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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상권(2)] 태백 무브노드 - 노마드, 예술창업 리빙랩으로...

(대담) 강원도 태백시 <널티> 김신애 대표 (2부)

윤준식 기자 승인 2021.09.02 19:35 | 최종 수정 2021.09.17 12:21 의견 0

덕업상권 2편은 1편에 이어 <널티> 김신애 대표와의 대담이 이어집니다.

1편에서는 <널티>가 위기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는 이야기로 출발해 태백 귀촌과 코워킹스페이스 <무브노드>의 개설도 위기 청소년의 자활이라는 소셜 미션에 초점을 맞췄다는 이야기와 태백에 자리 잡고 나니 노마드 성향을 가진 분들과 지역 창작 커뮤니티를 형성되며 일자리를 나누는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드렸습니다.

2편에서는 <널티>가 <무브노드>를 거점으로 태백에서 펼친 활동 일부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노마드 성향을 가진 예술창작자들이 <무브노드>와 같은 코워킹스페이스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 그것이 지역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리빙랩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대담 기사는 <시사N라이프>가 시도하는 ‘노브레이크 저널리즘’의 일환으로 이야기 순서 그대로 기술해 나갑니다. 원활한 독해를 돕기 위한 윤문,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한 삭제 이외에는 최대한 편집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새로운 저널리즘 실험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는 김신애 대표가 창업하도록 만든 어떤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어 ‘그 친구’, ‘이 친구’라고 표현했으며, 일반명사인 ‘친구’와 구분하기 위해 ‘그 친구’, ‘이 친구’라고 따옴표와 함께 표기했습니다.

김신애 대표, 널티, 무브노드와 관련한 언론기사, 콘텐츠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orkflowy.com/s/1/pyOEL6VuwuClEbi5


[대담 참여자]
1. 시사N라이프 윤준식 편집장 (이하 ‘윤’)
2. 널티 김신애 대표 (이하 ‘김’)
3. 청소년문화발전소 오경옥 소장 (이하 ‘오’)
4.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 (이하 ‘이’)


<막장책방> 내부는 방문 당시 리뉴얼을 위한 준비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사진=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

◎ <무브노드>, <막장책방>, <기억을모으는미술관 ART-TEA>의 시작

◆윤: <무브노드> 이름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거죠?

▲김: ‘무브(move)’와 ‘노드(node)’를 결합한 합성어인데요. ‘무브’는 이동한다는 뜻이고, ‘노드’는 게임 엔진에서 선을 빼다가 딱 꽂는 ‘노드’라고 불렀었는데 찾아보니 ‘점, 지점, 결점’ 이런 뜻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동하다가 만나는 곳 이렇게 딱 모이는 지점. ‘이런 거였으면 좋겠다’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무브노드>라고.

◆윤: <널티>보다 의미를 많이 담아주신 것 같아요.

▲김: 개발 용어에서 착안해서 그런지 재밌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윤: 근데 <막장 책방>은 또 작명을 그렇게 안 하셨거든요?

▲김: 제 꿈이 도서관 만드는 건데 책을 찾지만, 매일 읽지는 않아요. “책을 찾을 때가 언제일까?” 생각해 보면 “이거 왜 이렇게 답답하지? 왜 이렇게 힘들지?” 할 때 책을 많이 읽어요. 그게 막장의 순간인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서 지역 용어를 가져다가 그냥 붙여놓은 거예요.

◆윤: ‘막장’이라는 말의 2차적인 의미를 살린 거네요. 1차 의미는 탄광, 갱도를 의미하는 거고, 2차 의미는 “탄광, 갱도까지 갈 만큼 인생이 꼬였다” 할 때 ‘막장’이라고 표현하니까요.

▲김: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 이런 의미도 있고...

◆윤: 아! 여기는 서점이니까!!! 근데 생각보다 책은 많이 들어와 있진 않아 보여요.

▲김: 이미 많이 팔았고, 8월 중순쯤 공사를 한 번 할 거 거든요?

◆윤: 그래서 재고를 다 뺀 거군요?

▲김: 입고를 안 하고 있어요.

◆윤: 그러면 이 <막장 책방>에서 취급하는 책은 주로 어떤 책인가요?

▲김: 처음에 들어왔던 책이 페미니즘 관련한 책이었고요. 그거 들어오니까 근처 남자 고등학생들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와서 “무섭다” 그러고 저한테...

