인다. 사진사에서 이와 유사한 작업을 한 작가가 있었다. 파리의 사진가 브랏사이(Brassai)는 『The Secret Paris of The 30’s』라는 사진집에서 파리 뒷골목 매춘부의 초상과 매춘의 현장을 고발했다. 브랏사이의 카메라가 매춘의 현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면, 앨펀의 카메라는 현장에 개입하기보다는 멀리 떨어져서 ‘창’이라는 안전장치를 이용해 남성과 매춘부들의 사회적 행위를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미술과 사진, 영화와 사진, 미술과 영상 등 매체들은 지금 경계가 없다. 더욱이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예술은 각각의 영역을 상호 보완하는 유기적인 관계로 지금의 시대를 비평하고 있다. 예술의 역사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지만 이미 과거에 시각적으로 재현된 예술의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 관점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페인팅에 드러난 도시와 인물들의 이미지는 새로운 디지털-미디어 시대를 맞아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다시 탄생되는 셈이다.
▲ The Secret Paris of the 30's, Brassai,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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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정영혁>
뉴욕시각예술대학교 사진미디어 대학원(School of Visual Arts, MFA)
동양인 최초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예술 지원금 수상
강남피플(인터뷰 다큐멘터리 매거진) 발행인
한국콘텐츠생산연구소장(KCPL)
1인1미디어 시대 퍼스널 콘텐츠 브랜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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