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진의 의미와 가치

사진작가 정영혁 승인 2019.08.14 02:00 의견 0
친할머니 생일잔치를 향하는 가족들의 뒷모습  (사진: 정정원)

1973년 남이섬, 아버님이 촬영한 가족 앨범 중의 한 장의 사진이다. 친할머니 생일 잔치를 맞아 남이섬으로 나들이 나서는 할머니, 어머님, 큰 고모, 큰어머니의 뒷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버님이 뒤에서 같이 걸어가면서 촬영한 것 같다. 저 멀리 산세가 제법 디테일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조리개 F11 이상인 것 같으나 걸으면서 촬영했기에 여인네들 발걸음의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나는 아버님이 촬영한 가족 사진의 대부분을 내가 소유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님이 카메라를  지참하며 가족과 친지들의 일상을 기록하시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었다.
내 기억으로 접이식 카메라(브랜드 기억나지 않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야시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우 모던한 프레임으로 한 무리의 여인들과 저 멀리의 산세가 매우 리듬있게 재현되었다.

◇ 한 장의 사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나, 이 사진을 가지고 사진의 본질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모습 (사진: 정정원)

역시 같은 날 촬영된 어머니의 사진이다. 머리 두건, 반팔의 셔츠, 치마, 손에 쥔 가방 그리고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마치 탐정처럼 사진을 세세하게 바라본다.

그 당시 인화된 톤으로 보아 어머니의 얼굴이 약간 그을려 보인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얼굴 톤이 밝은 편이다) 아버님이 무슨 멘트를 했는지 아니면 통산적으로 이쁘게 나오려는 심리때문인지 어머니는 활짝 웃고 계신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영화 <Blow up>이 연상된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Blow up> 1966 

산책길에서 우연히 중년의 남녀를 촬영한 사진작가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blow up. 진실의 정의를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그리고 있는 수준높은 영화다.

◇ 사진작가는 현장의 목격자이자 촬영을 통해 현장의 기록자가 되는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나로 하여금 신미인도 프로젝트에 결정적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 신미인도 프로젝트는 외형의 동양과 서양의 콘텐츠가 함께 존재하는 이미지다. 

농사짓는 가족들 (사진: 정정원)

이 사진을 통해 할아버지, 어머니, 작은 고모가 밭 농사일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뒷면에 1954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 낮은 시점으로 보아 아버님이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촬영했을 것이다. 특별한 왜곡이 없는 것으로 보아 표준렌즈로 촬영된 듯하다. 내 기억에 렌즈를 교체하는 것을 보질 못해 50mm 한가지로 모든 촬영을 했었을 것이다. (물론 이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가족 앨범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버님의 촬영 태도를 알 수 있다.)

역시 고모, 어머니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다. 나들이 때도 일할 때도 두건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무슨 반공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것이 무엇을 보여주건간에, 그리고 그 방식이 어떤 것이건간에, 한 장의 사진은 항상 비가시적이다. 즉, 우리가 보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어린 시절의 형이 이동식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제공: 정영혁)

초등학교 시절 나는 서대문구 녹번동 은평 주요소, 첫 뒷골목 모퉁이에 살았다. 최근에 가보니 그때 그 골목은 그대로 있었으나 주변의 환경은 모든 것이 변했다. 

당시에는 리어카같은 것에 위 사진처럼 바다, 갈매기, 구름이 그려진 이동식 사진관을 가끔식 골목길에서 마주 할 수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이 사진은 누가 촬영 했는지 모르겠다. 촬영사로부터 받은 사진인지 아버님이 옆에서 같이 찍은 사진인지? 이 사진의 모델은 형이다.

◇ 이동식 사진관인 셈이다

무대를 연상케한다. 디테일도 좋고 사실적이다. 형이 입은 깊게 파여진 런닝구가 인상적이다.

지금은 없지만 당시 은평주유소 앞에는 도원극장이 존재했다. 극장 홍보용 간판은 당시에 손수 누군가에 의해 대형 그림이 걸려있었다. 멋진 그림 솜씨로 내 눈에 기억됐다.

초등학교 시절 극장을 자주 가곤했다. 극장 주인과 아버님의 친분 관계로 공짜표도 구하고, 몰래 극장 뒷쪽에 있는 도둑 문을 이용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대한뉴스+애국가, 자욱한 담배연기, 중간에 필름 교체하는 잠깐의 시간에  휘파람과 함께 쏟아지는 야유. 매점에서 판매하는 오징어, 땅콩, 벼락같이 들이닥치는 검열, 가끔씩 순간 벌어지는 싸움박질...

그래도 낭만이 깃든 곳이다. 