◆윤: 미디어의 영향인데 다들 급진적인 페미니즘만 생각하는 거예요, 페미니즘 얘기가 나오면.

▲김: 그 다음에 소셜 다이닝 콘텐츠로 음식 책이 들어오고, 그 관련해서 소셜 다이닝도 진행했었어요.

◆윤: 그럼 여기 책방에서 밥을 먹었던 건가요?

▲김: 책방은 아니고 <무브노드>에서 했어요. 책하고 관련해 사소한 문화 경험들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행사를 진행했고요.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책들을 입고시키고 있어요. 죽음이나 그림이나 질문 등.

2018년 11월 오픈한 <기억을모으는미술관 ART-TEA>
(사진출처= 'museum-art-tea' 홈페이지)

◆윤: 그럼 8월에 여기 리모델링을 마치고 나면 큐레이션 책방으로서의 역할이 시작이 되겠네요. 추석 이후 되면 또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겠네요. 이곳 말고도 다른 유휴공간 활용해서 갤러리 운영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편집자 주: 여기서 갤러리는 <기억을모으는미술관 ART-TEA>를 의미함)

▲김: 작은 미술관이에요. 예전에 작은 도서관 사업 붐이 일었잖아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어야 된다”는 컨셉처럼 그런 미술관에 대해 국가에서 지금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2018년 11월부터 저희가 태백시와 연결해 태백시 유휴공간을 미술관으로 바꿔서 전시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미술관 일을 진짜 빡세게 있었거든요, 저희가...

◆윤: 어떤 이유로 빡시게...? 또 벽돌 나르기부터 다 하신 건가요?

▲김: 전시를 하나 개최하는데 정말 힘들어요.

◆윤: 아! 미술관 꾸미는 거보다 첫 번째 전시를 할 때?

▲김: 한... 7개 전시를 저희가 다 올렸고, 그 다음부터는 작가님들께 맡기고 있어요. 전시를 올리는게 진짜 힘들었어요.

◆윤: 7번 정도 전시를 하고 나니 이 지역에 있는 작가님들에게 자리매김이 된 거군요.

▲김: 그렇죠. 작가님들이 “전시 하고 싶다”고 연락도 주세요.

▷관련 자료: 기억을모으는미술관 ART-TEA
작은 마을에 따뜻한 예술을 우려내다

http://museum-art-tea.com/


2019년 3월 27일부터 5월 12일까지 <기억을모으는미술관 ART-TEA>에서 '화광아파트 X 찰칵 원정대' 행사를 통해 촬영되어 담겨진 사진/영상을 전시했다. (사진출처= 'museum-art-tea' 홈페이지)

◎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 ‘화광아파트x찰칵원정대’ 프로젝트

◇오: 그 사업하고 화광 아파트하고 같이 맞물지 않았나? 미술관을 만들고, 주민들한테 화광 아파트에 대한 추억이나 기록하기 위해서 만들었었잖아? 그리고 전시도 하고...

▲김: 아, 맞아, 맞아! 맞아요!

◆윤: 네 번째 질문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화광아파트 프로젝트는 대체 뭐냐?” 이거거든요.

▲김: 아~ 보셨어요? 화광아파트 그때 오셨을 때 보셨어요?

◆윤: 제대로 못 봤어요.

▲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보셨어요?

◆윤: ‘화광’ 써있는 건 봤죠.

□이: 미술관 지어지고 있을 때 봤죠.

▲김: 아, 그때쯤 오셨었구나! 저도 나이가 들어서야 화광아파트를 와봤거든요. 어릴 때는 못 와봤어요. 와서 보니 너무 끝내주는 거예요. 그냥 그 허름함이 너무 좋았어요. 그 허름함이 너무 좋아 거기를 서성거리고, 밤에도 산책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더 재밌었던 게... 아파트 내부 화장실이 ‘푸세식’이다!

◆윤: 아파트인데요?

▲김: 3층짜리 아파트인데...

◆윤: 화장실 ‘푸세식’이라고요?

◇오: 옛날에 만들었으니까!

화광아파트 내부 화장실은 ‘푸세식’이다. (사진출처= <널티> 김신애 대표 페이스북)

◆윤: 도대체 언제 만들어지면 화장실 ‘푸세식’일 수가 있는 거에요?

▲김: 78년도에 만들어졌어요.

