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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_이야기(2)] 빈곤 자본과 기본소득

칼럼리스트 박대선 승인 2021.11.25 14:20 의견 0


“빈곤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빈곤층의 문화적 열등과 기능 장애를 이론으로 내세우는 비빈곤층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역사가의 주장인데 매우 공정한 말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한쪽에선 자유가 넘쳐나지만 반대쪽 돈이 없는 곳에서는 그 권리가 아주 박탈되어 이들에게 열등하고 기능에 장애가 있다고 몰아붙여도 이를 사회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길들여진 것일까요?

개인이 삶을 설계하고 실천해보도록 하는 일과 주어진 것만 하는 일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빈곤층 개인이 계획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은 불가항력에 가깝고, 비빈곤층이 ‘주어진 일만 하고 있는 것’은 선택적입니다.

그러니 빈곤층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공공선을 택하지 못해 일어난 비극입니다. 비빈곤층의 한쪽 끝은 일을 하지 않아도 부를 쌓아가며 빈곤층의 끝은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해도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인도 등 세계 각처의 여러 실험에서 빈곤층에게 일정 정도의 자유를 주었을 때 이들은 인생을 개척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오히려 실제 알코올 중독자는 빈민보다 그렇지 않은 층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고는 말 그대로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사회가 달성할 수 있는 성취에 대한 기대가 극적으로 잠식당하면서 결국 유토피아가 없는 기술관료제(테크노크라시)라는 차갑고 냉혹한 진실만 남는다. 정치의 임무는 문제 관리 정도로 전락하고 있다. 유권자는 정당이 달라서가 아니라 정당들을 거의 구분할 수 없어서 매번 지지하는 당을 바꾼다.”

현재, 세계 1인당 소득은 백 년 전보다 열 배나 늘었지만 자본주의만으로는 풍요의 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사람들이 꿈꾸던 세상은 결단코 아닙니다.

코로나19처럼 재난이 닥쳤을 때, 유연한 사고를 통해 방향 설정을 다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한 실천력을 갖춘다면 이토록 빈곤한 자본을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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