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워' 개념은 2010년 이후에 등장했다. '하이브리드 워'는 “기존의 재래식 무기와 함께 ‘모든 다양한 요소’를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쟁”이라는 새로운 양상이다.
특히 2013년 러시아의 발레리 게라시모프가 “선전포고 없이 이뤄지는 정치·경제·정보·기타 비군사적 조치를 현지 주민의 항의 잠재력과 결합한 비대칭적 군사 행동”으로 하이브리드 워를 정의한 이래, 러시아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전략 변화 추진했다.
러시아는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모든 다양한 요소’를 동원한 사이버전과 분쟁 개입 등을 통해 모든 국면을 러시아에 유리한 상황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하이브리드 워'는 러시아가 구소련 시절 패배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두드러졌다. 탈레반이 승리한 원인이 바로 '하이브리드 워'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관련 비용의 급격한 하락, 이로 인한 정보 생산성과 접근성의 확대는 정교한 전략에 따른 정보의 공개와 조작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수행하는 심리전의 효과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20년간 진행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유튜브 같은 캐주얼한 미디어 허브와 드론, 모바일 통신기술과 같은 기술적 진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한 존재가 미군이나 아프카니스탄 군이 아닌 탈레반이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수염을 기르고 전통 복장을 한 'AK-47'과 'RPG-7'을 휴대한 채 시작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스마트 폰을 이용해 제작한 전투 장면을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공개했다. 탈레반은 이에 그치지 않고 ‘봇’을 이용해 소셜 미디어에 자동으로 댓글을 달아 탈레반의 전투적 성과를 알리고 이미지를 쇄신하는 메시지를 전송하며 전선을 온라인으로 확장했다.
탈레반의 전쟁은 노트북과 아이폰을 휴대한 전쟁으로 급격하게 진화했고, 이러한 진화는 내적으로는 동기 부여를 통한 응집력 강화를 촉진하고 외적으로는 고도의 심리전의 효과를 가져왔다. 하이브리드 워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수행되는 심리전이 가지는 영향력은 군사 자원이 열세에 놓인 집단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갈등 중이다. 2020년 재발발한 군사적 충돌 이후 아제르바이잔군은 드론 전투의 전술적 성과를 SNS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https://youtube.com/watch?v=a-atOb2HLEk&feature=youtu.be
▶영상 설명: 아제르바이잔 전투드론이 아르메니아의 인원, 장비, 시설 등을 주야로 파괴하는 영상. 출처: 아제르바이잔 국영방송.
아제르바이잔군은 군사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드론을 활용해 아르메니아군의 주요 전력을 파괴하는 전투 영상을 집중적으로 공개하고, 자신들의 전투 영상을 전 세계와 실시간 공유함으로써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두 국가의 전력 차다. 아제르바이잔군은 병력, 전차, 자주포, 전투기 등 전통적인 군사 능력에서 아르메니아보다 우위를 점유하고 있고, 국방비는 아르메니아의 5배에 이르는 재정을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격 및 자폭 드론을 활용해 전격적인 드론 전투를 수행하는 한편, 드론 전투 영상을 SNS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적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고도의 정보·심리작전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독보적인 군사적 우위를 만회하기 위해 러시아가 창안된 개념인 경제력, 군사력이 열세인 국가와 테러 단체 등 비국가 행위자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으로써의 '하이브리드 워' 인식 자체를 붕괴시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한국보다 경제력, 군사력이 열세인 북한이 ‘비대칭 전력’이 개념화되던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을 대상으로 하이브리드 워 기법들을 구사해왔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탈레반의 승리’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북한은 이미 디도스 공격, 언론 금융기관 전산망 마비, 소니 픽처스 사와 영국 방송국인 channel 4 해킹, 국가기밀 해킹 등을 시도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고도 네트워크 사회인 한국은 북한에 대해 네트워크 비대칭성이라는 매우 큰 취약점을 안고 있고, 북한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리드 위협을 도구화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많은 양의 정보와 정확한 잠재 대상을 타겟팅 할 수 있어 전망을 더욱더 어둡게 한다. 사이버 심리전 분야에서 취약한 한국 사회의 맹점을 이용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하이브리드 워'를 확대해 나갈 우려가 매우 크다.
아프가니스탄군이 직면했던 군수 보급과 훈련, 지휘 통제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탈레반의 승리를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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