◆윤: 이 ‘푸세식’이라는 게 쪼그려 앉아 있는 걸 말씀하시는 건지, 퍼내는 거라는 건지?

◇오: 퍼내는 거!

▲김: 물을 내릴 수가 없어요.

◆윤: 그럼 거기는 그러면...

□이: 집마다 똥통이 있는 거죠.

▲김: 그렇죠. 정화조 청소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오: 그냥 푸는 거에요.

◆윤: 다 퍼서 지고 날라야 되는 거에요?

▲김: 그게 정말 재미있었던 거에요. 사람들이 이렇게 투어를 시켜주면서 여기는 ‘푸세식’ 화장실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 다음 질문이 “그럼 똥이 어떻게 내려가요?”

◆윤: 냄새는 어떻게 처리하는 거예요?

▲김: 그 근처에 가면 냄새가 나요. “물을 내려서 헹구나?”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겨울에도 따뜻한 물을 부어서 똥을 내리고 그랬데요. 그게 내려가는 길이 있대요.

◆윤: 그렇게 해서 전체 공동 정화조로?

▲김: 그렇죠.

◆윤: 이런 게 천년 후쯤에 발굴되면 조상의 지혜라는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도 가끔 신라 시대나 백제 시대 때 화장실과 수세식... 수세식이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물로 씻어내리니까. 그렇게 해서 배관 따라서 내려가는 걸 보고 ‘조상들의 지혜!’

▲김: 그렇죠. 화광 아파트가 딱 그런 거죠.

◆윤: 화광 아파트, 78년에 지어진 거라고요? 78년도의 건축술이 그거군요! 수세식인데 3층에서 일을 보면 내려가게.

▲김: 너무 재밌죠?

□이: 아파트 한 동 정도는 살아남길 바랐는데...

▲김: 그러니까요.

◆윤: 아카이빙으로 남겨 보여줬어야 되는데...

▷관련 자료:
화광아파트 X 찰칵원정대
http://movenode.com/?p=2768

[MBC강원영동 20.12.02.] 화광아파트 철거 완료
https://youtu.be/eK0B00k_WyA


◎ 얄쌍한 문이 2개: 화광아파트에만 있는 특징

▲김: 그렇죠! 너무 재밌죠? 그리고 재밌는 게 두 가지가 더 있어요. 하나는 또 연탄 보일러였다.

◆윤: 서울에도 옛날에 지은 아파트 중에 연탄 아파트가 있었어요.

▲김: 저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윤: 그거 때문에 5층까지 연탄을 지고 올렸으니까. 태백은 연탄의 원재료인 석탄을 캐는 곳이니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을 것 같아요. 당연히 “우리가 생산한 석탄으로 만든 연탄으로 아파트가 난방이 된다” 이 의미가 서울에 있는 거랑 좀 다른 의미….

▲김: 그렇죠! 마지막 하나는 출입문이 두 개예요.

◆윤: 집집마다요?

▲김: 네. 그리고 얄쌍한 문이 2개씩 있는 거예요. 주방으로 하나, 거실에 하나. 아! 집 안 거실로 들어가는 문이 2개라는 게 정말 재밌는 거예요. “문이 왜 2개였을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어요.

◆윤: 전 처음에 문이 2개 있다고 그래서 아파트가 좀 평수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 평수가 크지 않아요.

'화광아파트 X 찰칵원정대' 프로젝트 현장. (사진출처= <무브노드> 홈페이지)

◆윤: 또 머릿속으로 두 집이 살 수 있는... 예를 들면 ‘부모님과 아들 세대가 같이 거주할 수 있는 건가?’라는 상상을 했거든요.

▲김: 평수는 작은데 문이 2개에요. “와, 디자인 정말 특이하다.”라는 생각을 했죠.

◆윤: 요즘은 아파트 화장실이 2개라고 생각을 하지, 문이 2개라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김: 문 사이즈는 동일해요. 한 요만해요. 그리고 저런 큰 문이 아니라 저거보다 약간 얄쌍한 문이었어요. 그 2개가.

◆윤: 딱 한 사람 지나가는군요.

□이: 옛날 한옥을 그대로 아파트로 옮겨놨네요. 개량 한옥.

▲김: 한옥은 문이 두 개예요?

□이: 아니요. 부엌문 따로 있고... 원래 그래요.

◆윤: 그렇죠.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었죠.

□이: 신발을 신고 부엌에 가서 음식을 하죠.

