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길 대장은 인천의 수많은 노포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개항로 프로젝트>와 함께 협업하는 방식으로 노포의 가치를 계승하고 있다. 처음으로 쫄면을 만들었던 <광신제면>에 콜라보를 제안하고 <개항면>이라는 가게를 오픈했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개항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2018년이다. 그동안 만들어진 점포가 총 몇 개인지?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카페 <브라운핸즈>, 갤러리 <플레이스막>, 이탈리안 레스토랑 <마틸다>, 동남아 식당 <매콩사롱>, 카페 <라이트하우스>, 선술집 <오노고로>, <개항면>, <개항로 통닭>, 선술집 <이슬옥>, 햄버거 <레바논버거>, 차이니즈포차 <중구집>, 복합시설 <개항로본부>, <개항로 고깃집> 등이 있다.
▶점포가 꽤 되는데 임대료가 엄청날 것 같다.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는 없는지 궁금하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직접 건물을 사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정했다. 마케팅은 공통으로 하는데, 각자 건물을 사서 각자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 곳은 구도심이기 때문에 건물이 저렴해서 가능하다. 인천 송도같은 도시에서 보증금이랑 권리금을 낼 돈이면 여기서는 건물을 살 수 있다. 우리도 과거에 쫓겨난 경험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플레이어가 자기 건물을 소유해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 <개항로 프로젝트>는 뭔가 체계적으로 회사를 만들고 조직처럼 해왔다기보다 그냥 이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할 수 있는 능력으로 공동으로 기획하고 마케팅 하면서, 건물을 사면 무조건 오픈 하는 걸로 약속을 하고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카페 <라이트하우스>는 원래 산부인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었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개항로 프로젝트>는 기존의 건물들을 그대로 살린 것이 매력인 것 같다. 이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싶은 열정이 돋보인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최대한 건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라이트하우스>라는 카페는 전에 산부인과로 사용되던 건물이어서 내부에 산부인과의 흔적들을 일부 살려두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공간을 만들어가다가 “오래된 건물의 공간을 바꿔서 새로운 콘텐츠를 넣는 것이 정말 특별한가?”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세 번 이상 찾아오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고민을 하다가 답을 찾은 것이 ‘노포’다. 직접 조사해보니 인천 중구에 노포만 해도 60개가 넘었다. 노포는 살아있는 역사이면서 카피가 불가능한 지역의 콘텐츠다. 40년, 50년이 넘게 장사를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시간, 인테리어,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매너 같은 것들은 따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가게와 노포를 결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객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우리는 노포와 합쳐지면 다른 도시에서는 카피할 수 없는 가치가 생기는 셈이었다. 그런데다 감사하게도 이 때 딱 ‘뉴트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으로 <개항로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개항로 이웃사람>이라고 노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집은 왜 맛있고 멋진 곳인지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인천 도시재생센터에서 이런 일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찾아왔다. 처음에는 무언가를 간섭하면 무조건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대화 끝에 나중에는 도시재생센터의 지원을 받아서 같이 작업도 하게 됐다.
지역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콘텐츠로서 노포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개항로 이웃사람>으로 소개하던 노포들의 기록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최근에는 영상으로 기록물을 하나씩 만들고 있는데, 이 영상들을 모아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개항로 이웃사람 전시회>를 열기도 하셨던데?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처음에는 노포를 하시는 분들을 관광 콘텐츠로 생각하고 조사를 했는데, 하다 보니 이분들이 하는 일이 지역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료가 많이 없었다. 노포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콘텐츠이기에 지켜져야 하고 살아있는 역사로서도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분들을 일일이 만나서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했다. 처음에는 다들 거절하기도 하셔서 한 사람을 인터뷰 하는데 열 번씩 갔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나면 어떻게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렇게 한 공간에서 이어올 수 있는지, 장사가 잘 될 때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반대로 안 될 때는 뭘 해야 할지, 손님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요즘 젊은 친구들이 창업 많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거에 여기는 어땠는지 하는 것들을 물어봐서 기록으로 남겨두었고, 이 내용을 담아 전시회를 열었다.
1968년 오픈해 52년간 이어온 <전원공예사> 사장님. 목간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개항로 프로젝트>의 가게들이 목간판을 사용하면서 입소문을 타 이제는 일이 밀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전정환 작가의 <밀레니얼의 반격>이라는 책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매일 자라고 있다”라는 문구를 봤는데 너무 와 닿았다. 사람에 따라서 자기의 기준이 다 다르니까 각자가 생각하는 정체성이라는 건 다 다른 것이고 시대에 따라서 바뀌기도 하는데, 그걸 저 문장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정체성이라는 건 자랄 수도 있고 기존의 것을 살릴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인천의 정체성은 ‘노포’다. 다른 도시는 개발을 한다고 노포들을 다 없애기 때문에 이런 특성이 살아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인천 중구에 있는 노포 어른들은 건물이 거의 자기 것이다. 즉, 장사가 잘 된다면 100년이 넘어가는 가게로 이어질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은 점이다. 또 카피가 어렵다는 점도 장점이다. 우리가 일본을 가면 료칸을 보고 싶지 않나. 외국을 가면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보러 간다. 내가 보기에 인천에 ‘노포’는 그런 것이다. 여기에만 있는 것, 그래서 누군가 따라 하기 어려운 것. 그래서 노포를 더 알리고 싶다. 이 분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식들 혹은 다른 누구라도 이 것들을 대를 이어 물려받아 대대손손 이어갔으면 좋겠다.
