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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리제너레이션(9)] 대안문화의 상징적인 장소 ‘홍대’의 형성과정

문화적 도시재생 1번지-홍대 ②편

김동복 기자 승인 2020.07.29 23:09 의견 0
양화진 방향으로 바라본 홍대지역  (출처: 픽사베이)

홍대지역은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장소다. 그러다보니 홍대만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걷고 싶은 거리, 피카소 거리, 클럽거리, 화방거리, 벽화거리 등 많은 이색골목들이 있어 항상 활기가 넘치고, 서울의 문화 예술을 선도하는 젊은이들의 명소이기도 하다. 이번 회에서는 홍대지역이 형성된 역사를 되짚어보려고 한다.

홍대지역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의 영향으로 펼쳐진 실험적 독립문화와 대규모 자본과 결합한 소비문화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형성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화진 부근에 건설된 당인리 화력발전소로 무연탄을 운반하는 당인선 철길이 생기면서 철길을 따라 거리가 형성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서교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과 제2한강교 건설이 진행되며 주거지가 조성되는 등 현재의 도로망과 공간적 구조가 확립되었다.

홍대지역이 지금과 같은 문화 트렌드를 주도하는 장소가 된 첫 출발점은 1955년 홍익대학교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홍대 미대의 출발과 함께 홍익대 미대생들의 작업실들이 문화적인 거리를 형성하는 씨앗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자연스럽게 미술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생활속에서 홍대 앞은 미술뿐만 아니라 타 장르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태동하면서 등 다양한 예술적 움직임들이 활발하게 행해졌다. 거리에는 예술적 분위기가 넘쳐났으며 독창적이며 다양한 문화 실험들이 시도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아티스트들이 찻집이나 카페 등 자신들만의 톡특하고 특색 있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점차 확대되었다.

본격적인 변화는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들어서고 홍대입구역 부근이 상업지구가 되면서부터다. 당시 홍대 인근은 임대료가 낮았고, 주거 건물 역시 아파트보다는 단독 주택이나 빌라 형태가 많아 옥탑방과 반지하 건물이 많았다.

이 시기에는 신촌 연대 앞 지역에 소극장들과 갤러리들이 하나 둘 몰려들면서 신촌지역의 문화적 활동들도 함께 무르익었던 시기다.

1990년대부터 홍대지역은 ‘인디(Indie)’로 통칭되는 대안 문화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곳은 젊은 예술가, 보헤미안적 지식인, 힙스터 성향의 문화소비자들이 모여들어 이른바 인디문화의 성지를 일궜다.

이 장소를 드나들던 사람들의 성격과 색채, 그리고 그들의 미감과 취향이 묻어나는 작고 개성있는 식당, 카페, 바, 라이브 클럽, 댄스 클럽 등은 조용한 주택가였던 이곳을 인디문화의 성지로 탈바꿈시켰다. 당시 홍대 클럽은 지금처럼 음주가무의 중심이 아니라, 요즘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록밴드들이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선보이는 라이브 클럽이었다.

2000년대 들어 힙합을 다루는 클럽이 하나둘 등장했고, 이후 홍대가 유명세를 치르면서 댄스클럽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사람이 많이 몰리니 자연히 식당과 주점도 늘어 언제부터인가 홍대입구역 주변은 술 마시는 거리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1990년대 초반에는 고급 카페문화지역,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클럽문화지역, 2000년대 이후에는 한류를 대표하는 관광지역 등으로 홍대지역은 계속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의 유입과 지하철 2호선과 6호선, 2010년 경의중앙선과 공항철도의 개통 등으로 유동인구의 수가 늘어나면서 점차 상업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홍대지역의 역동적인 변화 과정은 현대 서울이 겪어왔던 상업적, 문화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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