◆윤: 그렇죠. 부엌에서 올려서.

□이: 지금 있는 건 서양식이고, 동양식은...

◆윤: 맞아요. 입식 부엌이라고 얘기를 하는.

□이: 조리 공간이 따로 있고...

▲김: 아, 재밌네요.

□이: 방으로 상을 들고 가잖아요?

◆윤: 그리고 그때는 부엌이 거실보다 좀 낮았어요.

□이: 정확히 방이 높은 거죠. 부엌에 이렇게 계단이 있고, 여기는 방을 올려야 되니까 아궁이를 만들면서 높아지고, 아궁이 불로 밥하고.

◆윤: 그러니까 부엌이 아궁이를 끼고 있으니 그렇게 위치를 잡고, 집은 위로 올려서 습기를 이겨냈고, 이렇게 한 거네요? 지금 말씀하시는 가옥 구조가 남쪽에 있는 가옥 구조인 거고.

□이: 근데 북쪽은 폐쇄형으로 약간 네모지고.. 왜냐하면 따뜻하고 이렇게 온기가 돌아야 하고, 남쪽은 좀 일자형이고요, 따뜻해서.

▲김: 아~ 재밌네요, 진짜.

◆윤: 옛날에 남쪽은 비가 많이 오고 습기가 있으니까 일부러 거주하는 공간을 지면에서 띄웠거든요. 아궁이가 들어가야 되니까 거주하는 공간을 위로 띄웠다는 얘기와도 관련 있어요.

□이: 근데 한옥의 구조는 전반적으로 땅이 쭉 있으면 부엌을 굳이 뭘 할 이유가 없는 거고 집은 대청마루도 띄워져 있고, 환기가 잘돼야 되니까요. 그리고 레벨이 비슷하게 맞춰서 방이 딱 되고, 조금 더 파서 아궁이 만들고.


장성탄탄마을도시재생뉴딜사업으로 철거되는 화광아파트의 내부 모습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시선(사진 혹은 영상)으로 표현하고 기록한 아카이빙 프로젝트 "화광아파트X찰칵원정대" (사진 출처= <무브노드> 홈페이지)

◎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결성된 찰칵원정대

◆윤: 그래서 화광 아파트를 아카이빙을 해야 되겠다고?

▲김: 맞아요. 근데 제가 화광 아파트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건물을 외부에서만 본 거죠. 그래서 안을 보고 싶다는 점, 그리고 이 아파트가 헐린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래도 근 2년 동안 이 아파트를 봤는데 이 아파트가 사라진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화광 아파트가 죽기 전에 애도하는 의미로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사진 찍고 즐겁게 화광 아파트를 보내줄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페이스북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너네는 어때?”라고 올렸는데 그때 댓글이 많이 달렸었어요. “하고 싶다”, “가겠다”

◆윤: 태백 시민 말고도?

▲김: 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해야겠다, 동의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예산도 없었고 누가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는데 ‘사람들 모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올렸더니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화광아파트 내 빈 집을 봐도 되도록 도와주셨어요.

◆윤: 주민들하고 충돌이 안 나게 중재를 해주신 거군요?

▲김: 곧 헐릴 곳이라 비어있는 집이 정말 많았어요. 저희가 문을 열면 불법이잖아요? 그런 것들 도와주셨는데, 그때 약 30분 정도 오셨어요.

◆윤: 30명 정도가?

▲김: 태백 사람은 거의 안 계셨고, 거의 외부에서... 서울, 강릉에서도 오시고, 제주에서도 오시고.

"화광아파트X찰칵원정대" (사진 출처= <무브노드> 홈페이지)

◆윤: 만약 저였다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싶어요” 이런 소원을 갖고 왔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해봐야 어떻게 변이 내려가는지 아니까.

▲김: 저희가 빈 집 문을 따서 했는데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재밌었던 게 이렇게 구멍이 있으면 여기에다가 그 앉는 변기를 뭐라고 하죠?

◆윤: 좌변기?

▲김: 그거를 그냥 뚜껑만 이렇게 위에다 얹어놓고 구멍만 맞춰 놓은 상태에서 그런 것도 있었고, 그런 것들을 촬영하니 재밌더라구요. 삶의 형태들로 보이니까요. 처음에 지어진 집을 자기 스타일로 고쳐 40년 동안 사셨던 모습이 있어서 재밌었고.