간판뿐만 아니라 <개항로 통닭> 메뉴판도 목간판으로 만들었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노포와 개항로는 어떤 식으로 콜라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이 분들을 인터뷰하다가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다. 여기에 1964년도에 오픈한 <인천당>이라는 과자가게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 신주라고 하는 주물, 그러니까 달구지 하나 놓고 장사를 한다. 파는 단위도 한 근이다. 그래서 이걸 내가 예쁘게 패키지 디자인을 해줄 테니 소량으로 팔아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방법을 바꾸면 방부제를 넣어야 할 수도 있고 그런데, 60년 가까이 해 온 내 방법을 바꾸어야 하느냐"고 묻는 거다. "내 것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뭐가 되느냐"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반성을 했다. 내 생각으로는 이 분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내가 패키지 디자인을 잘 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돈을 많이 벌지 않을까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게 주제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고민해서 찾아냈다. 주말마다 우리가 <인천당> 과자를 사와서 <라이트하우스>에서 종류별 소포장을 해 원가로 판매하며 홍보하는 것이었다.
쫄면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쫄면이 인천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진 것 알고 계시는지? 그 제면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광신제면소>다. 쫄면을 최초로 만든 곳으로 1969년에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도 제면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개항로에 <개항면>이라는 면 가게를 만들고 우리가 필요한 면을 콜라보로 만들자고 제면소에 제안했다. 중요한 것은 제면소의 기술이 이어지는 것이고, 이 분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1969년 시작해 쫄면을 최초로 만든 <광신제면>. <개항면>과 콜라보 제품을 만들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메밀면을 만들어 '비빔막국수' 신메뉴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창길 대장 인스타그램)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우리 <개항로 프로젝트> 사무실은 간판이 목간판이다. <전원공예사>에서 해주신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목재가 처음 들어온 곳이 인천이다. 옛날을 생각해보면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병원이든 어디든 다 목간판이었다. <전원공예사>도 한 달에 300개씩 목간판을 만들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목간판을 잘 안 쓰니 작업 할 일이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하고 난 뒤에 개항로 입간판을 부탁드렸다. 나중에 개항로에 오픈한 <개항로 통닭>, <라이트하우스>, <이슬옥>도 다 목간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여기저기서 어디서 하는 거냐고 문의가 쇄도해서 <전원공예사>로 연결해 드릴 수 있었다.
이런식으로 노포를 하시는 분들과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이 분들의 노하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콜라보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작업을 해 나갈 계획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개항로코스'를 검색하면 가게 사장님들과 손님들이 추천하는 코스가 나온다. 또 방문자들만이 알고 있는 코스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캡처, 출처ID=왼쪽 위부터 시계열 방향으로 gaehangro, aroa_oe, jabhwa_bungijeom, qkrqkr__, aroa_oe, lillyan_0201)
▶ 2019년 도시재생 산업박람회에서 <개항로 프로젝트>로 국무총리상도 받으시고 하면서 개항로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것 같다. 특히 SNS를 통해서 개항로와 노포인 이웃사람 소식도 열심히 알려주셔서 일종의 개항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하려고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에는 개인적인 추억도 많이 있는데 이제는 아들과 함께 극장을 온다. 여기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아벨 서점>을 들러서 헌책을 하나 고르고 다음은 개항로 어디를 가서 맛있는 걸 먹는 코스로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SNS에 소개를 하면 다른 엄마, 아빠도 이 걸 보고 따라하시는 걸 보았다. 아이들도 생각보다 재미있어 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섞어서 노는 것도 재미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이것을 본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면 이 곳도 계속해서 활기를 띌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비어있는 건물에 젊은 친구들이 와서 새로운 것도 열었으면 좋겠다. 노포와 새로운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시너지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가 이 도시를 잘 살려놓아서 200년, 300년 된 건물이 많아지면 그 건물이 또 하나의 캔버스가 되어서 후배들이 또 다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겠나. 산부인과가 카페가 되었다가 또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가 하면서 이야기를 쌓는 것이다. 그렇게 젊은 친구들과 어른들이 만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새로운 시너지가 생길 것이고 그 것이 인천 중구의 정체성의 일부가 될 것이다. 언젠가 먼 후대에 사는 친구들이 “여기가 옛날에 <개항로프로젝트>라고 그런 바보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카페 했대.”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개항로 프로젝트>중 하나로 최근 오픈한 <개항로고깃집>. 밀레니얼과 레트로가 조화된 듯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이창길 대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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