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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선 관록 조경태 - 하지만 여전히 ‘청년’이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15.02.20 18:10 | 최종 수정 2019.07.15 14:30 의견 0

조경태 의원은 1968년생으로 올해 만 47세. 3선의원이라는 중량감을 생각하면 그의 ‘젊음’이 더욱 돋보인다. 2004년 제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처음 당선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36세였다.

조경태 의원이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도전한 것은 28세였던 지난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낙선이었다. 15대에 이어 16대에서도 낙선의 고배를 마셔 한 때 정치를 그만두는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국회의원 선거 첫 도전부터 화제를 불러온 정치 신인이기도 했다.

파격적인 상반신 누드 포스터는 지금도 인상적인 선거홍보물의 사례로 자주 화제에 오르곤 한다. 그는 “감출 것 없는 정치! 거짓 없는 정치! 젊은 용기로 시작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청년 정치인으로서의 도전정신과 순수성을 부각시켰다.

 

그의 첫 도전은 지금도 선거홍보 분야 걸작으로 회자되는 상반신 누드 포스터로 설명된다. <p class=

그의 첫 정치도전은 지금도 선거홍보 분야 걸작으로 회자되는 상반신 누드 포스터 하나로 설명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포털사이트 검색)

 

거짓 없는 정치, 젊은 용기로 시작하다

이런 파격 이미지의 홍보가 가능했던 것은 유일한 선거참모였던 아내의 조언 덕분이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민주당의 입지가 약한데다 정치경험이 전무했던 약점을 장점으로 전환해야 할 요구, 무엇보다 선거자금의 부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뭔가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비록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조경태’하면 ‘누드포스터’를 떠올릴 정도로 그 포스터는 그의 ‘청년’ 이미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청년 조경태가 처음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 2학년이던 1988년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 동구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출마했을 때 한 달 간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상당 기간 정치를 자신의 미래로 꿈꾸지 않았다. 전공하던 토목공학 분야의 학자를 목표로 박사학를 밟으며 대학의 강사로 활동했다.

그가 정치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결혼을 앞둔 1995년 어느 날 목격한 사건이었다. 부산 구포시장을 지나다 시장 노점상인들을 단속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노점상들의 모습이 딱해 앞에 나서 철거반원들에게 항의하는 순간 ‘공무집행 방해’ 라는 위협이 날아왔던 것이다. 충격이었다.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려면 그만한 위치와 힘이 필요하다는 자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에 대한 고민이 국회의원 도전을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얼마 후, 부산 지역의 어느 국회의원 인터뷰가 신문에 실린 것을 읽으며 그는 정치에 뛰어들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그 국회의원은 전국최다득표를 노린다는 발언을 하면서 그럴 수 있는 근거로 팽배한 지역주의 성향을 꼽고 있었다. 전국최다득표의 영광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주의라는 부조리의 선명한 대조. 그는 지역주의에 편승한 기성정치의 오만함과 편협함을 깨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부산에서 새정치민주연합(구 민주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도전이 결국 실패로 귀결됐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 의미가 커진다. 사실 노무현은 조경태가 정치에 진출하도록 만든 출발점이자 스승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스승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긴 셈이다.

그는 노무현과 자신을 자주 비교한다. 계파 등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청년 정신이 노무현과 자신을 이어주는 하나의 끈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노무현의 한계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그가 새정치연합의 최대 계파이자 현재 심각한 패권주의의 폐해를 낳고 있는 친노그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이제 노무현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진보가 무조건 옳다, 보수는 무조건 잘못됐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그의 소신이며 목소리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빅마우스인 친노 깨시민 성향의 지식인이나 시민들로부터 “짐 싸서 새누리당으로 가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그를 염려하는 지역사회의 지인들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 새누리당에서 정치생활을 하라고 간곡하게 권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내년 총선에서도 부산 사하을 선거구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4선에 도전한다.

그는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빅마우스처럼 요란하게 떠들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정통야당의 뿌리를 묵묵하게 지켜온 당원들과 호남 지역의 유권자 등이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조경태 그는 여전히 청년이다. 성역과 금기, 기득권, 계파와 타협하지 않는 모습에서 그의 ‘청년’이 여전히 늙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최근 새정치연합 대표 도전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이 또한 그가 하려는 도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과 청소년들의 시민정신 함양과 사회참여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그들로부터 초청받은 행사에 빠지지 않는 것도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모습의 하나이다.노무현에서 출발해 노무현의 한계를 봤고 이제 노무현을 뛰어넘어야 하는 조경태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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