◆윤: 빈집이지만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다시 열리는 거네요? 게임 같았겠어요.

▲김: 그렇죠! 전날 밤에 저희가 혹시 몰라 밤에. 몇 군데를 돌았어요. 일부러 밤에 좀 돌았어요. 같이 가는 사람들 좀 무서우라고... 진짜 무서웠던 게 딱 들어갔는데 사람이 사는 느낌의 집이 있었어요.

◆윤: 사람이 없는 사람이 사는 느낌이 대부분 전설의 고향 같은 생각을 해요.

▲김: 그러니까요! 이불도 다 펴져 있었고... 진짜! 신발도 이렇게 있고... 어떤 느낌인지 알겠죠? 그리고 옷도 말리는 것처럼 걸려 있어요. 그래서 들어갔다가 소리를 막 지르면서 나왔던 기억도 있고...

◇오: 아무도 없었어요?

▲김: 아무도 없었어요. 그 다음 날 들어갔더니 온기가 없더라고요, 사람 온기가! 근데 밤에 들어가니 저희가 무서워서 그렇게 느꼈었나 봐요. 그리고 졸업 앨범을 하나 저희가 주워서 봤는데 졸업 앨범마다 다 코멘트를 적어 놓은 거야, 주인이... 얘는 이랬고, 저랬고, 이렇게. 그게 이제 빼곡하게...

◆윤: 게시판 댓글 달 듯.

▲김: 그렇죠!!

◆윤: 그리웠나보다. 근데 그걸 놓고 가셨어요?

▲김: 놓고 가셨어요.

◆윤: 무슨 사연이지?


(왼쪽) 화광아파트에서 발견된 졸업 앨범. 이 곳에 살았던 주인이 졸업 앨범마다 다 코멘트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사진출처= <무브노드> 홈페이지)

◎ 지역 주민이 화광아파트를 떠나 보내는 방법

▲김: 거의 다 도망치듯이 가시는 것 같아요. 집 안에 모든 걸 다 버리고 갔어요. 저는 얕은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생각했는데 화광아파트도 좋았고... 그 이전에는 “저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가난한 사람일까? 혹은 뭔가 남겨져 있는 사람일까? 버려진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했었던 것 같아요.

“허름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라는 관념이 저한테 있었던 거 같은데 그걸 촬영 하면서 아직 이주하지 못했던 주민들이 만났었거든요? 근데 엄청 행복한 거에요. 저보다 훨씬 잘 사는 분들이었어요.

◆윤: 아, 삶의 질?

▲김: 생각도, 정신도. 그래서 “화광아파트가 헐리지 않았으면 난 여기에서 계속 살았을 거야. 화광아파트는 나한테 종말 소중한 존재야.”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 찍었던 모두가 그런 것에 감동했던 시간이었어요.

◆윤: 그럼 그 아카이빙 결과물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김: 두 번 전시하고 끝이었어요.

▷관련 자료: 기억을모으는미술관 ART-TEA
[지난 전시]
화광아파트,
밤엔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낡은 건물에도
숨쉬듯 불이 들어온다.

http://museum-art-tea.com/?p=182

◆윤: 그래도 사진이니까 디지털 자료 정도는...

▲김: 그 사진은 저희한테는 다 있죠.

◆윤: 언젠가는 나타나겠네요?

▲김: 그렇죠. 근데 이게 저작권 때문에 저희가 막 함부로 쓰기가 좀... 다 저희가 찍은 게 아니라 다 취합해서 가지고 있었던 거라. 전시까지만 오케이여서 이런저런 데 안 쓰고 있어요.

◆윤: 우리가 다시 디지털로 화광아파트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군요?

▲김: 그렇죠.

◆윤: 일단은 죽을 동 살 동 일하지 않는 상태가 되셔야 뭘 추스르시죠.

▲김: 그렇죠. 좀 여유로워져야....

◆윤: 여유로워 지시기를. 저 그 화장실 보고 싶단 말이에요.

▲김: 짱이에요, 진짜! 재밌는 건 <투애니원>이 여기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었대요.

◆윤: 아, 그래요? 화광아파트에서요?

▲김: 제가 막 계속 떠들고 다니니까 정보들을 주더라고요. “투애니원이 저기에서 했었어.”

◇오: 화광아파트 다큐멘터리에서 장례식했던 영상 본 적 있어?

▲김: 맞아요. 주민들이 다 기획해서 진행하셨어요.

