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71주년 제헌절을 맞이했다. 제헌 당시에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더불어 정부의 수립, 국가의 정체성 규정이 중요한 과제였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헌법은 오늘날 국민 모두와 시민사회 속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존엄을 아로새겨주는 공통의 가치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지 <시사N라이프>는 이번 제헌절을 맞아 청소년들을 향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언급하고자 한다.
교육부는 지난 2018년 12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포용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성숙한 민주시민 양성을 위해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계획은 시민적 가치와 태도, 역량을 높이고 참여와 실천으로 확장하는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통해 자율·존중·연대를 실천하는 시민으로 학생을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 교육부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라 칭하고 있으나 이번 기사에서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강조하는 취지에서 ‘민주주의 시민교육’으로 용어를 통일했다.)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 시민교육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인교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의 초점은 ‘학생(청소년)’에만 맞춰져 있다. 교육부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미래를 책임질 다음 세대를 위한 방안이 추진되는 과정이 여전히 구태의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의 진보는 사회적 관습도 바꿀 수 있다. 다음 세대에는 직접 민주주의가 구현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지향점이 지금과 달라야 할 이유다. 시사N라이프 조연호 전문위원의 기고를 통해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학교 공간혁신을 통한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취지로 지난 4월 26일 광주 홀리에이인호텔에서 개최된 <공간수업 프로젝트 공동워크숍>이 열렸다. 위 사진은 공간수업 프로젝트 사례로 발표된 광주제석초등학교의 <꿈틀꿈틀 잼(JAM-e)터>의 모습 (교육부 제공)
◇교육계 이슈로 등장한 민주주의 시민교육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민주주의는 중장년 세대에게 중요한 가치였고, 때로는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 민주주의 지수로는 20위 수준이며, 인구 규모가 5천만 명 이상 국가를 대상으로 하면, 그 순위는 더 높아진다. 즉, 겉으로 보는 민주주의 수준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민주주의 시민교육이 이슈가 됐을까? 그리고 그 교육대상으로 청소년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간접 민주주의만 강조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견고하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선거 등으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있으며, 부정선거는 거의 근절된 상황이다. 종종 금권선거 등을 이유로 당선이 취소됐다는 보도가 있지만, 대체로 민주주의 선거 절차가 잘 준수되고 있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시민교육’이 부상한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현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한 민주주의제도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더 발전된 민주주의에 대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한계이고, 발전된 민주주의는 어떤 제도일까?
현대의 민주주의 제도는 간접 민주주의이다. 간접 민주주의는 영토, 국민이 늘어나서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서 실행한 제도다.
고대 그리스 시대 민주주의는 시민들 모두가 모여서(물론, 여성, 아이, 노예 등은 제외했다) 토론하고 의결했다. 의원과 같은 대표직조차도 윤번제로 정해 시민이라면 일생에 한두 번은 공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단, 당시 폴리스 규모는 수천 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근대 국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근대 민주주의는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정착했다. 이미 국가 규모가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커졌기에 모든 국민이 직접 자치를 실현할 방법이 없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간접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독재국가, 왕권 국가등에 비하면 국민권익을 실현하는 측면에서는 혁신적인 제도였고 발전한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간접 민주주의 체제도 혁명과 반혁명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정착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도 간접 민주주의 제도도 실현하지 못한 국가가 훨씬 많다. 간접 민주주의제도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불가능한 물리적인 상황에서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민주주의 현주소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한 시스템이 있다면 간접 민주주의를 직접 민주주의로 과감히 바꿔야만 한다.
대표적인 직접 민주주의 국가로 스위스를 꼽는다. 그런 스위스의 인구가 700만 명 수준이라는 점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각 도시의 인구로 따져보면 서울특별시를 제외하고는 스위스보다 큰 도시가 없다. 그런데도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본다면 인구와 범위가 넓어 실현하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단위인 기초자치단체에서 조차도 대의 민주주의 제도로 일관하는 부분은 분명 개선해야 할 점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어떤 개선방법이 있을까?
예를 들어 전자투표, 블록체인 등을 활용하면 지리적인 한계 등을 극복할 수 있다. 해킹 등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변화의 흐름을 제지할 수 있는데, 이는 기우(杞憂)다. 왜냐하면 한 번에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점진적으로 적용하며 시행착오의 폭을 최소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요도의 비중이 작은 선거나 투표부터 해나가며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직접 민주주의를 현실에 도입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왜 청소년이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대상인가?
우선 현재 기성세대들을 포기해서다. 기존의 관습과 관성이 몸에 밴 기성세대를 교육으로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다.
다음으로 차세대 민주주의를 이끌어 갈 시민은 현재의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며, 세대 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년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는 등 다양한 세대들이 혼재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민주주의 제도로 이들의 다양한 욕구와 바람을 담아내기 불가능하다. 물론, 개별 계층이 사회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더 발전한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과 결정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현 체제로는 청소년들의 다양성을 담기 힘들다.
구성원이 달라지면 제도도 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하는데, 새로운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교육,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 이번 세대는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면,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시민교육 방법은 잘 준비되고 있는가?
이미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인식하고, 그 해결책으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제시한 상태지만 방식은 여전히 고리타분하다. 민주주의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운용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시민교육에는 소양교육이라는 미명하의 이론적인 부분만 강조할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실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구태의연한 ‘책상물림’에 그치고 있다. 교육자와 정치학자들이 모여 청소년들을 분석한다고 해서 청소년들과 관련한 실제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이미 기성세대가 돼서 청소년들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청소년들을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해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공공입찰로 운영되는 민주주의 시민교육?
어떤 제도를 새롭게 수립한다고 할 때, 실질적인 운용 주체가 빠진 상태에서 제시된 해결책은 시럽없이 먹는 팬케이크와 다를 바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한다면 ‘민주주의 시민교육’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별로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애써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서로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이를 공공조달로 내어놓고 있고, 공공조달 응찰과 심사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종의 결탁 속에서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방법론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며, 결국 실효성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이와 같은 탁상공론은 그만하고 제대로 실천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전문가의 한계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들이 과거처럼 존중받기 힘든 시점이 올 것이다.
◇해결방법은 ‘집단지성’과 ‘통섭’에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육을 실행하기로 했다면, 현장에서의 분석이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의 보고자료나 논문 등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을 토대로 분석해야 한다. 물론, 비용도 더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탁자 위에 필기도구를 비치하고 회의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실제적이고 실용적이다. 현장을 모르면서 정책을 구상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직무유기(職務遺棄)가 아닐 수 없다.
팀 구성원에도 각 분야의 구성원으로 구성한 통섭팀을 조성해야 한다. 정치학, 교육학 등 인문·사회계열외에도 이·공학분야 전문가도 참여해 미래를 아우르는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반드시 청소년들을 비롯해 현직 교사, 학부모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집단지성’을 실천하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방도 개설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방법은 이론뿐만 아니라 실천방안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과정 속에 참여하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실천적인 직접민주주의 과정을 제안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론이 아니라 실행 성격이 더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과연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 같이 국가에 의존하거나 소수 전문가 집단만을 맹신한다면, 피를 흘려가며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퇴보할 가능성도 있다. 안타깝게도 일부를 제외한 청년과 청소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서다.
앞으로 더욱 발전된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방법은 ‘집단지성’에 달려 있다. 소수가 생각하고 결정한 방법이 아니라 다수가 고민하고 결정 단계에 참여하는 경험으로써 정치가 실현될 때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진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당연히 지금 청소년들이다.
[조연호 전문위원 / 청소년단체 아·청·IN 공동대표, 4차 산업혁명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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