◇ 영상의 기억에 의한 이미지 재현은 그때 부터

작은누나, 형 그리고 나 (사진: 정정원)

이 사진에 대한 기억은 없다. 옷차림새를 보아 일상의 기념사진은 아닌 듯하다. 작은 누나의 옷맷시가 소녀시대를 능가하는 듯 하다. 어디를 부모님과 함께 가던지 아니면 무슨 특별한 날인 것 같다. 그러나 장소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1. 작은 누나 왼편으로 아버님이 직접 만드신 작은 연못이 보인다.
당시 집안의 웬만한 것들은 손수 아버님이 직접 제작, 집안에 각종 연장 도구들이 있었다. 여름에는 작은 분수와 함께 잉어, 작은 오리 그리고 내가 만든 종이 배 등이 떠돌고 있었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 그 위에 팽이가 돌고.

2. 뒷편으로 작은 광이 보인다.
그야말로 창고로 잡다한 물건들이 산적해 있었다.

3. 광 앞에 놓인 쌀 가마니가 있는 것으로 보아 광에서 나온 것 같다.
여름 계절에 왜 나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광 옆으로 겨울에는 땅을 파고 장독을 묻었다. 그 때 쌀 가마니로 장독을 감샀던 기억이 난다.

왼쪽부터 나, 큰누나, 형 그리고 할머니, 1975  (사진: 정정원)

이 사진은 창경궁을 놀러간 사진이다. 

어린 시절 큰누나, 작은 누나, 형 그리고 나 4형제가 함께 찍힌 사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 사이지만 큰집에 딸이 없는 관계로 큰누나가 큰집에서 대학교 2학년까지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처럼 호적까지 옮기거나 그러지 않고 대학교 시절에 우리와 합류했다.

우리집 녹번동으로 와서 아버님이 할머니를 모시고 창경궁으로 놀러간 것 같다. 큰누나가 나팔바지에 긴머리를 유지한 것으로 보아 나름 그 당시 여대생 스타일인 것 같다. 또한 모두 흰 양말을 신고 있다.

◇ 사진에서 완벽한 프레임 구성이 엿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사진과 그림을 독학으로 익힌 아버님은 타고난 재능을 지니신 것 같다.

아쉽게도 지금은 집이 몇번의 이사하는 동안 없어졌지만, 난  이미 유년 시절에 아버님이 색연필로 멋지게 그린 헐리우드 스타일의 금발 미녀들을 볼 수 있었다. 긴 생머리에 칠부 바지를 입고 바에 걸터 앉아 맥주를 마시는 미녀 등.

에드워드 호퍼가 도시인의 고독한 여성을 그렸다면 아버님은 무척이나 밝고 명랑한 미국 여성들을 그렸다. 무엇때문에 왜 그렸는지 알 수는 없으나 디테일 묘사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기억된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큰집 큰형님과 술잔을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가 나왔다. "작은 아버님은 운동도 잘 하셨고 특히 그림을 잘 그리셨지. 만약 미술 교육을 받았다면 당대에 명성을 날렸을 거라고" 말했다.

오늘 가족 사진을 보며 과거로 여행을 한다.
한 장의 사진이 말을 할 수는 없으나, 찍힌 이미지로부터 전후 상황 더 나아가 한 시대를 기억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진의 힘이란 이처럼 숭고하며 매우 기록적이며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요즘처럼 편리하게 이미지가 재현되는 세상에 아날로그적인 사고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가볍게 셔터를 누르고 감상할 시간을 스스로 가지지 못하고 세상에 노출시킨다. 

안타깝다는 말 이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셔터를 누르는 결정적 순간의 가치와 의미를 망각한 채 마구 눌러 한 장을 건진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는 사진 철학이다. 디지털시대라 해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장의 이미지가 가진 숭고한 가치를 저버리는 행위는 사진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사진 교육도 마찬가지다.
요즘 보면 사진 교육이 아니라 메카니즘 교육을 하고 메카니즘 노출을 한다. 아쉬움이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전략의 하나이니~~~

이 황량한 사막에서 어떤 사진은 갑자기 나에게 찾아와 나를 흥분시키고, 또 나는 그 사진을 흥분시킨다. 그러므로 내가 사진을 존재케하는 매력을 열거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방식에 의해서다. 즉 그것은 흥분시키기이다. 사진 그 자체는 조금도 흥분되지 않지만(따라서 나는 살'아 있는 듯한'  사진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은 나를 흥분시킨다. 이것이 바로 모든 모험의 행위이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사진작가 정영혁>
  뉴욕시각예술대학교 사진미디어 대학원(School of Visual Arts, MFA)
  동양인 최초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예술 지원금 수상
  강남피플(인터뷰 다큐멘터리 매거진) 발행인
  한국콘텐츠생산연구소장(KCPL)
  1인1미디어 시대 퍼스널 콘텐츠 브랜딩 연구
  한국셰프연구소 이사(K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