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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2편: “짬뽕 나아스니다!” 2

조인 작가 승인 2019.08.24 09:25 의견 0

“점심이나 먹어야겠다.”

카페를 나서면 맞은 편에 중국집이 있다. 짬뽕 전문점인데, 그 맛이 어린 시절 먹었던 짬뽕 맛과 비슷해서 자주 찾게 된다. 신기하게도 내가 먹었던 짬뽕은 서울 중국 집에서 만든 건데, 대구에서 그 맛이 난다는 것이다.

MSG가 다량 함유된 국물, 적당히 감칠맛을 돋구는 불맛. 어린 시절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먹기에는 짬뽕은 매웠는데, 그래서 먹다가 사례 걸려 어쩔 수 없이 뱉어냈다가 엄마한테 “매우면 짜장면을 시켜달라고 하지, 왜 짬뽕을 먹어!”라는 꾸중을 들으면서 울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사실, 그때 난 뭘 시켜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 다녀오니 짬뽕이 있었고, 배가 고픈 아홉 살 소년은 급하게 먹었을 뿐이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꾸중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마 대꾸했다면 말대답했다고 더 혼났을 테니. 덕분에 나는 중딩이 될 때까지 짬뽕을 먹지 않았다.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할까?

흔히 식당 문으로 사용되는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지런히 정렬된 열 개정도 돼 보이는 식탁이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혼밥족’을 위해서 1인 석도 마련돼 있는데, 하필이면, 햇볕이 잘 드는 창가다. 아마 더운 여름에 저기 앉아서 짬뽕을 먹으면, 짬뽕 칼로리만큼 땀으로 빠질지도 모른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중국집에는 사람이 없었다. 홀 전체를 전세 낸 것처럼 혼자 서성거리면서 멋쩍게 “짬뽕이요!”라고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곧 서빙을 보는 아가씨가 와서 잘게 썰어진 단무지와 양파, 춘장을 내려놓고는 “짬뽀이죠?”라고 확인한다.

말투를 들어보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듯하다. ‘조선족인가?’ 어디선가 조선족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들은 거 같다. 시급이 올라가면, 당연히 자영업자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강구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건비만큼 음식값을 올리면, 매출이 더 줄 테니 말이다. 원래는 인건비를 올리면, 소득이 커지고, 그만큼 다른 상품 값도 상승할 거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가 보다. 결론적으로 인건비가 올라가면, 기존 인건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라’ 계약을 하든지 저렴한 인건비를 받고도 일할 수 있는 직원을 고용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 서빙하던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음. 아주머니는 짤린 건가?’ 

“짬봉 나아스니다.”

평소보다 더 뜨거워 보이는 짬뽕이 처음 들어보는 소리로 책상 위로 내려온다. 가격은 똑같지만, 똑같은 가격을 위해 익숙한 “짬뽕” 소리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내 일거리만 사라진 게 아니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이 왠지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변학도 생일날 지어낸 시 속에 들어있는 만성고(慢性膏) 같아서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 국물을 다 마시다가는 꼭 사레에 걸려 어머니께 혼났던 그 시절로 돌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도대체 누굴 위한 일자리 창출이고, 시급 인상인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책상 앞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면서 하는 말이 ‘책상물림’이다.

스스로 전 정권과는 다르다고 선전하고 선동하면서 촛불에 기대 정권을 차지하고 나니, 자리가 넓고 편했나 보다. 민생을 발로 접하지 않고, 글로 접해서 결재하니 말이다. 다행일 수도 있다. 현실을 체험하고 정책을 마련했다면, ‘가라’로 정리하는 민간의 방법을 탈탈 털어서 더 힘들게 만들지도 모른다. 

“공기밥 하나만 주세요.”

밥을 시킨 이유는 국물이 맛있어서 시킨 게 아니다. 배는 부른데, 뭔가로 가득 채우지 않으면 그 허전함을 해결할 수 없을 거 같아서. 흡사 가난했던 보릿고개 시절 먹을 게 있을 때 무조건 배에 넣고 봤던 그 시절의 절박한 허함이 21세기에 느껴진다. 과거나 현재나 많은 게 달라졌을 텐데, 왜 인간이 느끼는 절망감은 비슷한 걸까? (짬뽕 나아스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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