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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우의 인물채집] "미슐랭이 미쳤다!" 미슐랭 쉐프 한영용

칼럼니스트 오치우 승인 2020.06.17 14:45 | 최종 수정 2020.06.17 14:46 의견 0
미슐랭 쉐프 한영용  (칼럼니스트 오치우)

큰기와집 주인장 한영용! 그는 누군가를 닮았다. 

부드러운 선이 고운 뽀얀 얼굴에 깊은 눈, 나긋한 억양에 맞춰 고요하게 흐르는 손길, 말의 높낮이에 따라 손끝이 함께 선을 그린다.

그래! 이 느낌을 가진 남자가있었다. 한때, 전세계의 셀럽들이 앞다투어 모델을 자원했던 한국 패션의 대명사! "앙드레 김!"

각국의 대사부인들이 가장 선호했던 임지가 대한민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대사부인으로 한국에 가면 "앙드레 김"의 쇼에 초대되고 그의 작품을 입어 볼 수 있다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진짜 전성기의 앙드레 김 느낌이다!" 라고 말했더니 펄쩍 뛴다. "어림도 없는 말씀을! 앙선생님  계셨으면 진짜 혼 날 말씀 이십니다!"

점잖게 싫지않은 표정으로 타박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독특한 선비소리다. 거기다가 <큰기와집>이라는 간판을 건 종로 소격동의 한식당 주인 한영용의 풍모 또한 예사롭지 않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위에 여유롭게 덮어 쓴 챙 있는 패션 캡, 그 묘한 부조화를 쓰윽 밀어내며 깔끔한 선을 똑 떨어지게 그려내는 한복, 그의 옷 매무새가 무심한듯 매섭다.

"한복을 입을때마다 마지막 옷깃을 여밀때,저는  태극기에 대해 경례를 할 때 보다 가슴이 후끈해 집니다.
그 '여밈' 이라는 어휘와 동작이 어찌그리 경건하고 가슴 뻐근한 감동이 어리는지요."

미슐랭이 처음으로 별을 달아준 한식당 <큰기와집>의 주인이자 쉐프인 한영용이 음식이 아니라 패션으로 화두를 잡는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제가 본 앙드레 김 선생님은 대한민국 정부의 임명장도, 임기도 없는 외교장관이셨고, 전세계에 한류문화의 씨앗을 뿌린 위대한 아티스트이며 애국자셨습니다. 그 많은 외교관들에게 한류전파에 혼신을 다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한식으로 코리아판타지를 빚어 전세계를 감동 시키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조리학, 급식경영, 발효공학 등을 연구한 그는 말에서도 감칠맛이 난다!  (칼럼니스트 오치우)

그래서 그는  조리학을 배우고, 연세대학원에서 급식경영을 공부하고, 서울 벤쳐대학원에서는 발효공학 박사 학위를 받아냈다 . 한식은 시간 단위당 맛이 변할 수 밖에 없는 발효식품이 근간이기 때문에 발효의 과학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발효를 알아야 발효의 보고인 한식의 비밀창고를 열 수 있지요. 한식은 '맛을 익혀서 비로소 멋이 날 때 먹는 음식'이거든요! 한식을 맛으로만 먹는 사람들은 한식을 반 밖에 못먹는 거지요. 맛이 익으면 멋이 납니다."

본향이 청주이고 나주에서 태어나 자란 그의 말에서 감칠맛이 난다. 그의 말은 참 맛있고 멋지다!

그러나 그 맛은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다

"법조계에 계셨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 돌아 가시고 삼십대 부터 어머니 혼자 식당을 하시다가  병을 얻었고,  대신 식당을 떠 맡았던 제가 어머니 식당을  날려 먹었지요. 이유는 딱. 하나, 맛 없어서... 어머니의 식당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내가 목숨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빈 몸으로 시작한 포장마차 생활 3년만에 정말로. 어머니의 식당을  찾아 드렸 습니다. 장사가 아니라 목숨 건 전쟁 이었지요."

셰프의 기본 조건은 '상상력'과 '용기'다. 식재료들과의 교감으로 완성되는 맛을 상상 해내고 그 맛이 실현되지 않았을 경우, 가차없이 쏟아버릴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셰프의 자질이다,

이미 저질러 놓은 일 때문에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야 했던 한영용은 매일 전투하듯 맛과 대결하다가 우연히 음식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했다는 가당찮은(?) 말을 들었다.

"음식으로 치유되지 않는 병은 의사도 고칠 수 없다!"

요리사도 아니고 '의사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참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생각했던 한영용은 놀랍게도 그 터무니없는 의사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허튼소리'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발견했다.

"맛은 오랜 식습이 만들어낸 몸의 반응이다. 맛은 몸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야. 엄마는 할머니의 맛을 그리워하고 너는 엄마의 맛을 기억하는거야. 맛은 심신을 치유하는 명약이지!"

히포크라테스의 힌트로 그는 맛과의 전투를 끝냈다. "미각 속에 각인된 행복한 기억"이 맛의 정체라고  판단한 그는 맛을 내기위해 "오래된 미래"를 차출 했다.