◆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또 아카이빙한 것이 있고...

▲김: 아카이빙이라기보다 축제를 여셨어요. 화광 아파트 축제.

▷관련 자료:
[MBC강원영동 19.11.12] 장성 화광아파트 장례식

https://youtu.be/dWhsiT-St7A

[MBC강원영동 20.02.07.] 화광아파트 기록
https://youtu.be/yOfdnTW5XmM


◆윤: 참 아쉽네요. 남겨질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런 일들이 잘 기록되어 남으면 잊혀져가고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김: 그 아카이빙 이후로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거든요. 화광 아파트 아카이빙과 다큐멘터리가 끝이에요. 그리고 저희 거랑. 왜냐면은 두 동이 남을 거라고 생각해서.

◆윤: 이건 화광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고요. 지금 경복궁 복원됐잖아요? 옛날에 중앙청이라고 일제 강점기 때 총독부가 들어와 있던 건물 폭파했잖아요. 그것도 아카이빙이 안 돼 있어요.

▲김: 그렇구나. 아쉽다.

윤: 물론 그때는 9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인식이 지금만큼은... 90년대 초반이 벌써 30년도 더 넘었잖아요? 김영삼 대통령 때인데 정말 우리나라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건데도 불구하고 아카이빙이 안 돼 있고, 하다못해 조선 총독부 그 일부라도 잘라서 갖고 있으면서 계속 곱씹어 봐야 될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반일 감정으로 파기해버리고 끝나버렸거든요.

◇오: 일부는 있어요. 국립박물관에 가면 총독부의 흔적이라고 써 있어요.

▷관련 자료: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https://blog.naver.com/koreai815/222431512022

◆윤: 그전에 꼼꼼하게 촬영이라든가 그 안에 있던 별실들에 대해서 남겼어야 되는데 그런 거 없이 정치적인 결단으로 이렇게 됐거든요? 근데 화광 아파트 같은 경우도 지역사회로 놓고 보면 경제적인 판단, 정책적인 판단에 의해서 그렇게 가는 거라...

이제 태백시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그런 지역에서도 잊혀져가고 쓰러지는 것들에 대한 게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건데 태백시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축제도 하고 아카이빙 행사도 하고 이랬던 것들이 더 잘 남아 있으면 다른 사례가 있을 때 또 같이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좀 아쉬운 거고요.

근데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게 처음에 <널티>를 시작하실 때 ‘게임과 위기 청소년의 문제’였는데 그 틀이 화광아파트 프로젝트도 들어간 거 같아요.

▲김: 어? 어떤 점에서요?

◆윤: 게임의 방식? 이런 점이 아파트 탐색하는 데 들어갔고, 어떤 면에서는 처음에는 위기 청소년에 대한 소셜 미션이었는데, 그 위기 청소년에 대해 저와 대화하면서 변방에 있는 사람들, B급인 사람들 이야길 한 거죠. 화광아파트를 같이 아카이빙 해야겠다는 취미를 가진 분도 사실은 주류에 속하는 분들이 아니에요.

▲김: 맞아요. 다 그런 사람들이 왔어요.

◆윤: 흉가나 폐가, 이런 데 찾아다니거나 이런 분들이 거기 때문에, 혹은 코드가 맞으니까 “나 가는데 너도 갈래?”해서 오신 분들일 거기 때문에... 그런 30여 명과 함께 이런 아카이빙 행사를 했다는 게 처음에 이제 <널티>를 창업하실 때의 내용이 더 순한 맛으로 녹아들어 간 게 아니냐? 라이트 버전 아니냐? 또 “일종의 빅게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거죠. 그런 것들이 계속 <널티>를 중심으로, 태백시를 중심으로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우연히 동네에서 도시재생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어르신 덕분에 마을 투어를 했는데 “덕택에 마을 투어 잘하고 갑니다.” 그랬더니 농담조로 “스탬프 찍고 가세요.” 이 말을 툭 던지시더라고요. “스탬프 투어도 가능하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태백시가 성장해오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역사적인 흔적들이 분명히 있을 거기 때문에!

장성동 도시재생 관련 일을 맡고 계신 마을분이 장성동 골목 구석구석을 소개해주셨다. (사진= <오롯컴퍼니> 이종건 대표)

◎ <무브노드> 프랜차이즈?

◇오: 그 얘기를 한 적 있어요?

▲김: 뭐요? 어떤거?

