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와 도로 확장 공사 외에도 서독 정부는 서독 주민들의 서베를린 여행의 불편을 줄이기 위하여 1971년 12월 17일에 동독과 ‘통과여행협정'(Transitabkommen)을 체결하였다. 이때부터 서독정부는 그 동안 서독 주민들이 동독 지역 통과시 지급했던 도로 사용료를 일괄부담금으로 지급하였다.
이 협정이 맺어진 후 서독 정부는 1980년까지 동독에게 매년 2억2490만 마르크를 지불하였으나, 1981년부터는 2배 이상 대폭 증가한 5억2500만 마르크를 지급하였다. 여행객 외에 서독 지역에 등록된 차량의 동독 여행 시 서독 정부가 일괄부담금으로 연간 5천만 마르크를 동독에게 지급해왔다.
기본조약 체결 후 통일되기까지 동서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철도 건설과 보수 비용, 수로 지원, 직접 차관, 지급보증, 정치범 석방을 위한 거래(Häftlingfreikauf. Freikauf)에 따른 물품 지원, 서독 민간 차원의 지원, 서독 교회 차원의 지원 등으로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금액은 1044억5천만 마르크에 달한다. 전체 지원에서 정부 차원은 296억5천만 마르크로 전체의 28%였고, 나머지는 민간 차원의 지원이었다. 반대급부가 없는 일방적인 지원은 서독을 방문하는 동독 주민을 위한 환영금 등 707억 마르크로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이처럼 기본조약 하의 동서독 간의 교류는 다방면에 걸쳐 확대되고 심화되면서 외견상 여타 국가와의 관계처럼 모든 면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절정에 1987년 독일민주공화국 국가평의회 의장 호네커의 독일연방공화국 방문이 있었다.
1987년 9월 7일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이 동독 국가 수립, 그리고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독의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서독을 공식 방문하였다. 이 방문은 1981년 12월 11~12일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동독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당초 1984년에 계획되었던 것이었지만 당시 소련의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호네커 방문 시 동독은 국가수반 방문의 의전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서독의 콜 총리 측은 실무방문이라는 이름 하에 국가수반에 준하는 의전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동독 지도부에 대하여 바트 고데스베르크 연회장에서 있을 독일문제에 대한 콜 총리의 기조연설을 동독에 생중계할 것을 요구하였고, 동독은 이를 수용하였다.
9월 15일 통일사회당 정치국은 호네커의 방문 성과를 브리핑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방문은 기본조약 체결 후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개별적 주권국가 수반에 대한 의전에 따라 두 개의 독일 국가의 독립과 대등한 지위를 세계에 알렸으며, 국제법에 따른 양국 관계의 성격과 양국의 주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콜 총리는 ‘법적 지위’와 ‘민족 통일’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독에도 생중계된 콜 총리의 연설은 민족 문제와 재통일 그리고 인권 문제에 관한 서독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방문이 민족문제를 포함한 근본적 문제에 대한 두 나라의 상이한 견해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변화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연방정부의 입장에서 거듭 말하겠다. 우리 기본법 전문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신념에 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의 통합을 원하며, 전체 독일 국민에게 자유로운 자결권에 의해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완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현존 경계선을 존중하지만, 평화적인 이해와 자유의 길에서 분단을 극복하고자 한다. 독일문제는 열려 있지만, 그 해결은 현재 세계사의 의제가 아니며 우리는 이웃 국가의 동의를 필요로 할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동서 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배웠다. 이는 두 나라의 정치적 질서와 상이한 동맹의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연방공화국 입장에서 대서양 동맹의 가치와 안보 공동체는 자유 속에서 평화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정책의 불가결하고도 변함없는 기초다.
•평화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존엄에서 시작된다. 모든 인간 존재는 스스로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유럽안보협력회의 최종결의가 인권과 근본적인 자유의 존중이 “평화, 정의 그리고 복지의 본질적 요소”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아무튼 1987년 9월 호네커의 방문은 “사실상” 두 개 국가 체제의 동서독 관계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후 동독은 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가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국가 소멸의 과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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