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파크] 26년 - "전두환 씨 집에 총알이 박히는 쾌감"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5.27 22:25 의견 0

영화 <26년>은 만화가 강풀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유족들이 당시 진압의 책임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한다는, 대단히 파격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죠.

아마 적지않은 이들이 이 영화의 개봉 소식에 무척이나 감격했을 겁니다. <26년>은 ‘그.냥.영.화.’가 아니니까요.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 (네이버 영화)

민감한 소재 탓에, 제작 과정이 무척이나 고단했다고 전해집니다.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이 촬영을 열흘 앞두고 자금을 회수하는 일도 있었다지요. 그러나 외압으로 인해 제작이 지연되면 될수록, 영화의 완성이 주는 상징성은 더욱 짙어져 갔습니다. 결국 영화는 대기업의 자본 대신 소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뜻을 함께하는 이들의 저항정신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던 때는 MB정권 말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다 못해, 아예 ”표현의 자유란 게 있었나“ 싶기까지 했던 때였습니다. “전두환을 죽이고 싶다'는 영화의 외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개봉 당일인 11월 29일에 이 작품을 보았는데요, 보면서도 얼떨떨하더군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5.18의 비극 (네이버 영화)

십시일반 힘을 모아 제작비를 마련하긴 했으나, 원작의 액션을 그대로 옮기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한편, 영화의 ‘작품 외적인 의의’들을 챙기느라 작품성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한 관객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또한 강풀의 원작을 형편없이 각색한 상업 영화들을 이미 몇 편이나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치 선전물' 우려 딛고 완성된 '잘 빠진 상업 오락영화'

특히 '정치적 의도'와 '예술적 성취'가 양립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다행히도 영화 <26년>은 잘 만든 하나의 상업 영화로 완성이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재를 다루는 영화의 태도와 어조가 인상 깊었습니다. 보통 실존 인물이나 기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들은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기 마련입니다. 조금만 흥분해도 정치 선전물처럼 보일 위험이 있으니까요. <26년> 역시 그러리라 예상했습니다. 적어도 강풀의 원작만큼 ‘갈 데까지 가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을 했죠. 매체마다 수위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생존하는 정치적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순탄치 않은 제작과정을 겪었다. (네이버 영화)

그런데 아니더군요. 영화는 끝까지 갑니다. 전두환에 대한 분노, 그 분노로 인해 삶이 망가진 이들을 향한 연민, 피해자 유족들의 상실감과 무력감 등 전두환과 5·18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겪었을(혹은 아직도 겪고 있을) 감정들을 몹시 격앙된 상태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대신, 폭발한 감정들이 과잉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영화적 장치를 하나 마련했으니, 그것이 바로 도입부의 애니메이션입니다.

도입부 애니메이션, 영리했다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날’의 처참한 광경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줍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머리에 총을 맞는 어머니, 남동생의 손을 붙들고 뛰다 복부에 진압군의 총을 맞고 내장을 쏟아내는 여학생, 개머리판으로 민간인을 찍어 죽이다 급기야 정신을 놓아버리는 진압군까지...

강풀의 웹툰 중 한 장면 (네이버 영화)

<26년>은 실사로 표현했다면 그 잔혹함에 압도돼 몰입도가 오히려 떨어졌을 영상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완충하여 보여줌으로서, 극중 주인공들의 심리적 외상을 관객에게 효율적으로 이식하는 데 성공합니다.

일각에선 "역사적 사실을 묘사하면서 시각적인 충격만 너무 늘어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이는 ‘시민들이 겪은 시각적 충격’ 역시 ‘역사적 사실’이란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실제’는 영화보다 더 잔혹했다는 사실 역시 넘겨서는 안 되고요.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날’을 몸소 느낀 관객들은 후에 등장인물들이 극도로 흥분하거나 울부짖어도 그 과잉을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뚫어 액션을 보여주는 건달 '곽진배'역의 진구 (네이버 영화)

도입부 애니메이션의 효과는 또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외상을 관객들이 다 아는 상태로 출발을 하니, 인물 소개를 위한 시간이 절약되면서 극에 자연스러운 속도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암살 기도에 대한 윤리적 논쟁도 해소됩니다. 이들에게 전두환은 그냥 괴물이고, 이들이 그를 괴물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런 일인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시작하니까요. 극중 인물 ‘진배’의 대사를 빌리자면, 이들에게 암살은 ”후딱 해치울 일“인 겁니다.

팩트와 픽션의 조화: 액션물로서도 합격점

결국 윤리 빼고 논쟁 빼고, 남는 것은 영화적인 쾌감입니다. 영화는 부패권력에 대한 비난이나 전두환 옹호론에 대한 반론도 제기하지만, "괴물 잡으러 떠나는 용감한 전사들의 모험담"이라는 플롯에 더 가깝습니다. 이는 각색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전두환과 다른 영화에 나오는 괴물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죠.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인물입니다. 생각 같아서야 범죄자 전두환에게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무작정 내달리기엔 극의 사실성에 문제가 생기죠.

사격선수 '심미진' 역의 한혜진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장면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 그 결과물이 아주 좋습니다.

물론 눈을 부릅뜨고 찾자면 논리에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성’이죠. 지금의 완성본은 적어도 관객들이 "저게 과연 말이 되는지" 일일이 고민하느라 전두환 사저에 총이 난사되는 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액션에 대한 이야기도 반드시 해 두고 싶습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등장인물의 수를 대폭 줄이고 광주 건달 ‘진배’와 사격선수 ‘미진’에게 비중을 실어주고 있는데, 두 배역의 싸움 방식이 완전히 반대인 점이 흥미롭습니다.

진배의 막무가내식 ‘뚫어’ 액션은 그야말로 호쾌합니다. 그리고 사격선수 미진이 선사하는 액션은 그 긴장감이 대단하지요. 진배와 미진이 힘을 합치는 마지막 장면의 호쾌함과 긴장감은 2012년 한국 영화에 나온 액션 장면 중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영화 <26년>의 개봉이 우리에게 남긴 것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원작자 강풀은 ‘<26년> 영화 개봉 기념 특별편’을 통해 웹툰 <26년>을 그리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주를 알리자. 알리기 위해서 오로지 재미있게 그리자.”

아마 영화의 의의도 이와 비슷하리라고 봅니다. 많은 이들이, 영화 <26년>이 ‘재밌게 나와 주길’ 염원한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였을 거고요.

완성도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5·18에 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큼은 이견이 없을 것 같군요. 비록 개봉 당시에도 26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대중들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잊지 않도록 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