◇오: 나한테 얘기했었던 거잖아요? 이곳에 이름을 이렇게 부여한 것처럼, 원래 노마드족한테 공간 여기서 창업하고 얘 하나씩 주고, 얘 하나씩 주고...

◆윤: 뭔가 <무브노드> 프랜차이즈를 하시는 듯하네요. 이 얘기를 빼놓고 또 인터뷰 마무리 할 뻔했네요.

▲김: 원래는 한 5년만 여기 있으려 그랬거든요? “5년만 있어야지” 얘길 하다가 “와, 이거 되게 건방진 생각이었구나...” 5년 해서는 변화하는 게 단 1도 없는 거예요. 변화는 저에게만 있었고... 마음 고생 이런거... “여기를 어떻게 좋은 방식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여기가 좀 답답하거든요.

고립되어 있고, 답답함이 있어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것들이 투여되지 않으면 답답하고 지겹고 그래요. 물론 재밌는 것들도 많지만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우리가 여기를 잘 만들어 놓고 계속해서 순환할 수 있게... 여기서 외부라는 건 “해외나 혹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공부를 해오고 다시 와서 여기에다가 뭔가 투여하는 방식으로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실제로 태백만 아니라 강원 남부 친구들을 묶어 가지고– 아까 창업자라고 하지 않았지만 –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고, 실제로 좀 움직이기도 하고 있어요.

◆윤: 표현을 하자면 <무브노드>를 복제하는, <무브노드> 프랜차이즈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형태가 꼭 코워킹스페이스가 아니라도 카페 혹은 스테이같이 각각 지역 특성이나 그 일을 진행하는 사람의 성향에 맞춰 이뤄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 맞아요. 근데 여기 와서 해보니 복제되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뭘 했다하면 다 갖다 쓰는 거예요. 이 점이 참 속상한데, 우리 창업 커뮤니티에서는 “저 사람의 것은 저 사람한테 주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것에 동의되는 사람들하고 일을 하겠다. 저 사람이 하고 있는 건 어떻게든 뺏어갖고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한테 주자” 그래서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술가면 그냥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역할 이런 것들을 각자가 잘 해내면 우리가 잘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얘기들을 하고 있어요. <무브노드>가 복제되는 건 원하지 않고요. 같이 가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오: 이 얘기를 왜 꺼냈냐면 김 대표가 “선생님 저 여기 이름을 정했어요. <무브노드>에요”라고 이야길 했는데 네트워크에서의 ‘노드’라고 하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고, 거기서 파생되는 시너지가 상당히 높거든요.

당시 김 대표가 “제가 공간을 하나 만들어서 한 6개월에서 1년 정도 끌어올리고, ‘그 친구’가 매니저 역할을 해서 그 공간을 지배를 하고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는 자립의 형태를 만들고 싶다”, “제주도에서부터 시작해서... 태백을 중심으로 서울까지 연결을 해서...” 그런 얘기를 한참 했었어요, 초창기에...

▲김: 이런 일을 잘 모를 때...

◇오: 모를 때니까... 사실 이 얘기를 지금 꺼냈냐면, 청소년 문화 쪽에서는 제일 고민하고 있는 게 청소년 자립 문제였고, “자립의 이슈를 어떻게 풀까?”라고 했었던 지점에서 김 대표가 2017년에 얘기했었던 얘기들이 지금 거론되고 있어요.

▲김: 아, 그래요?

◇오: 그래서 사회적인 기업가로서 혁신에 대한 아이템들을 통해, 우리처럼 청소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먹고 사는 것들에 대해 돈의 흐름이나, 구조들을 보며 이끌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다르게 보면 어떤 지역에 대한 창업을 하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더 크게 보면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름 자체의 확장성들이 넓다는 거죠.

▲김: 강원도에 이런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는 팀이 몇 팀 있어요.

◆윤: 이걸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하나요?

▲김: 공동체를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가는 친구들 몇 군데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공간 이름 속에 정체성으로 녹여져 있어요. <살롱 드 노마드>라든가, <파도 살롱>...

◆윤: <더웨이브 컴퍼니>?

▲김: 그거 보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이름의 욕망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윤: ‘살롱’은 정확한 정의로 얘기를 하면요, 프랑스 궁중을 복제한 형태의 귀족들의 공간이에요. 사교적 공간이고, 문화 예술 공간이죠. 근데 <파도 살롱> 그렇고 <살롱 드 노마드>도 가봤는데 문화예술 공간은 아닙니다.