맛은 심신을 치유하는 명약! 미각 속에 각인된 행복한 기억이 맛이다!  (칼럼니스트 오치우)

어머니가 물려받은 씨간장을 제단의 불씨처럼 이어받아 맛을 지폈다. 150여년 전에 발효된 간장 속에는 세월이 아니라 식구를 먹이는 어머니의 기쁨이 고여 있었다. 그 기쁨은 생생히 살아있는 게의 속살에, 저며놓은 고기 속에, 밥상 한가운데, 벌판의 민들레 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잡고 있는 간장종지 안에 그렇게 스며들어 맛으로, 멋으로 숙성되며 "오래된 미래"를 교통하고 있었던거다. 그걸 그들이 눈치채고 
말았던 거다.

<미슐랭>은 기습적으로 <큰기와집>을 쳐들어와서는 점령군처럼 별을 붙이고 갔다. 프랑스에서 본적도 없는 간장게장에다가... <미슐랭>이 미친거 아냐? 글쎄다.

"깜짝 놀랐어요. <미슐랭>이 그 맛을 알아차리고 별을 달아 주더라구요. 그냥 간장으로만 담으면 너무짜서 먹을 수 없고 물타면 비린내 때문에 쏟아 버려야 되는 간장게장의 숙명을 그들이 어찌 알아버린 걸까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한식 최초의 '미슐랭 셰프 한영용'의 표정에서 약관의 나이에 호텔롯데, 호텔신라를 섭렵하고 30대에 이미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내공이 묻어난다. <미슐랭>은 아마도 그에게서 오래된 미래의 향기를 맡았으리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목포에서 배타고 압해도를 갔었어요. 국민학교 1학년때, 학자금 이라도 보태려고 어머니가 빚 받으러 갔었는데 눈물 바람을 하는 노인에게 노자돈 까지 다 내주고, 병든 노인의 이불빨래까지 해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사람을 위하는 맘 속에 맛이 있다  (칼럼니스트 오치우)

"사람을 위하는 맘 속에 맛이 있는 것"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품고사는 그는 물같은 사내다. 노자의 제자가 되었다면 아마도 그는  분명 장학생이 될 자질이 있는 위인이다. 노자가 가르치는  물의 6덕 중 세가지는 이미 타고났다.

그에게는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가 있으며, 바윗돌을 뚫는  인내와 끈기가 있으며, 어김없이 낮은곳으로 스며흐르는 겸손이 있다. 노자의 뜻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물처럼 흐르는 사람인 그가  차모임을 여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함께 흘러서 가장낮고 넓은 대양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차 모임" 이라고 말하는 그는 <큰기와집>의 주방을 벗어나면 평창동에 만든 예쁜 "차박물관" 보주"에서 속닥하게 차담을 나누는 일을 즐긴다. 그가 낸 책 "접빈"을 펼쳐보면 그가 이 나라 차의 명인들과 맺어 온 깊은 인연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고세연. 박동선. 신운학. 전명진. 임권택. 이름앞에 수식이 필요없는 차인들을 맨 앞 줄에 모신 것으로 보아 그는 차를 나누는 일이 "찻잎이 품은 시간과, 첫 잎이 필 때의 그 계곡을 스치던 바람소리,그리고 소낙비보다 더 강렬하게 쏟아지던 햇살의 기억들을 되살려 나누는 일" 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음식과 차를 만들고 나누는 일이 어찌 다른 일 이겠습니까? 차례는 망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음식과 차, 다례는 산 자들과의 교감이라는 차이가 있는거지요"

"이제 내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밥을 지어야지요"  (칼럼니스트 오치우)

국민학교 1학년에 아버지를 여읜 사내아이가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으니 히늘의 뜻을 받아 행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제 내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밥을 지어야지요. 여기까지 이룬게 어찌 우연 이겠습니까? 함께 나눠야 할 밥을 내다 팔고 산 업보를 갚아야지요. 아버지 떠나시고 우리 6남매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혹시 우리가 찢어져 입양을 가더라도 꼭 기억하자며 그 사진을 나눠 가졌습니다. 어머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똘똘뭉쳐서 살게됐고, 그리 살아온 만큼 주어진 소명이 있겠지요. 먼저가신 앙드레 김 선생님이 하시던 일을 소명으로 받고자 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귀한 밥 '한국인의 밥'을 짓겠습니다!"

지천명의 나이, 그는 이제 하고싶은 대로 저질러도 하늘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그가 가슴에 품고사는 어머님의 편지를 보건대,

"우리 막둥이 사랑한다!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이 한복은 아버지가 즐겨 입으셨던 거다. 이 한복을 뜯어서 엄마가 뜻 깊은 정성과 사랑을 담아 지은 옷이니 늘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만인 앞에 기죽지 말고 자부심을 가져줬으면 해서 이웃을 선물한다. 더 남자답고 멋진 아들이 되리라 믿는다.  사랑하는 엄마가"'

고등학교 입학 때, 교복대신으로 입혀준 옷이다. 그러니 그 옷깃을 여밀때마다 어찌 눈물이 솟지 않으랴!

그는. 지금, 대학교수고. 박사고 미슐랭셰프고, 향산다회 방장이고 큰기와식품 대표 라는게 하등 중요치 않다. 그가 쓴  " 단군신화에 나온 마늘과 쑥에 관한 약선연구" 등 아홉편의 논문을 보면 그의 미래행보가  보인다.

한영용! 그가 이제부터 오직, 그 눈물어린 한복의 의미대로만 세상을 살아보려 세상 한가운데로 나섰다. "이제,나라를 위해 밥을 짓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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