*편집자 주: 취재를 다녀온 시점에서 <살롱 드 노마드>는 문화예술을 포괄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갤러리로도 공간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김: 아, 아니에요? 그냥 코워킹스페이스인가?

◆윤: 코워킹스페이스죠.

◇오: 근데 사실 지향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가고 싶은 거였죠.

◆윤: ‘살롱’의 라이트 버전이 ‘카페’인 거에요. 궁중문화는 16세기 태양왕 루이 14세 때 나온 거고, 17세기 살롱, 18세기 카페, 이렇게 나오면서 프랑스에서 그때 철학자들, 문학가들이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며 발전하면서 근대 서구의 사상이 나왔다고 합니다. (제가 연도는 좀 틀릴 수 있습니다.)

살롱의 등장 이유는... 절대왕정으로 넘어오기 직전 봉건제 시대였고, 유럽이 당시 장기간 전쟁을 해요. 그래서 귀족은 품위가 아닌 칼잡이들이었던 거예요. 서로 만나면 살벌했어요. 오늘은 아군이지만 언젠가 저 봉건 영주가 저쪽 편으로 돌아서면 적이기 때문에 그 살벌함을 없애기 위해 여성이 리드하는 문화적인 분위기를 만든 게 살롱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왕비, 공주, 귀부인들이 모여 음악 감상, 그림에 대한 얘기하고, 시를 읊는 등 문화적인 형태를 통해 그 살벌함을 귀족 사회에서 자제한 뒤 왕권 강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겁니다. 현재 현대 살롱의 의미는 김신애 대표님이 하시는 것처럼 코워킹스페이스, 오픈 스튜디오, 갤러리, 미술관, 책방과 같은 형태로 가는 게 맞아요. 여성 기업이 할 수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이기도 한 거죠.


(사진출처= 픽사베이)

◎ 태백시민의 놀이권을 향한 새로운 도전

◇오: 이번에 했던 것 중에 목재 갖고 한 거 있지 않아요?

▲김: <우드리즘>이라는 목공팀이 있어요. 이 팀은 강원랜드 사내벤처인데 이 팀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목공으로 커뮤니티 디자인하는 것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저한테 수업 한 꼭지를 줬어요.

“목공을 툴로 ‘체인지 메이커’로 한 번 해보자”였는데 이 문제를 놀이권으로 가져갔어요. “태백에는 놀이권이 부족하지 않냐? 그럼 목공으로 해결해볼까?”라고 했더니 어른들이 놀 수 있는 게임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모델링한 뒤 제작을 통해 같이 놀았던 수업이었어요.

◇오: 아동 청소년 쪽에서 놀이권이 부각되고, 올해부터 SOC와 연결해서 놀이에 관한 것들을 추진할 때 방금 말했던 게 연결되면 확장성있는 부분일 것 같기도 해서...

▲김: 이게 재밌었던 게 마지막 날 다 만든 것들을 펼쳐놓고 같이 놀았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쭈뼛쭈뼛하는 거예요. 그래서 억지로 놀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쉬는 시간을 드렸는데도 다들 놀고 있고, 본인들이 크리에이티브하게 “이건 이렇게 해보면 어때?”하면서 놀고...

◆윤: 여기서 ‘논다’는 개념은 진짜 탱자탱자 노는 게 아니라...? 일을 즐기는 개념인거죠? 영어의 ‘play’가 갖고 있는 복합 다중적인 의미를 얘기하신 거 같아요.

▲김: 나무로 비석치기를 만들어서 놀이를 하는데 비석을 몸에 올리는 방식들 있잖아요, 그게 엄청 창의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면서 “실제로 되게 잘 놀 수 있는데 어른들이 다 참고 있는 거구나” 판을 벌려주면 엄청 잘 노시는 거예요.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그게 정말 좋았어요.

◆윤: 여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야기가 나와서 여기서 정리를 하고요. 다음에 기회를 다시 잡아서 그동안 하셨던 다른 복합적인 문화와 비즈니스와 예술을 합친, 실용적인 것들과 이상적인 것들이 복합된 다양한 일들에 대해 다음번 인터뷰를 통해 하나하나 세세하게 꼬치꼬치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최근에도 포천 왔다 갔다 하시면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고 그런데 다음 기회에 말씀 나누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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